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영화를 위한 지극히 주관적인 옹호
영화 <고스트버스터즈>(2016)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렇게 재밌을 수가.’ <고스트 버스터즈>는 내게 더없이 사랑스러운 영화다. 2시간 내내 흥겹고 즐거웠다. 그러나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긴 어려웠다. 대부분 개봉 사실조차 모르고 있거나 예고편을 슬쩍 본 이후 흥미를 잃은 상태였다. 맛있는 건 나눠먹고 싶고 재밌는 드라마는 입소문을 내고 싶듯,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보기 싫다는 이들에게 강권할 생각은 없다. 물론 취향은 존중한다. 다만 편견에 휩싸여 좋은 영화를 놓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니까. 사실 아주 주관적인 옹호에 가깝다.)
편견 1. “그거 유치한 애들 영화 아냐?”
유치한 건 맞다. 평소 생각하는 유령이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귀신’이라면 유치하다고 느낄 수 있다. 영화 속 유령은 어쩐지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하다. CG가 한껏 과장되다 못해 투박해서 때때로 옛날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게 의도가 담긴 연출로 보이지 않는다면, 황당무계한 말장난이나 B급 유머 코드를 싫어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애들만을 위한 영화’로 단정 짓기엔 이르다. 영화는 원작-조롱과 무시를 극복해내는 너드(nerd)의 성장-에서 더 나아가 인종, 성별에 따라 겪는 차별적 시선을 통찰한다. 더불어 전시 행정을 일삼는 정치인과 무능한 경찰을 풍자하고 야한 농담을 서슴지 않는다. (SNL 출연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만큼 엇비슷한 정서를 품고 가는 듯하다.) 어른이 보기에도 충분히 통쾌하고 웃기다는 뜻이다.
덧. 반대로 아기자기한 잔재미, B급 정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엔딩크레딧까지 꼭 챙겨보기를 추천한다. 필름 끝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쿠키 영상 하나를 봤다고 만족하며 자리를 뜨면 큰일 난다. 영화 내용 전반을 되짚어주는 CG와 사건이 해결된 이후의 뒷이야기는 물론, 크리스 헴스워스의 꿀렁꿀렁한 춤을 감상할 수 있다.
편견 2. “예쁜 여자도 안 나오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어.”
쭉쭉빵빵 미녀들만 나와야 한다는 법 있나. 대머리나 배불뚝이 아저씨가 주인공인 영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즉,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영화에는 ‘멋진’ 여자들이 나온다. 핵에너지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알 수 없는 공식들을 읊어대는 천재들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영화 속 과학자’ 이미지를 지워버린다. 특히 홀츠먼(케이트 맥키넌)의 매력이 굉장하다. 그녀는 유능하고 엉뚱하며 과감한 동시에 섬세하다. 첨단 무기를 척척 만들어내고 영구차를 근사한 출동차량으로 개조한다. 그녀의 마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사병 환자가 속출하고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쫙 붙는 가죽옷을 아래위로 빼입고 온몸의 곡선을 자랑한다든가, 눈물을 흘리며 흑기사의 구원을 기다리는 여인을 떠올렸다면 유감이다. 또, 그러한 여성들이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이후의 격정적인 키스 또는 섹스 장면을 상상했다면 기대는 산산조각 날 것. 무기를 휘두르며 유령을 소탕하는 그들은 파괴자(buster)다. 힘없는 공주가 아니기에, 백마 탄 왕자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세상을 구하러 나선다.
편견 3. “굳이 주인공을 다 여자로 바꿀 필요가 있나?”
리부트 제작이 발표된 순간부터 감독은 물론 배우들에게 극심한 비난이 쏟아졌다. 원작 팬들이 새로운 영화를 두고 아쉬움을 표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여성인 것에 대한 불만은 결이 다르다. “여자가 주인공이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이 원작을 망쳤다” 등의 우려는 고정된 여성의 이미지에 길들여진 탓이다. ‘상황을 꼬이게 만들어 놓고는 멍청한 표정으로 도움만 기다리는’ 기존의 여성 캐릭터들을 떠올리기에, 여성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고스트 버스터즈>를 상상하기 어렵다.
케빈(크리스 헴스워스)은 외모를 가꾸느라 일은 소홀히 하며 (주변이 시끄러운 상황에서 귀를 막는 대신 눈을 가릴 정도로) 멍청하고 눈치가 없다. 그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 건 다른 여성들이다. 에린(크리스튼 위그)은 오로지 그의 외모에 반해 끊임없이 추파를 던진다. 눈요깃거리로 소모되는 근육질 미남이 마냥 우습지는 않다. 성적 대상화가 주는 묘한 불편함이 웃음 속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대상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불편한 게 당연하다.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때다. 수많은 영화에 존재해왔던 ‘여자 케빈’이 너무 당연해서 불편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굳이 주인공을 여자로 바꿀 필요가 있냐는 물음에 간단히 답하자면,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젠더 스와프(gender swap)는 그 자체로 ‘여자가 주인공인 게 불편한’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얼마나 쉬운가. 주인공 성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사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니. 남성이 떼로 나오는 영화는 많이 보지 않았나. 이젠 여성이 떼로 나오는 영화가 만들어질 때도 됐다.
편견 4. “원작 팬들을 향한 모독이야.”
리부트의 의미는 시대에 맞는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악한 소품과 어색한 특수 효과를 화려한 CG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만이 리부트를 만드는 이유는 아니다. 발전된 기술을 발휘하는 것만큼이나 변화한 시대를 담아내는 것은 중요하다. 시간은 흐르고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변한다. 2016년의 <고스트 버스터즈>는 1984년과 같을 수 없다.
007은 장비 빨(?)로 버티는 바람둥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며 맨몸액션을 선보이는 순정파로 변했다. 분노한 맥스 앞에는 여전사 퓨리오사가 등장했다. 유령을 때려잡았던 지난날의 영웅들은 32년이 지난 지금 건물 밖으로 내던져지거나 택시를 타고 나몰라라 도망친다. 이젠 4명의 새로운 영웅이 우리를 악의 무리로부터 지켜낸다. 세상은 달라졌다.
설사 달라진 것이 없더라도, 혁신을 제언하고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것 역시 영화의 몫이다. 모두는 ‘과거와 달리’ 인종이나 성에 따라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리부트는 원작 훼손이 아니라, 과거와 다른 미래를 향한 노력이다. 위기에 빠진 오늘을 구하면 어제와 다른 내일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