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 왜 재미없을까?
2015년 6월 작성한 글입니다.
2011년부터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유쾌한 파티가 열리곤 했다. 사람들은 푸짐한 음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일상 속 부조리에 대해 성토했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가끔 욕쟁이 할머니가 얄미운 놈에게 욕 한 바가지를 날려줄 때면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듯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단골집을 찾는 일이 즐겁지 않게 됐다. 간판은 그대로인데 주인이 바뀌었는지 음식은 기름진 단일 메뉴가 전부고, 그곳에서 웃고 즐기는 이들의 머리 속엔 ‘에로틱, 성공적’만 가득해 보인다. tvN ‘SNL 코리아 시즌6(이하 SNL)’에 대한 이야기다.
요즘의 ‘SNL’은 사회 문제를 시원하게 풍자했던 예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인을 닮은 텔레토비가 치고받고 싸우던 동산과 정성호의 박근혜 대통령 모사는 사라졌으며 신동엽의 수위 높은 섹드립과 크루들의 열연만이 남았다.
현재 시사문제를 다루는 코너는 ‘GLOBAL WEEKEND WHY’가 유일한데, 그마저도 거액의 동전으로 외제차를 산 남성, 거리에서 문란한 행위를 한 남녀 등 주요 이슈보다는 ‘한중일, 세상에 이런 일이’에가까운 소식을 전한다. 중국 특파원 ‘양꼬치엔 칭따오’가 구수한 사투리로 능청을 떨고 일본 특파원 ‘다까라 시바사끼’가 비속어 가득한 야매 일본어를 남발하면 뒤이어 한국의 기자로 분한 권혁수가 국내 뉴스를 간단히 알린다. 진행자들이 대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느냐며 권혁수를 몰아세우면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우스갯소리를 뱉어 상황을 모면하곤 한다. ‘노인들이 사교육까지 받아가며 손주를 양육하는 이유가 뭔가’라는 질문에 ‘아무래도 물보다 피가 진하니까’라고 답하는 식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손가락질받던 윗분들이 사라진 자리에 약자가 앉아있다는 사실이다. ‘SNL’ 측은 지난 2월 클라라와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의 스캔들이 보도됐을 당시, 전 크루 클라라를 히스테릭한 협박녀로 희화화했다. 반면 이규태 회장을 둘러싼 비리와 그가 클라라를 협박한 녹취록이 공개됐을 때 SNL은 침묵했다. 두 달 뒤 ‘성완종 리스트’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에도 타락한 피노키오에게 비타 500 박스를 들게 하며 죽은 이를 농락했을 뿐,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뒷돈을 챙겼던 자들은 탓하지 않았다.
권력을 갖지 못한 자 외에도 외모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 특히 여성들은 놀림받는 약자가 된다. 샤이니가 호스트로 출연해 여성 크루 중 이상형을 꼽았을 때가 대표적인 장면이다. 당시 온유, 민호, 종현, 키가 각각 나르샤, 고원희, 정연주, 리아를 택하자 주변에선 남은 여성 후보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강유미, 안영미, 이세영, 정영옥의 기대에 찬 표정과 뒤에서 동정하는 남성들의 시선은 진땀을 흘렸던 태민의 표정만큼이나 난감했다.
‘SNL 시즌6’는 생존과 번식에만 혈안이 된, 본능적 욕구에 충실한 짐승을 보는 듯하다. 이번 시즌 슬로건 ‘민낯을 드러내다’가 알몸의 동물이 되겠다는 각오였던가. 일주일의 피로를 통쾌하게 날려주던 예전의 토요일 밤이 그립다. 부디 ‘SNL’이 제 색깔을 되찾기를 바라며, 시원한 풍자와 세련된 해학으로 풍성한 만찬에 초대해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