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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May 13. 2017

<킹메이커> 새롭지 않은 새 시대

이번엔 다를 것인가

영화 <킹메이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킹메이커>(2011)의 원제는 'The Ides of March'로 3월 15일,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한 날을 의미한다.


  "나는 카이사르를 사랑했지만 로마 시민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 그가 로마 시민 위에 군림해 황제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죽여야 했다."


  브루투스는 로마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연설했지만 시민들은 그를 권력에 눈먼 살인자라 손가락질했다. 카이사르가 사라져도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영화는 이 날을 현대의 대통령 선거일에 빗댄다.


"이번엔 정말 달라. 그는 다른 정치인과는 다르니까." ⓒ<킹메이커> 스틸.



  스티븐은 민주당 차기 대선후보로 유력한 모리스 선거캠프의 홍보팀장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후보를 신뢰하고 지지하며, 꿈꿔온 세상을 만들어줄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승리해야만 한다. 주변에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정치판의 섭리를 모르냐' 핀잔을 주지만 굴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물들 대로 물든 스티븐이 '이번만은 다르다'고 단언할 만큼 그가 보기에 모리스는 올곧고 청렴결백하다.


  모리스는 좋은 남편이자 훌륭한 행정능력을 보인 주지사이며 이상적인 정책을 펼치는 유력한 대선 후보다. 경선에서 보다 유리해질 수 있는 동맹도 자신의 정치신념에 반한다면 단호히 거절한다. 토론회에 나와서는 인권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시민의 행복권 보장을 외친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소중한 한 표를 호소한다.


스티븐에게 모리스는 세상을 바꿔줄 사람이다. ⓒ<킹메이커> 스틸.



  다른 한편으로 모리스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만 20세가 안된 인턴을 호텔방으로 불러들인 바람둥이고, 임신한 그녀를 외면한 냉혈한이다. 스티븐은 우연히 모리스의 또 다른 얼굴을 목격했지만 멈추지 않는다. 스티븐은 모리스의 과오와 그를 은닉한 자신의 죄 모두를 덮어놓고 앞으로 나아간다. 일단 모리스가, 아니 자신이 선거에서 이겨야 하니까.


  그는 오히려 약점을 빌미로 모리스를 조종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한다. 꼿꼿했던 모리스의 정치 신념은 존재 여부도 불투명한 증거와 스티븐의 협박 앞에 무릎을 꿇는다.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정치 생명이 끝나지 않길 바라서다. 모리스는 스티븐의 지시에 따라, 쓰레기라 욕했던 의원에게 부통령 자리를 약속하며 표를 확보하고 오랜 시간 캠프를 위해 일했던 본부장 폴을 해고한다.


스티븐은 모리스의 승리를 위해 그의 죄를 덮는다. ⓒ<킹메이커> 스틸.



  결국 스티븐도 모리스도 여느 누구와 다를 것 없는 '정치판의 아무개'가 된 것이다. 정치계의 모두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영향력을 가진 위치, 즉 권력을 갈망한다. 그러나 권력을 얻고자 했던 이유는 권력을 좇는 과정에 잡아먹힌 지 오래다.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그들은 세상을 바꿔낼 '자신'을 꿈꾼다. 승리 외의 것들은 전부 나중 문제다.


  눈을 빛내던 청년은 죽고 없다. 권좌엔 공허한 말만을 늘어놓는 파렴치한이 앉아있을 뿐이다. 소위 '해일 앞에서 조개를 줍지 말라',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사안의 경중은 권력을 쥔 자가 함부로 재단한 것이다. 정직, 신뢰 등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게 새로운 세상이라면, 부조리한 과거와 다를 바 없다. 


달콤한 미소 뒤의 냉소와 비판. ⓒ<킹메이커> 스틸.



  배우 조지 클루니는 늘 출마설에 시달렸다. 그는 연기, 연출, 각본을 맡은 이 영화를 통해 소문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달콤한 미소에 속으면 곤란하다고. 악법을 만들고 민중을 탄압하고 살인을 저지르고… 정의를 구하려 세상을 바꾸겠다던 모두는 스스로 정의가 되기 위해 정의를 죽였다. 정말 이번에야 말로 다를 것인가는 지켜볼 일이다. 비판적 시선을 성급히 거둔다면 실패한 역사는 반복된다.



카이사르를 죽인 브루투스는 어떻게 됐냐고? 그는 분노한 군중을 피해 로마를 떠났고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킹메이커>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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