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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Jun 14. 2018

<데드풀> 아슬아슬한 줄타기 유우머

영화 <데드풀>(2016), <데드풀 2>(2017)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앗 농담이었는데 불편했으면 미안~( ͡° ͜ʖ ͡°)"


  어디서든 화려한 언변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술자리에선 웃음 사냥꾼이 되는 사람. 하지만 장난스러운 말속

에 묘하게 불편한 구석을 남겨두는 사람. 주변에 꼭 이런 사람이 한 명쯤은 있지 않나.


  문제를 지적해서 분위기를 깨뜨리기엔 애매하고 사소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재밌는 사람이라 척을 지기도 

꺼려지는 그런 사람 말이다.


  설사 조심스럽게 불편한 마음을 전한다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나를 '진지충'이나 '프로불편러'로 만들어버린다. 이 두 개의 낱말은 정말 진지해야 할 순간을 마법처럼 차단해버리는 재갈이자 족쇄가 된다.  


  영화 <데드풀> 시리즈가 내겐 딱 그런 인상이다. 오락적인 면에서는 충분히 즐겁지만 마음 한 구석을 편치 

않게 만든다. 분한 건, 머리를 비우고 생각 없이 보자면 참 재밌다는 점이다.




# 재밌는데 찝찝하고 불편하지만 웃긴


꼭 주인공 여자친구는 어디 납치되더라. ⓒ<데드풀> 스틸.

  

  여러 클리셰를 답습하면서도 마치 모든 클리셰를 타파한 것처럼 구는 능청스러움이, 데드풀의 '피가 묻어도 티가 나지 않는' 빨간 쫄쫄이 같다면 기분 탓일까.


  데드풀은 기존 영화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평등'을 강조한다. 예컨대 엑스'맨'을 엑스'포스'로 부르며 기존 히어로의 성차별적 의식을 지적하고, 동성애 혐오를 진부한 것으로 여기며 이성애와 다름없이 언급한다.


  그러나 동시에 기성 영화의 흥행코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데드풀은 할리우드에서 대형 제작사의 자본을 받아 제작된 영화다. 때문에 백인 남성이 가진 차별적 시선을 완전히 지워내지 못한 채 '웃고 넘어가면 되는 농담'으로 둔갑시키곤 한다.


  데드풀은 남성 주인공의 각성을 위해 희생하는 여인 플롯을 그대로 따른다. 사랑하는 여인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남성. 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나중에 부활하긴 하지만) 죽임 당하는 여성. 지독히 익숙한 줄거리다.


<데드풀 2>의 유키오와 섀터스타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아시안 판타지를  위해 소모된다. ⓒ<데드풀 2> 스틸.


  속편에 등장하는 유키오와 섀터스타도 마찬가지다. 두 캐릭터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아시안 판타지'를 충족하는 데만 소비된다. 


  유키오는 치파오와 기모노를 합친 듯한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빅 히어로> 등 여타 영화가 그려왔던 동양인 여성 캐릭터처럼 쨍한 보라색으로 염색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혼혈 배우 필립 탄이 연기한 섀터스타도 빨간 머리에 무술복을 입었다. 물론 쌍검술(사무라이)과 가라테 등 예상 가능한 특기를 구사한다. 그는 '모든 면에서 너희들보다 우월하다'(<스타트렉 다크니스>의 '칸'을 패러디한 것 같다)고 말하는 외계인 설정이다.


 섀터스타가 허무하게 죽어버리자 데드풀은 "기쁜 소식은 그는 죽을만했다는 거야"라며 그의 '우월함'이 허구였음을 비웃는다. 다른 인종을 두고 초록 피를 흘리는 외계인으로 묘사한 상태에서, 백인 남성 주인공이 이러한 대사를 뱉는 것은 너무도 위태롭지 않은가.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작 과정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는 '사망 소식을 듣고 얼마나 슬펐는지'를 말했을 뿐, 제작 과정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았다. /  문제의 T. J. 밀러(위즐 역)


  <데드풀>은 영화 밖에서도 많은 논란이 존재했다. 제작진은 <데드풀 2> 촬영 당시 흑인 여성 레이서(전문 스턴트가 아닌)에게 헬멧 착용을 막고 무리한 요구를 했다가 사망에 이르게 했다. 헬맷을 쓰면 CG비용이 더 든다는 게 이유였다. 


  또한 제작진은 위즐 역을 맡은 T.J. 밀러가 '폭탄 테러' 장난전화를 했다가 처벌받았으며 과거 성폭행·폭력사건이 폭로됐음에도, 하차 또는 편집하지 않고 촬영을 강행했다.  


  이 모든 것들이 데드풀의 은유적인 풍자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영화 <테이큰> 시리즈를 두고 "3편 연속 딸이 납치되면 아빠(리암 니슨)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 지적하고, "프로페서 X가 제임스 맥어보이인지 패트릭 스튜어트인지 너무 헷갈린다"며 <엑스맨> 시리즈의 혼란스러운 타임라인을 언급할 정도로 솔직했던 데드풀이 갑자기 그래야만 했을까?


  칼을 휘두르고 권총을 난사하며 적의 몸을 산산조각 냈던 데드풀이 갑자기 전 세계 전산시스템을 해킹해 상대편의 AI 로봇을 조종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일이다. 데드풀은 언제나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비판을 해왔다. 


위험한 듯 웃긴,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데드풀의 드립. ⓒ<데드풀> 포스터.


  시종일관 직격타를 날렸던 데드풀이 굳이 특정 문제에서만 논조를 바꿔 간접적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 해도, 백인 남성이 웃을 수 있는 농담은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이외의 코드는 찝찝함을 남긴 뒤 '풍자인가 조롱인가' 관객을 고민하게 하는 건 다소 자만스러워 보인다.


  진솔함이 최대 매력인만큼, 부디 유쾌함 뒤에 교묘히 차별적 시선을 숨기지 않길 바란다. 데드풀은 실험의 부작용으로 좀비 같이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제4의 벽을 깨고서 관객과 마주하며 각본의 허술함과 제작사의 야박한 투자에 일침을 가하는 전무후무한 히어로다. 나는 정말로 그와 그의 유머를 계속 좋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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