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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Feb 16. 2017

<더 킹> 작금에 걸맞은 총체적 난국

영화 <더 킹>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들을 참고한듯한 연출은 유려하고 지루할 틈이 없다. 감독이 영화의 제작 계기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라 밝혔고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주연배우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현 사회를 꼬집었다. 사회 고발을 소재 삼은 영화가 흥행하기에 아주 적절한 시국이기도 했다. 그러나 <더 킹>(2016)은 현실을 조롱하지만 비판하지 못했고, 왕이 될 수 없었다.



펜트하우스 시퀀스. 누구보다 진중하게 '버스 안에서'를 열창하는 정우성을 볼 수 있다. ⓒ<더 킹> 스틸.


  영화는 죽음의 위기에 놓인 박태수의 독백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삶을 돌아보고 선택의 순간들을 되짚는다. '그때 한강식의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 '최두일의 편에 섰더라면' 따위의 질문들을 던지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미래를 살아내기로 결심한다. 박태수는 이후 검찰의 모든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언론에 나서서는 청렴한 사회를 위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이어 비장한 표정으로 관객과 마주한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내 당선이 결정된다'는 말과 함께. 이 교훈을 위해 먼 길을 뱅뱅 돌아온 것이다.

 

  잘못 투표했다 좌절하지 말고 앞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보란다. 현실에 좌절한 이들에게 과거에 많은 과오를 저질렀지만 괜찮다고, 지금 눈앞에 놓인 과제(다음 투표)를 달리 해낸다면 이전과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뿐이다. 박태수가 2시간 내내 (내레이션으로) 성장과정까지 들먹이며 떠드는 바람에 쌓인 친밀감은 그가 부패한 검사로서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흐릿하게 한다. 잔인하게 폭력을 휘둘렀던 조폭 최두일이 친구를 위해 목숨 바친 의리의 사나이로 기억되듯. 불편한 미화에 덧대 청렴한 검사의 승진, 감옥에서 공황장애를 앓는 한강식, 체육교사의 성기능 상실 등으로 어설프게 권선징악을 실현하는 결말은 찝찝함만을 남긴다.



둘이 언제부터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사이였던가, 자괴감이 들고. ⓒ<더 킹> 스틸.


  한강식과 들개파 두목은 미련할 만큼 단순하게 악하고, 양동철과 태수의 가족은 어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익살맞은 조연이며, 박태수와 최두일은 방황 끝에 제 길을 가는 버디무비 속 남성의 전형이다. 한재림 감독이 (지나치게) 참고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는 난잡하고 잔인하며 유약하고 어리석은 주인공 조던의 결여와 다양성을 드러낸다. 한 개인을 통해 구조와 인간을 비웃을 줄 아는 근사한 영화다. 이에 반해 <더 킹>은 히 유형화된 인물들이 특정 역할을 나눠 가진다. 배우가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망가지는(신명 나게 무너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리워지는) 모습은 결국 어떤 것도 꼬집지 못한 채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멋'까지도 잃고 만다.


  때때론 안일하기까지 하다. 한강식의 레스토랑 시퀀스와 격동의 현대사를 교차하는 뻔한 직유를 지겹도록 반복했다는 것, 박태수 내연 관계의 기승전결이 지나치게 식상했다는 것, 부패함을 드러내는 방식이 앞선 영화들을 답습하는 데에 그쳤다는 것 등은 나중 문제다. '생각하지 않은' 흔적이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를 잊게 만든다. 고향 친구랍시고 의리를 다지며 눈물 흘릴 때. 김아중이 특별 출연해몇 안 되는 시간 동안 '아름답고 능력 있으며 쿨한 데다 나쁜 남자에게 이끌리는 여성' 따위의 남성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데 소모될 때. 카메라가 부패한 검사의 시선을 따라 여고생의 치마 밑을 훔쳐볼 때. 체육 선생이 제자를 성폭행했을 때의 쾌감과 아이의 살결을 자세히 묘사할 때. 그리고 고아성이 우스꽝스러운 화장을 한 채 커피를 나를 때마.



여성 배역이  끊임없이 소모되는 장면들. ⓒ<더 킹> 스틸.


  영화는 끝내 모든 것을 '국민의 선택'으로 귀결 지으며 몸을 사린다. 촬영감독의 역량과 연출의 다채로운 시도는 주목할만했지만, 정작 이야기를 살펴보면 빛 좋은 개살구가 따로 없다. 이 알맹이 없는 영화 전반의 웃음거리는 풍자라는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 유치한, 비꼬기에 지나지 않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해 그저 조롱하고 웃어넘기는 태도. 요약하면 '정신 승리'. 이는 '해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의 반영일 뿐이다. 사회 속 영화와 영화 속 사회 모두 아직 갈 길이 멀다.



갈 길이 멀다....... ⓒ<더 킹>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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