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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Sep 02. 2020

2. 시카고 중고 거래하면서 느낀 점



처음 시카고에 도착해서 렌트 계약한 집에 왔을 때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기본 빌트인 된 냉장고, 세탁기, 가스레인지, 오븐 외에는 그저 빈 집이었다.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여섯 개의 이민가방이 우리 살림살이의 전부였다.



고로 물건을 사야 했다. 하지만 2년만 있을 유학생이 새 것을 사는 건 좀 아까웠다. 따라서 중고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중고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한국에는 중고나라도 있고 당근 마켓도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느낌은 뭐랄까 중고 없이 새 것 싸질르는 맛에 사는 사람들만 있을 것 같았다. 물자도 풍부한 미국 사람들이 굳이 만나서 쑥스럽게 하이 하와유 하면서 중고거래 따위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 지. 만. 그건 오해였다.



미국은 중고거래가 상당히 활성화된 나라였다. 동네 어귀 전봇대나 나무에 "Garage Sale"이나 "Yard Sale"이라고 붙여진 쪽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그 주소, 시간을 따라 가보면 집 앞에 좌판을 펼쳐놓고 물건을 팔고 있는 주인 내외를 쉽게 볼 수 있었다. Garage sale은 차고에, Yard sale은 앞마당에 물건을 펴놓은 것이었다. 근데 신기한 게 사람들도 꽤 많고 거래도 제법 많이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약간 동네잔치 같은 느낌이었다. 주인 백인 형님이 중간에서 맥주 마시면서 하와유를 외치면서 호객을 하고 새초롬한 안주인은 캐시를 받는다.



내 생각에 교외에 사는 사람들이 돈이 부족해서 이러한 행사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는데 목표가 있는 듯했다. 다른 미국인에게 물어보니 비슷한 생각이었다.



중고거래 중 한 가지 방식이 더 있는데 그건 "Moving sale"이었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무빙 세일을 우리와 같은 외국인이 본국에 돌아가기 위해 헐값에 짐을 한 번에 다 팔고 가는 거라고만 생각하는데, 사실 미국인들도 무빙 세일을 많이 한다. 왜냐하면 미국 내 이사비용이 엄청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진 짐을 팔고 가는 게 이득이 되기에 무빙 세일을 한다고 한다. 우리 집 원래 살던 주인이 직장을 옮기면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목적지가 텍사스였다. 편도 1,900킬로였는데 차로 쉬지 않고 18시간을 가야 도착하는 거리였다. 서울-부산이 400킬로니까 5번 왔다 갔다 하면 되는 거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사비용은 뭐 말 안 해도 ㄷ ㄷ ㄷ.



여하튼 다시 내 경우로 돌아와 나는 주로 한국 사람들과 중고거래를 하면서 물건을 취득해나갔다. 언어적 문제도 있지만 왠지 친근했기 때문이다. 소파, 프린터, 책장, 빨래건조대 등등 도장깨기의 자세로 하나 둘 격파해나갔다. 그런데 한 가지 물건이 계속 나오지 않았다. 바로 자전거였다. 우리 부부 둘이 탈 자전거를 사고 싶었는데 도무지 물건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미국인과의 중고 거래에 도전하기로 했다. 미국인들은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 중고거래를 한다고 했다. 자전거가 필요한 나는 bike near me를 페이스북 marketplace에서 검색했다. 차로 30분 거리(엄청 가까운 거다)에 원하는 물건을 찾았고 곧바로 facebook chatting을 보냈다. 약속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I’ll send it once the time comes라고 한다. 뭐 기다리라는 이야기 같았다. 암튼 때가 되었고 그에게서 장소 알림 문자가 왔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코리안 타임을 무시하고 약속시간 10분 전에 도착했다. 약간 노을이 지면서 어둠이 깔리는 시간이었다. 잘 지어진 2층 주택 옆 Garage에서 한 흑인 청년이 NBA 유니폼을 입고 서있었다. 후달렸다, 아니 좀 떨렸다. 긴장하지 말고, 그냥 하이 하와유 하면 된다.



차를 주차하고 가까이 가니 왓썹 하면서 반겨준다. 그러더니 두 대의 자전거를 천천히 내 앞에 꺼내 준다. 타보라고 한다. 순간 녹이 슬어있는 체인과 페인트칠이 벗겨진 바디가 눈에 들어왔지만 난 자연스레 외면했다. 원래 물건은 다 녹스는 거다.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 안 된다.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핑계로 돈을 깎으려고 했겠지만 원래 외국인과는 네고하는 거 아니라고 배웠다. 난 극히 짧은 거리를 자전거로 배회한 뒤 귀신에 홀린 듯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건네주었다. 판매자는 친히 자전거를 차에 싣는 거를 도와줬다. 참 착한 분이다. 자기 남동생과 여동생 자전거라고 하던데 사전에 동의를 구했는지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암튼 좋은 브랜드의 제품을 Reasonable 한 가격에 샀다. 마음에 든다. 하지만 교훈을 하나 얻었다.



중고거래는 같은 민족끼리.



(2020. 8. 31.)




ps. 그래도 아들 자전거는 새 거 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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