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긍정인지 무식인지 모를 마음을 갖고 있었던 나는 첫 목적지에서의 자리잡기를 실패했다. 임시 숙소의 체크아웃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은 초조해졌다. 어디든 다음 거취를 정해야만 했다. 기적적으로 체크아웃을 이틀 앞두고서 나의 다음 행선지가 정해졌다. 한 달도 훨씬 전, 캐나다로 오기 전,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그저 연습 삼아 이력서를 넣은 곳이 있다. 시간이 꽤나 흐른 탓에 나의 이력서는 휴지통에 버려진 줄 알았다. 느닷없이 온 연락과 동시에 바로 이어진 스카이프 화상 면접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정해진 합격 여부. 단 몇 분만에 일사천리로 모든 것이 끝났다. 거의 2주가 다되도록 구하지 못했던 집과 일을 단 몇 분만에 해결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이제 정말 갈 곳이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 어디선가 기적처럼 길이 하나씩 생겼다. 왜 꼭 아슬아슬하게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서러움이 있지만 그래서 인생이 즐거운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든 살아지는 인생이 참 재미있다. 어쨌든 조금은 한시름 놓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의 거지 같은 검색 능력으로 휘슬러에 가기 전에 밴쿠버에서 일주일을 머물러야만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문제의 일주일에 두 번 운행한다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휘슬러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나, 어느 노부부, 캐나다인이 아닌 것 같은 젊은 남자 한 명뿐이었다. 그 많은 관광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말 유명한 곳이 많을까 의심스러웠다. (여전히 다른 버스가 존재하는지 몰랐다.)
버스를 타기 전, 이름과 티켓 확인이 이루어졌다. 총 4명의 승객 중 나 혼자만 목적지가 달랐다. 휘슬러에는 Creekside와 Main Village인 두 군데의 마을로 나뉜다. 아주 오래전 원조 마을이었던 Creekside와 휘슬러가 점점 유명해지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Main Village다. 나를 제외한 모든 승객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Main Village에 간다고 한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Whistler’라고 써져있는 단어 하나만을 보고 예약했고 그곳은 바로 Creekside였다. 큰 배낭을 메고 양쪽에는 큰 캐리어 하나씩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는 버스기사가 나에게 물었다.
‘휘슬러에 왜가? 얼마나 있을 거야? 어디로 가는 거야?’
왜 나한테만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문이었다. 인종차별인가? 내가 승객인 것이 못마땅한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하러 가. 일 년 있을 거야. 포시즌스 호텔 가.’
포시즌스 호텔은 Main village에 위치해 있고 Creekside와 Main Village 사이 거리는 걸어서 1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라고 한다. 버스에서 내리면 호텔까지 걸어갈 것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휘슬러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쩔 줄 몰라하자 버스 기사는 일단 그냥 타라고 했다. 조금 더 먼 위치해 있는 Main Village까지 가는 버스비가 더 비싼지는 모르겠지만 버스 기사 아저씨가 너무 감사했다.
버스는 바다를 따라 북동쪽으로 향해 올라갔다. 창밖 풍경은 꽤나 장관이었다. 스쿼미시라는 지역을 지날 때는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눈이 수북이 쌓여있는 만년설이 있는 산이 보였다. 기찻길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과 계곡도 보였다. 가는 길 내내 다양한 자연의 볼거리가 있었던 덕분에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밴쿠버를 떠난 지 두 시간이 지나자 버스는 마지막 정류장인 휘슬러의 Main Village에 들어섰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세명의 승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짐들을 찾아 바로 각자의 길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린 나는 나의 짐들을 찾아 나의 길을 찾아 나서려던 찬라에 버스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왔다.
‘너 포시즌스 호텔 어디 있는지 모르지?’
갑자기 꺼내어져 있던 나의 캐리어들을 다시 버스에 싣고서는 버스에 다시 타라고 했다. 버스기사님은 그대로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차로 3분 거리였지만 큰 배낭을 메고 두 캐리어를 끌고 걸어서 가기에는 험난한 길이었다. 호텔 근처에 내려 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버스 기사 아저씨는 큰 관광버스를 끌고 호텔 정문 입구까지 진입했다. (호텔 입구는 버스가 들어가기 상당히 좁은 길이었다.) 호텔 입구에서는 벨맨 여러 명이 달려 나왔다. 큰 버스에서 버스기사와 나, 단 두명만 내리자 달려 나온 벨맨들이 영문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이 친구는 한국에서 왔어. 너희들하고 같이 호텔에서 일할 거야. 함께 잘 지내야 해.’ 버스기사 아저씨는 나의 짐들을 직접 꺼내어 벨맨들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최고의 일 년을 보내길 바란다며 주먹 하이파이브를 하며 윙크를 하고 그대로 버스를 타고 사라지셨다. 잊지 못할 특별 서비스였다. 여태껏 그리고 앞으로도 버스기사 아저씨만큼 친절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 좁은 세상에서 한 번쯤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캐나다에 온 지 3주가 지나 본격적인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하기 위해 무사히 휘슬러에 위치한 포시즌스 호텔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