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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Aug 06. 2018

행정은 마케팅이다

2018년 한국마케팅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문



그야말로 마케팅의 시대다. 온오프라인에 상품과 서비스가 넘쳐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광고 역시 홍수를 이룬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 고객이기에 마케팅과 삶을 분리하기 어렵다. 이 시대에 과연 마케팅이 아닌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았다. 물자가 부족한 시절 공급은 늘 수요를 쫓아가지 못했다. 줄을 서서 물건을 사야하는 시대에 마케팅은 낭비였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는 달랐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상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이내 상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공급 증대는 곧 경쟁을 가져왔고 생산자는 고객을 유인해야만 했다. 공급자 중심이 아닌 고객 중심으로의 새로운 변화, 즉 마케팅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후 200년 넘는 기간 동안 마케팅은 지속적으로 발전을 해왔다. 마케팅은 이제 필수가 되어버렸다. 민간에서 마케팅을 이야기하는 것은 은행에서 금리를 말하는 것 같이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다. 마케팅 부서가 생기고 마케팅 전문가를 모집하였으며 대학에는 마케팅 학과도 개설되었다. 민간은 빠른 속도로 마케팅 시대에 적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공은 여전히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었다.


현대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코틀러(P. Kotler)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그는 논문을 통해 공공 조직(non-business organization)을 위한 마케팅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무렵의 일이다. 그는 마케팅이 단순히 치약, 비누를 파는 것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사회적 행동을 포괄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공공 부문에서의 마케팅 논의가 활발해졌다.  


실제 행정 영역에의 마케팅 적용은 1990년대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 등장 무렵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행정은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민간의 경영 기법 도입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마케팅을 위시한 주요 경영 기법들이 행정 영역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논의 역시 비슷한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정확하게는 IMF 외환위기 이후에 논의는 급진전되기 시작했다. 당시 IMF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요구하였고 이 여파는 정부에도 미쳐 작고 효율적인 정부 등으로 연결되었다.  


2000년 이후 그러한 흐름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리고 공무원들 역시 서서히 그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다만 행정과 마케팅의 연계는 여전히 그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꽤 오랜 기간 마케팅을 그저 “광고(advertising)”로서 국한시켜 왔기 때문이다.  


물론 행정에서의 마케팅 성공사례로 불리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일시적인 이벤트이거나 관례적인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랜 기간 체계적, 조직적으로 관리하여 전략을 세우고 효과를 보는 사례는 국내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행정에 마케팅 개념을 도입해 꾸준히 실행해 오고 있는 선관위의 사례는 굉장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1963년 창설한 헌법기관이다.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국가기관이다. 지난 2017년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궐위로 인한 선거를 성공적으로 잘 치러낸 기관이기도 하다. 선거행정과 마케팅,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이 관계를 잘 관리하는 기관이 바로 선관위이다.


선관위의 홍보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선거라는 시장이 열리면 유권자인 고객에게 투표라는 상품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잘된 것은 아니었다. 2000년 이전 홍보활동은 추상적 목표와 제한적 기법, 관련 연구의 부족, 결과에 대한 평가 부족 등으로 한계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는 크게 달라졌다. 특히 행정 마케팅 개념을 확고히 도입한 것은 커다란 변화였다. 우선 조직을 확대하여 전국적 홍보조직을 완성하였고 홍보 패러다임을 대대적으로 전환하여 국민과 적극적으로 가치를 교환함으로써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행정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창의, 소통, 협업이라는 조직운영원리를 홍보에 적용함으로써 마케팅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 결과 선거 및 선관위에 대한 유권자 인식은 눈에 띄게 좋아졌으며 대국민 신뢰도도 높아졌다. 지난해 서울신문에서 실시한 공공기관 신뢰도 분석에서 선관위는 헌법재판소, 고용노동부에 이어 신뢰도 37.5%로 전체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공명선거지수인 위법행위 단속 건수도 매년 줄어들고 있으며 참여지수인 투표율도 예전에 비해 크게 상승하였다. 선관위 홍보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60~70%대를 유지하고 있다.


선관위에 있어서 마케팅은 단순히 광고, 판매,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총합하여 체계적으로 조직화한 국민 지향 플랫폼이다. 이러한 결과는 행정 마케팅의 실제 사례로서 매우 의미가 있어 보인다. 또한 그 구체적인 내용은 행정 마케팅의 방향과 방법, 그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본 연구를 통해 선관위의 행정 마케팅 사례가 국민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가치를 전달하는 플랫폼으로 널리 행정에 적용되기를 기대해본다.



2018.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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