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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Feb 18. 2019

우리는 실패에 더 관대해져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라는 말이 뉴스나 신문에 자주 등장한다. 이는 혁신적 제품과 기술이 시장에 나오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규제에 특례를 부여해 기업들이 놀이터의 모래밭(샌드박스)에서처럼 맘 놓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는 취지의 제도다. 모래밭에서 자유롭게 만들고 부수다 보면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많은 장소 중에서 왜 하필 아이들이 노는 샌드박스 sandbox 일까. 어쩌면 어른의 시각에서는 아이들의 세상이 실패에 더 관대하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 아이는 늘상 넘어지고 다친다. 한 번에 성공하는 법이 없다. 아이는 거의 항상 자신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시도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아이는 무수한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도전한다. 마치 실패에 초연한 불굴의 의지자를 보는 듯 하다. 


걸음마를 배우는 돌 무렵의 아이를 보자. 태어나서 단 한 번만에 걸음마를 하는 아이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무수히 넘어지고 실수하고 또 실수하면서 아이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의 눈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집중하여 이 험난한 목표를 이뤄내겠다는 의지로 충만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있다. 아이는 실패를 거듭하지만 초조해하거나 창피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넘어지다 보면 아프고 힘들어서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거나 부모에게 창피해 할 법도 한데 그런 내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영유아들은 실패에 관대하다. 실패에 조급해하고 창피해 하는 어른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분명 어른들도 영유아인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 때는 어른들도 (아마) 실패를 두려워 하지도 창피해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실패에 당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어느날 이렇게 겁쟁이가 되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실패에 냉정한 문화 속에서 사는 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일어나는 어쩌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갈 무렵 자신들의 실수에 어른들이 특정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눈치챈다. 실수를 하면 어른들은 얼굴을 찡그리거나 낯을 붉히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가끔은 잘못에 대해 큰 소리를 내거나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부끄러움, 두려움, 수치심을 학습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어느새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점점 커져 어느 순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험을 피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도 않는데 까지 이르게 된다. 슬프지만 냉정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가장 쉽고 근본적인 방법은 아이들이 실패를 해도 어른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이미 어른들은 실패에 냉정한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몸에 익숙한 즉각적인 반응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실패를 보는 순간 의도적으로 반응을 만들어야 한다. 표정을 찌푸리지 말고 대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할 수 있도록 의지를 북돋아주어야 한다. 


"괜찮아, 잘했어, 다시 하면 되지, 엄마랑 같이 해도 괜찮을까"


"아빠도 그랬어, 그 나이에는 다 그래, 친구들도 다 그럴걸"


"다시 하면 될 것 같은데, 좀 쉬었다가 해볼까"


효과는 충분히 예상되는 바이다.



작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혼조 다스쿠 교토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실험을 하다 보면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때마다 기가 꺾이면 안 된다. 불가능은 없으니 반드시 길이 있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해 왔다"고 했다. 


어쩌면 교수보다 더 기가 꺾이면 안되는 사람은 우리의 아이들일 것이다.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는, 그래서 항상 결과적으로는 성공인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실수는 결코 나쁜 게 아니며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라. 
Teach that mistakes are not evil, and should not be feared.




이 글은 <그릿 Grit, 엔젤라 더크워스 저>와 관련 기사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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