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게도 꿈을 품는 우리 모두를 위한 헌정 예술
영화 <라라랜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라라랜드>(2016)의 오프닝 시퀀스는 압도적이다. 어느 꽉 막힌 도로, 길게 늘어선 차들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색깔도 모양도 다른 자동차 안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길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샛노란 옷을 입은 여인이 차에서 내려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이윽고 다른 남자가 노래를 이어가고, 곧 도로의 모든 사람들이 탱고, 삼바, 힙합, 모던 등 각기 다른 장르의 춤과 노래를 선보인다. 화면을 가득 채운 그들은 한 목소리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높은 곳의 빛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
만약 주저앉게 되더라도 박차고 일어나.
아침은 다시 올 거고 또 다른 날의 태양이 뜰 거야.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분명한 포부. 5분 남짓의 노래는 영화가 남은 시간 동안 담고 있을 모든 것들을 압축해서 분명히 보여준다. 뮤지컬이자 장르 불문하고 다양한 예술을 종합해놓은 형식의, 꿈을 노래하는 영화. 여기서 이미 관객은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라라랜드>가 인생영화로 남을 것인가, 즉 '이 영화에 사로잡힐 것이냐'는 물음에 대해.
미아(엠마 스톤)는 오디션에서 번번이 낙방하는 배우 지망생이다. 그녀는 자신의 꿈과 보다 가까워지기 위해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내에 있는 카페에서 일한다. 그곳에선 유명 감독이 디렉션을 내리고 동경하는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아는 언젠가 자신이 그 자리에 설 수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오디션장엔 자신과 비슷한, 어쩌면 더 나은 외모와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빽빽하다. 간절한 그녀와 달리 심사위원들은 무관심하고, 주변의 태도는 냉담하다.
재능이 없는데 원대한 꿈을 가져도 손가락질당하고, 재능이 있는데 소박하게 살려고 해도 욕을 먹는다.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재즈 피아니스트. 그는 변질되어가는 재즈를 두고 볼 수 없어, 정통 재즈 클럽을 운영하고자 한다. 그러나 클럽 사장이라는 꿈은 비웃음을 산다. 당장 먹고살 궁리나 하지, 돈도 안 되는 구식 재즈가 밥 먹여주기라도 하냐는 타박과 비아냥. 결국 세바스찬은 출장 밴드 세션으로 일하거나 레스토랑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는 식의,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정 반대의 음악을 연주해 생계를 잇는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만남은 서로가 최악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마다 이뤄진다. 꽉 막힌 도로에서, 세바스찬이 해고당한 순간, 미아가 파티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앞서의 여러 만남에서 삐걱거리고 어긋났던 두 사람은 별이 수놓아진 도시에서 비로소 손을 맞잡는다.
둘의 사랑은 탭댄스였다가 왈츠가 되고, 뮤지컬이었다가도 영화가 된다. 사랑에 빠진 그들이 발디딘 곳은 땅이 아닌 은하수, 현실이 아닌 로망.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삶을 확장하고 꿈을 이어간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든 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난관을 만난 두 사람은 조금 먼 길로 돌아가기로 한다. 미아는 문득 '내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극본부터 연기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해낸 그녀의 연극. 그러나 관객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나 같으면 창피해서 죽어버렸을 거야"라는 혹평에 그녀는 남은 공연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세바스찬 역시 '내가 원하는 것'과 '남들이 원하는 것' 사이의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일렉트로닉 재즈밴드의 멤버가 된다.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월드투어를 할 만큼 인기를 누리지만 앨범 발매와 홍보의 무한 반복 속에서 그의 꿈은 점차 희미해져 간다. 명성은 높아지고 통장에 돈은 쌓이지만, 이상하게도 행복하지 않다. 재즈를 지키겠다고 당차게 말했던 예전의 그는 사라지고 없다.
기적 따윈 없는 지루하고 무던한 현실 속에 작은 빛이 새어 들어온다. 미아의 연극을 좋게 본 영화 관계자가 오디션을 제안한 것. 그런데 그녀는 희소식에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이은 오디션 탈락과 그 과정 속에서 깎여나간 자존감 탓에 주춤거린다. 그런 미아의 마음을 돌려놓는 건 세바스찬이다. 미아가 세바스찬에게 '행복한 걸 하라'고 충고했듯, 그 역시 미아를 꿈 앞으로 떠민다.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말과 함께.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전작 <위플래쉬>(2014)가 광기 어린 천재들의 이야기였다면, <라라랜드>의 미아와 세바스찬은 특별한 누군가이자 평범한 우리다(전작의 조각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할 것). 그럼 꿈꾸는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야기의 끝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5년 뒤, 미아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이며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은 성황을 이룬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함께 하지 않는다.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오래 행복했더래요' 대신, 두 남녀가 짧은 눈빛과 작은 끄덕임을 끝으로(미치광이 선생과 제자가 그랬던 것처럼) 각자의 삶을 사는 결말을 택한다. 현실적인 이별로써 전반에 걸쳐 형성된 비현실성을 벗는 것이다. 이는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꿈을 이룬다'라는 명제를 참으로 만들면서도 영화 자체가 허황된 꿈이 아니라고 설득한다.
특히 엔딩 시퀀스가 가슴에 쿵 내려앉았는데, 세바스찬의 손에서 반복되는 단순한 선율은 끊임없이 변주하며 미아와 그의 '꿈같은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회화, 고전 영화, 연극, 재즈, 무용, 홈비디오 등 모든 예술의 형식을 빌려와 빚어낸 해당 장면은 우리의 삶이 곧 예술 그 자체임을 말하기도 한다. <라라랜드>는 꿈꾸는 사람을, 그들의 조각난 삶을 찬미하는 영화이자, 미련하고 바보 같게도 꿈을 품는 우리 모두를 위한 헌정 예술이다.
아래는 울컥했던 넘버, 'Audition'의 가사. 모든 The fools who dream을 위해.
Audition (The fools who dream)
My aunt used to live in Paris
I remember, she used to come home and tell us
stories about being abroad and
I remember that she told us she jumped in the river once,
Barefoot
She smiled,
Leapt, without looking
And tumble into the sand
The water was freezing
she spent a month sneezing
but said she would do it, again
Here's to the ones
who dream
Foolish, as they may seem
Here's to the hearts
that ache
Here's to the mess
we make
She captured a feeling
Sky with no ceiling
Sunset inside a frame
She lives in her liqour,
and died with a flicker
I'll always remember the flame
Here's to the ones
who dream
Foolish, as they may seem
Here's to the hearts
that ache
Here's to the mess
we make
She told me:
A bit of madness is key
to give us to color to see
Who knows where it will lead us?
And that's why they need us,
So bring on the rebels
The roles from pebbles
The painters, and poets, and plays
And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Crazy, as they may seem
Here's to the hearts that break
Here's to the mess we make
I trace it all back,
to that
Her, and the snow, and the sand
Smiling through it
She said
She'd do it,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