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당장 휘슬러에 갈 수 있다고는 말은 했지만 구글 지도를 킨 나는 한숨부터 나왔다. 휘슬러는 빅토리아섬에서 바다 건너 그리고 밴쿠버에서 한참 위에 위치해있었다. 나는 당연히 휘슬러에 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빅토리아에서 휘슬러’를 검색해보았다. 다행히도 이미 다녀온 경험자들의 후기가 수두룩 했다. 그리고 나는 바보같이 그 수두룩한 후기들 중 10년 넘은 글들을 잘도 골라서 읽었다.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길을 나는 무려 일주일 걸려 가게 되었다. 밴쿠버에서 휘슬러까지 매일 왕복 버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운행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강제로 밴쿠버에서 일주일을 지내게 되었다. 덕분에 예상치 못한 밴쿠버 관광으로 일주일의 숙박비 그리고 식비의 지출이 발생했다.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SOS…)
빅토리아와 밴쿠버 사이의 교통수단에는 비행기와 배가 있다. 비행기를 타고 빅토리아 섬으로 들어왔었던 나는 이번에는 배를 타보기로 했다. 빅토리아 다운타운에서 버스를 타기만 하면 바다를 건너 곧장 밴쿠버 다운타운까지 데려다준다. 버스에 탑승한 채 배에 승선하기 때문에 따로 환승할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스 혹은 자차를 이용하여 배에 탑승했다. 모든 승객들은 차에서 내려 객실층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꾸물거리며 늦게 올라간 탓에 명당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이른 아침에 나오느라 공복이었던 나는 우선 자리 찾기를 포기하고 식당칸으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 그 어느 곳에서도 앉을자리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아무도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 통로 쪽 창가 옆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창문 넘어 보이는 풍경은 산과 바다 그리고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뿐이었다. 단조롭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이 나에게 새로운 다짐을 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어떤 여행을 할 때보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일 년 동안 펼쳐질 새로운 것들에 대한 기대감도 생겼다.
버스가 배에서 하선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밴쿠버 다운타운으로 바로 집입 했다. 빅토리아와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밴쿠버는 역시 대도시였다. 높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밀집되어있었고 거리 곳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익숙한 북적임이었지만 그 속에 있는 나는 무척이나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길거리 곳곳에서는 고무가 타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사람들 손에는 캐나다에서 담배보다 흔하다는 대마초가 들려있었다. 유난히 홈리스가 많았던 Granville 거리에서는 냄새를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잠깐의 외출에도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다. 앞으로 며칠을 더 머물러야 한다 사실이 나를 힘겹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벗어나면 이상하리만큼 부지런해지는 나는 열심히 외출을 감행했다. 성실한 관광객 모드로 밴쿠버 관광지 도장깨기에 나섰다. 혼자였지만 맛집에서 줄까지 서는 열정까지 보였다. 현장보고를 위한 사진도 열심히 찍어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곳에서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빨리 밴쿠버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한 곳을 다녀오고 나서 며칠 동안 머물며 생긴 밴쿠버에 대한 반감이 한 번에 사라졌다.
밴쿠버 다운타운 끝 쪽에 위치한 스탠리 파크를 찾아갔다. 지도에서 본 공원 크기는 밴쿠버 다운타운과 맞먹는 크기였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원을 다 둘러보려면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말에 공원 앞 자전거 렌털 샵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공원의 안쪽 숲길로 들어가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원은 나에게 산악자전거를 추천해주었다. (가격은 모두 동일) 공원에서는 다양한 요트가 정박해 있는 밴쿠버 항구와 그 뒤로는 다운타운에 위치한 빌딩 숲이 보였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보다 크다는 스탠리 파크를 다 돌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도시와 자연이 하나가 된 모습에 빠져 초입에서부터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아주 새파랬다. 기차를 타거나 몇 시간을 차를 타고 가야만 겨우 볼 수 있던 바다를 도시 한복판에서 볼 수 있다니 처음으로 밴쿠버 사람들이 부러웠다. 해변을 따라 열심히 자전거 길을 달렸다.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곳에서는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풍경을 감상했다. 그렇게 나는 공원을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한 바퀴를 다 돌고 깨달은 사실은 나는 산악자전거를 빌렸다는 것이다. 분명 숲길 속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했는데 바다 풍경에 정신이 팔려 모든 숲길을 지나쳐 와 버렸다. 일방통행인 탓에 지나친 곳을 다시 가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결국 나는 한 바퀴를 다시 돌기로 했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지도에 집중했다. 대부분 오르막길로 되어있는 숲길 덕분에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의 고생은 충분히 감수할만했다. 빼곡한 나무숲 사이사이에 내리쬐는 햇빛은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공원은 완벽했다. 공원의 숲 속과 바다의 풍경 모두 아름다웠다. 산악자전거를 타기를 잘했고 공원을 두 바퀴 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리가 무감각해져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조금 힘겨웠지만 공원을 정복했다는 기분에 뿌듯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자전거만 탄 탓에 생긴 허기짐에도 나는 신경질이 나지 않았다. (곧장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공원에서 보았던 풍경들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을 잊지 않으려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어쩌면 밴쿠버에서 살아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탠리 파크가 있는 밴쿠버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