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아니 이미 일어났지.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대부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린이가 세상을 살아가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서사. 몸은 다 자라다 못해 늙어가지만 철없이 구는 애어른, 생명을 얻고서 세상을 배워나가는 공기인형, 엄마가 떠난 뒤 혼란스러워하는 사 남매 등이 이에 해당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는 분명히 아이들에게 중점을 두고 있다. 부모의 이혼 때문에 떨어져 살게 된 형제 코이치와 류노스케는 가족의 재결합을 이루기 위해 모험을 계획한다.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짝사랑하는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어서' 등 저마다의 소망을 품은 친구들이 모여 형제와 함께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전부는 아니다. 아이들 주변, 즉 중심 서사 밖에 위치한 어른들을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조잘거리는 아이들 뒤의 어른들은 포커스 아웃된 흐릿한 세상에서 자분자분 움직인다. 감독은 어른들을 또렷이 드러내지 않았으나 관객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서사적 장치이자 또 다른 피사체로서 프레임 안팎에 의도적으로 둔 것이다.
어른은 곧 기적의 모험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의 앞날이다. 먼 곳의 기적을 놓지 못한 아이는 현실에 발 딛지 못한 채 어른이 됐다. 켄지는 아빠로서 아들 류노스케를 돌보긴커녕 거꾸로 보살핌을 받는 천덕꾸러기다. 그는 갑작스레 밴드를 하겠다며 직장을 관두고, 가계를 걱정하는 아내와 다투다 이혼했다. 만약 류노스케가 그에게 따끔하게 충고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꿈을 지지해주지 않았더라면 켄지는 망상에 갇힌 철부지에 머물렀을 것이다. 밤거리에 두 아이를 남겨두고 도박장으로 사라지던 남자가 그랬듯이.
멀지 않은 일상을 직시하기로 결정한 아이도 있다. 아픈 척 학교를 빠져나와 일탈을 즐겼던 학생은 어느덧 묵묵히 업무를 행하는 선생님으로 자랐다. 코이치를 키우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생계를 잇는 노조미, 메구미가 태어나자 배우를 포기한 요코도 꿈보다 가까운 것들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땡땡이'를 스터디로 깜빡 속아줄 만큼,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가루칸 떡을 빚으며 느낀 가슴속 저릿함은 기적을 향해 달려가던 아이들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어른은 누구나 과거에 아이였으며 아이는 살아있는 한 어른으로 자란다. 영화는 아이의 미래와 어른의 과거를 공존케 함으로써 주제의식의 시공간을 확장했다. 아이의 생명력은 싱그럽다. 시종일관 건강한 숨을 뱉으며 두 눈은 총명하게 반짝이고 보기 좋게 살이 오른 볼에는 홍조가 떠날 줄 모른다. 그에 비해 어른은 무거운 한숨을 내쉰다. 얼굴에는 주름이 잡혔고 탄력을 잃은 피부 사이로 삶의 고단함이 흘러내려 겪어낸 세상의 풍파를 짐작케 한다. 그토록 삶은 버겁다.
영화는 그렇게 살아낸 삶, 그 자체가 기적이라 말한다. 모험을 마친 아이들은 누구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기적을 위해 떠난 길이 사실은 스스로를 향한 여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소망을 미련 없이 털어내고 일상의 오늘을 사는 일이 바로 기적이자 아이들의 성장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는 살아서 어른이 되고, 어른들은 여전히 기적적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