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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11. 2017

<수면의 과학> 유의미한 개꿈

가볍게 봐선 곤란해

영화 <수면의 과학>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곧 감독이 창조한 세계이자 그가 꾸는 꿈이다. 미셸 공드리의 작품, <수면의 과학>(2006)은 CG 대신 손으로 직접 만든 소품들을 특수효과로 사용한다. 펠트로 바느질한 말 인형, 셀로판지를 구겨 표현한 바다, 종이로 세워놓은 빌딩 등이 어릴 적 미술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프랑스 마술사이자 영화 제작자였던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와도 닮았다.


  수도꼭지엔 물 대신 셀로판이 흐르고, 작은 배는 숲을 싣고 항해한다. 초현실주의 예술의 '낯설게 하기' 기법이다. 익숙한 사물을 의외의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의미의 틈을 두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로는 마그리트의 그림들이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미셸 공드리가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면 이상할 것도 없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닮았다. ⓒ<수면의 과학> 스틸.



  이야기의 형태뿐 아니라 내용 또한 미셸 공드리의 자아가 짙게 배어있다. 그는 찰리 카우프만과 함께 작업했던 전작들과 달리, 직접 각본을 쓰며 주인공 스테판을 만들어냈다. 스테판은 '덜 자란' 남자다. 그는 어머니의 아파트에 얹혀살며 알록달록 어린이 이불을 덮고 잠에 든다. 어머니는 그를 두고 '6살 이후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다'라고 설명한다.


  스테판은 늘 꿈을 꾼다. 인간이 수면할 때면 의지와 상관없이 펼쳐지는 광경들. 문자 그대로의 '꿈'이다. 스테판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관계, 감정, 경험, 기억은 그가 잠든 뒤 또 다른 세계를 구성한다. 그곳에선 당위성이나 개연성, 규칙 따윈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스테판의 머릿속 방송국이 틀어주는 대로 봐야 하는, 그의 무의식 속에서 헤엄치는 세계다.


제작, 연출, 각본, 음악, 소품… 모든 것은 스테판, 또는 무의식의 몫. ⓒ<수면의 과학> 스틸.



  모두가 몽상을 관두고 어른으로 성장할 때 스테판은 꿈속에 남아 동심을 간직한다. 주변 사람들과 달리, 그의 욕망은 직관적이고 유아적이다. 갖고자 하는 바가 아주 단순하고 확실하다. 뜬금없이 과격한 성적 농담을 내뱉을 때에도 그는 그저 상대의 난처한 반응을 기대하는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의 욕망은 의지와 상관없이 꾸게 되는 꿈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스테판은 앞집에 새로 이사 온 여인, 스테파니와 점차 가까워진다. 스테판을 비웃는 사람들과 달리, 스테파니는 그의 발명품을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그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데 동참한다. 스테판은 곧 스테파니를 자신의 꿈으로 끌어들인다. 꿈속에서의 스테파니는 그가 바라는 것을 함께 바라고, 그가 주는 선물을 늘 기쁘게 받고, 그의 어떤 부탁도 거절하지 않는, 꿈속 세상을 비행할 동반자다.


스테판의 욕망 투영은 실제 존재들을 지워버린다. ⓒ<수면의 과학> 스틸.



  스테판의 일방적 욕망의 투영은 실제 스테파니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그는 스테파니의 장난감을 고쳐주겠다며 그녀의 방에 몰래 침입한다. 그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망상에 휩싸여 진짜 스테파니를 바람 맞히고, 허락 없이 그녀의 침대에 올라가 잠들어버리기까지 한다. 실재하는 스테파니는 스테판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에게 배제당한다.


  스테판의 순수함을 달리 말하면,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해 고립된 상태다. 혼자만의 꿈속에서는 실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의 꿈이 악의와 폭력을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닿는 모든 결과가 너그럽게 용인될 수는 없다. 스테판은 무한히 꿈꿀 수 있었고, 자유를 가진 꿈은 그의 현실을 집어삼켰다.


스테판이 바라는 꿈은 절대 이뤄질 수 없기에. ⓒ<수면의 과학> 스틸.



  영화는 낭만적인 풍경 사이로 무력한 인간의 존재를 회의하게 만든다. 스테판은 욕망의 주체이면서 객체이고, 꿈을 꾸는 행위자임에도 불구하고 꿈에 지배당한다. 수면하는 인간은 멋대로 찾아온 꿈을 막지 못한다. 의지와 상관없는 때에 깨어나야 하며, 기억으로 남은 꿈의 흔적이 낮의 시간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때문에 영화는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사랑스럽지만 어느 순간 불편함을 안긴다.


  감독은 기발한 상상력과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했지만, 의식으로써 무의식을 그리는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고 설득에 실패했다. 어떤 이에게 이 영화는 아름다운 로맨스로 기억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난해한 오브제의 집합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조차 각자의 '꿈'일 것이다. 영화는 다채롭고 흥미진진하지만 깨고 나면 실망스러운, 하지만 해몽하는 재미가 있는, 미셸 공드리의 '개꿈'이다.    


개꿈 [개ː꿈] : 대중없이 어수선하게 꾸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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