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영어로 된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이제는 스팸 메일이 영어로도 오는구나 하던 찰나에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이 났다. 아주 오래전부터 외국 생활을 꿈꾸는 친구가 있다. 몇 년 전부터 매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해왔지만 늘 깜깜무소식이었다. (꼭 캐나다 워홀이었어야 했다.) 언제부터인가 캐나다 워홀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한 친구는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그냥 한번 신청만 해줘봐.’ 워홀 존재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하나 늘려주었다. 워홀 신청은 생각보다 꽤나 복잡했다. 그래도 그 정도의 수고로움은 내 친구를 위해서 감수할만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친구는 마침내 나를 통해서 캐나다 워홀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졸업을 하면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제발 취업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듯이 하루에도 수십 번 넘게 취업설명회 문자를 보내왔다. 예의상 참석을 해보았지만 나의 마음은 늘 미적지근했다. 어떠한 것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취업을 취미로 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학교에서는 취업 준비는 잘 되어가냐는 말이 어느새 인사말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나의 부족함을 티 내고 싶지 않았다.
‘저 캐나다 갑니다.’
회피용 대답이었다. 더 이상 나에게 취업이라는 단어를 내뱉지 말아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저 친구에게 워홀 존재 여부 확인을 해주기 위해 신청했던 워홀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고정 대답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정말 캐나다를 가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인비테이션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체검사를 받고 범죄기록 사실 증명서라는 것을 떼야만 했고 일정 금액도 지불해야 했다. 생각보다 많은 미션들이 주어졌고 이 모든 과정들이 귀찮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취업 준비보다는 최종 인비테이션을 받기 위한 미션 수행이 훨씬 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망설이기도 했다. 당장 떠나기에는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나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이미 대리 직급을 달은 친구들이 수두룩하고 결혼을 한 친구들도 꽤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야 겨우 졸업을 앞두고서 한다는 것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였다.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해진 1년, 그 기간 동안 캐나다에서 워킹과 홀리데이를 즐기다 오는 것이다. 1년 후를 생각하면 더욱더 막막해졌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그 1년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은 지극히 떠나기 전의 생각이다.) 가끔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의 삶을 꿈꾼다. 그럴 때마다 혼자 여행을 하고 오기도 하지만 짧은 여행 기간은 나에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곳에서 사계절을 다 겪을 수 있는 1년이라니.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정말 갈 거야?’ 가족과 친구들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서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 ‘모르겠어’라고만 대답했다. ‘꼭 가야만 해’라는 간절함 따위는 없었고 가서 잘 살 거라는 자신도 당연히 없었다. 최종 결정을 하지 못한 채 나는 2019년 2월에 드디어 졸업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주 오랫동안 유지했던 학생 신분이 사라졌고 그렇게 나는 공식적인 백수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게으른 날들을 보내고 있지는 않았다. 매일 운동을 하러 나갔고 어학 공부 (영어가 아닌 일본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일본어가 하고 싶었다.) 도 했다. 부지런히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때 마침 발 수술을 한 엄마의 수발을 들기도 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나름 부지런히 살고 있는 나에게 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취업에 대해 간섭을 하는 학교도 없었다. 하지만 문득 이러한 편안한 백수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 일단 가보자. 아니면 돌아오면 되는 거지.' 여름이 다 되어서야 나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바로 다음 달에 떠나는 비행기로. 문제는 그동안 최종 인비테이션을 손에 쥐고 있었으면서도 캐나다에 대해서 알아볼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가야만 하나에 대한 고민만 했지 정작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생각이 거기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었나 보다.)
여기저기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쳐보았다. 보통 어디로 가는지, 집은 어떻게 구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러나 너무 많은 정보들이 한 번에 들어오게 되자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떠나기 전에 모든 것을 준비하려고 하면 두통이 더 심해질 것 같아서 일단 떠나고 보자로 결정했다.
떠나기 전 나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지 않는 건 20년 만이었다.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었다. (캐나다를 가는 떨림보다 머리를 자를 때 떨림이 더 컸다.) 나의 모습 자체에 변화를 주면 조금은 더 새로움 마음가짐을 갖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틀 후, 나는 2019년 9월 26일 오후 3시 30분 비행기인 Aircanada를 타고 캐나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