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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빅토리아행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by 현쥴리

밴쿠버에 거의 도착했다는 기내 방송이 나오자 나는 급격히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앞 가림막 (프리미엄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의 경계선 - 당연히 내 자리는 이코노미석)에 다리를 쭉 펴서 걸쳐 놓았던 양 발을 얼른 내려 신발을 신고 뒤로 젖혀져 있던 의자를 바르게 했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밴쿠버가 아닌 빅토리아다. 인천에서 빅토리아로 가는 직항은 없기 때문에 환승을 해야만 했다. 환승을 하기에 앞서, 입국심사와 최종 비자 심사라는 미션이 있다. 그 후, 짐을 찾고 다시 또 위탁 수하물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13시간 비행의 피곤함 따위는 느낄 새 없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했다. 설렘과 두려움이 적당한 비율로 공존해 있었던 상태였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는 긴장감이 압도적으로 커지면서 제발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랐다. 굉장히 여유로운 듯한 표정을 지어 보려는 노력함과 동시에 나의 눈동자는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느라 바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눈치껏 하나씩 따라 해 나아갔다.


파인애플 씨와 무사 도착

입국심사는 딱히 특별한 질문 없이 무사히 통과되었다. 신분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심사관 앞에만 서면 항상 무엇인가 잘못을 한 느낌이 들어 긴장이 된다. 입국심사를 통과한 후, 나의 짐들을 찾았고 워홀 정식 비자를 받기 위해서 이민국으로 향했다. 이민국 안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분위기는 엄숙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온 순서대로 앉아있었고 마지막 순서로 보이는 사람 옆자리로 가 앉았다. 내 옆자리에는 한국 분이 계셨다. 내 옆 옆자리도 한국 분이었고 내 옆 옆 옆도, 내 옆 옆 옆 옆도 한국 분이었다.


앞에는 여러 창구가 있었고 그 앞에서 몇몇 사람들이 비자를 받기 위해 심사를 받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질문을 퍼붓는듯했고 한 사람에게 소요되는 시간이 꽤 길었다. 멍하니 앉아 한참을 기다리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어디로 가?’ - ‘빅토리아’

‘일은 뭐해?’ - ‘아직 몰라.’

‘지낼 곳은?’ - ‘호스텔’

‘1년 내내 있을 거야?’ - ‘응 완전히’

‘잘 지낼 수 있겠어?’. - ‘그래야만 해’


‘행운을 빌게’


나는 2019년 9월 26일에서 1년 보다 하루 모자란 기간의 비자를 받고 나서 이민국을 생각보다 빠르게 빠져나왔다.


마지막 환승하기에 앞서 짐을 다시 부치러 가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다. 비자 심사 때 내 옆에 앉아 있었던 한국 분이었다. 그분의 최종 목적지는 캘거리인데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나도 여기 처음이야 친구야) 혹시 환승을 하러 가는 길이라면 같이 가도 괜찮냐고 내게 물었다. 나 하나 신경 쓰기에도 바쁜 상황이었다. 그래도 같이 찾아가 보기로 했다. (거의 나 혼자 찾아갔다)


이 친구는 거의 무계획 상태로 한국을 떠나왔고 다행히 캘거리에 지인이 있어서 우선 그 집으로 향한다고 했다. 아마 어학원부터 다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무엇을 해도 자신이 없다고 말을 한다. (‘자신 없어요’ 이 말을 대략 100번 한 듯하다.) 1년은 너무 길고 우선 한 달 버티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내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분에 대해서 좀 많이 알게 된 것 같았다. 옆에서 떠들어준 덕분에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다. 문제는 나에 대한 질문도 계속 해왔다. 나의 무계획 워홀에 대해 많이 궁금해했다. 앞서 했던 입국심사와 비자 심사보다 어렵고 까다로웠다. 다행히도 환승 게이트가 달라 헤어질 수 있는 순간이 왔다. 가끔 그분의 근황이 궁금하긴 하다. 그분은 과연 한 달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새로운 목표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지 아니면 정말 일주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 술을 퍼마시고 있을지 (한국으로 돌아가면 술만 마실 거라고 했다) 궁금하다.

환승을 기다리면서

빅토리아행이라고 써져있는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았다. 배낭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국어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바로 앞에 있는 팀 홀튼 덕분에 커피 냄새가 진하게 풍겨졌다. 아직 최종 목적지까지는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환승 전에 모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을까, 밴쿠버에서 나갈 걸 쓸데없이 복잡하게 빅토리아로 가는 것인가라는 온갖 불안한 생각에서 벗어나면서 어느 정도의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여유 시간을 즐겼다.

처음 맛 본 캐나다의 맛


탑승 시간이 다가오자 게이트 문이 열렸고 작은 버스를 타고 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비행기는 아주 작은 경비행기였다. 나의 배낭과 보조가방은 머리 위 선반에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나의 가방들은 내 옆자리 아저씨 좌석 밑까지 침투해 겨우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고 나니 나의 무릎은 앞 좌석 등받이에 바로 닿았다.


밴쿠버에서 빅토리아로 향하는 작은 경비행기의 창밖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비행기의 고도는 상당히 낮았고 푸른 녹음들 사이사이에 집들이 알록달록 자리 잡고 있었다. 장난감 마을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기록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풍경을 찍지 못했다. 심하게 좁은 공간과 나의 많은 짐들로 인해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짐을 옆 사람에게 맡겨서라도 뭐라도 남겨 둘걸 그랬나 보다. 30분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나는 드디어 마침내 빅토리아에 도착했다.


하지만 도착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동시에 나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빅토리아 공항은 시골마을에 위치한 공항이었다. 택시와 버스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방황하는 사이에 같은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사라졌다. 더 이상 떠날 비행기도 도착할 비행기도 없어 보였고 공항은 곧 문을 닫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무도 없는 인포센터 앞에서 서성이자 아주 나이 든 백발의 할머님께서 나오셨다. 한국에서 미리 잡아둔 호스텔 주소를 보이면서 이곳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냐고 물었다. ‘셔틀버스가 하나 있어’라는 말을 하면서 느긋하게 시계를 보신다. 2분 후에 떠나는 막차가 있다고 한다. 나는 두 캐리어를 양손으로 힘껏 밀며 버스 매표소로 달려갔다. 나의 급한 마음과는 달리 매표원은 표 한 장을 뽑아주는데 아주 여유로웠다. ‘이거 놓치면 다음 버스는 없어.’라는 말이 친절을 위한 것인지 약을 올리기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행히도 셔틀버스는 공항 출구 바로 앞에 있었고 운전기사 아저씨는 이미 닫아 놓은 버스 문들을 다시 열며 나의 짐을 실어 주었다. 그리고는 정확히 30분 후 나의 호스텔 바로 앞에 내려주었다.

빅토리아 첫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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