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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Sep 03. 2020

3. 아들의 School Physical 경험담



준서는 2015년 8월 27일생이다. 지난달 말에 만 5세가 되었고 따라서 9월 1일 기준인 미국 교육 체계에서 운 좋게도 바로 유치원(Kindergarten)에 입학할 수 있었다. 또한 일리노이주 개학은 원래 8월 17일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9월 2일로 연기되었고 다행히 중간이 아닌 개학 날짜부터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School Physical 이라는 신체검사를 병원에서 받아야 한다. (일리노이주 기준이다) 정확히는 내과의사(Physician)에게 직접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이라면 근처 아무 내과 찾아가서 우리 아들 신체검사해줘요, 그래 오키 좀 기다려, 신체검사 끝 잘 가 뭐 이런 절차를 거치면 된다. 하지만 국방비가 천 조원에 달하여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은 다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모든 과정이 쉽지 않다. 고난의 행군 시작이다.


일단 전화로 병원 진료 예약을 먼저 해야 한다. 동네 근처에 있는 병원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입한 의료보험이 그 병원을 커버하는가이다. 한국처럼 전 국민 동일 의료보험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내 보험을 그 병원에서 받아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전화번호를 누르고 기계음들과 한참을 씨름해야 살아 숨 쉬는 안내원이 전화를 받는다. 이제 비로소 영어회화 시작이다. 안내원은 이름, 생년월일, 집주소, 아이 이름, 아이 생년월일 등을 신나게 물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근데 너 무슨 보험이야"

"United HealthCare"

"응 우리 그거 안 받아”

"..."


그럴 거면 처음에 그거부터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니? 열 받았지만 참았다. 어차피 예상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가입한 보험회사에 전화했다. 한참을 기계음과 씨름하다 역시 살아있는 안내원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집 근처 병원 우리 보험 안 받는데. 네가 좀 추천해줘"

"응 기다려.... 찾아보니 너희 집 근처에 Northwestern Medical Center 있어. 거기 예약하고 거기로 가"

“확실하지..? 암튼 땡큐"


Northwestern Medical Center는 시카고에 있는 명문대학인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일단 전화를 걸었다. 크게 헤매지 않고 안내원과 연결되었다. 첫마디가, 


"너 무슨 보험 있어?"


출발이 좋다. 역시 명문대학 부속 병원은 시작부터가 다르다.


"United HealthCare"

"응 너 이름이랑 생년월일, 보험 번호 불러줘"

"(개인정보 공개 불가)"

"오키, 커버되네. 근데 너 무슨 진료받을 거야?"

"응 우리 아들 스쿨 피지컬, 이번에 킨더 가거든"

"콜, 닥터는 정했니?"

"나 여기 처음이야, 네가 추천해줘"

"언제 올 건데?"

"이번 주 아무 때나 가능해"

"응 8월 28일 금요일 어때? 너 아들 27일에 만 5세 되니까 그거 지나고 오는 게 나을 것 같아"


명문대학 부속병원의 안내원은 놀라운 혜안도 가지고 있다.


"매우 매우 고마워"

"천만에. 닥터 한 명 골라. 닥터 킴 게일은 오전 10:00 가능하고, 닥터 누구는 오전 11:30..........(누구누구 막 이야기함)"


내 경험상 이럴 땐 첫 번째가 제일 나았다.


"응 됐고, 닥터 킴 게일로 해줘"

"응 코로나 때문에 1자녀당 1 부모만 올 수 있는 거 알지. 바이"

"해브어나이스데이"


정말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병원도 정하고 닥터도 예약했다. 물론 아직 병원 문턱도 넘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행복했다.


저 전화통화로 예약 잡기까지 총 2시간이 걸렸다.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미국인들 일처리 속도도 그다지 빠르지 않다. 업무 처리 매뉴얼 같은 것은 태초에 존재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같은 사안에 대해 A가 그냥 안된다고 말하고, B는 되는데 조건이 있어서 넌 안된다고 말하고, C는 그냥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전화 한 통하고 나서 안되는구나 라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일단 안내원 세 명 정도와는 이야기해봐야 가닥이 잡힌다. 보통 그중 한 명 정도가 알아듣고 일처리를 해준다. 겪어보니 미국은 그냥 땅 넓고 자원 많아서 잘 사는 나라인 듯하다.


암튼 8월 28일 금요일 아침을 먹고 준서와 단둘이 병원으로 향했다. 준서가 오늘 주사는 안 맞는 거죠 라고 벌써 두 번이나 물었다. 신체검사하는데 무슨 주사를 맞아하고 쿨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병원은 적갈색 벽돌로 된 깔끔한 2층 건물이었다. 나는 아들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 로비에 들어섰다. 카운터에 앉아 보험증을 보여주고 약간의 서류를 작성한 뒤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5분 후 간호사가 왔고 따라서 방에 들어갔다. 간호사는 준서의 키, 몸무게를 재고 간단한 설문을 했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 간호사가 나간 뒤 드디어 닥터 킴 게일이 등장했다.


두둥.


하이 하와유. 닥터가 웃으며 들어섰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하면서 얼음을 깨더니 나에게 백신 맞은 증명서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오브콜스라고 말하며 한국에서 출력해 간 준서 예방접종 영문 certificate을 전달해주었다. 닥터는 그것을 보더니 엄지척 해준다. 그러고는 백신은 다 됐고 신체검사만 하면 된다고 하더니 정말 꽤 오랜 시간 진지하게 검사를 진행해주었다. 뭐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천천히 하나하나 꼼꼼히 신체를 봐주었다. 특히 작은 손망치로 무릎을 때려서 올라오는지 보는 검사도 진행했는데, 준서의 반사신경이 너무 좋아서 순간 닥터 머리를 차는 줄 알았다. 청진기로 이리저리 재보기도 하고, (동의 하에) 성기 포함 신체 구석구석을 체크해주었다. 아이가 처음 학교 가기 전에 이렇게 신체를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는 게 참 의미 있는 것 같았다. 내 어릴 적 기억에 한국은 개학 첫날에 일렬로 줄 서서 키 재고 몸무게 재고 그냥 뭐 대충대충 막 했던 것 같은데.


신체검사가 끝나고 세 가지 피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헤모글로빈 수치, 납 중독 등등. 아 이건 생각 못했던 전개였다. 준서에게 오늘 주사 안 맞는다고 여러 번 강조했는데 망했다. 백 프로 난리 칠 텐데. 그런데 피검사 걱정도 잠시, 닥터는 온 김에 플루샷도 맞으라고 했다. 피검사에 플루샷 추가. 이건 분명 민란이 일어날 각이다. 닥터의 제안에 이건 거부해야지 당연히 거부해야지 라고 따뜻한 가슴은 목놓어 외치고 있었지만, 또 예약해서 다시 오는 게 귀찮은 일임을 너무나 잘 아는 차가운 머리는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들아, 아빠가 미안하다.


닥터가 나가고 이제 집에 가면 돼요 라고 묻는 준서 눈을 피해 나는 먼 밖을 멍하니 내다보고 있었다. 곧 새로운 간호사가 왔고 준서 피를 뽑겠다고 했다. 준서는 그냥 멍 때리고 있다가 주사를 보고 기겁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주사는 왼 팔에 꽂힌 뒤였다. 미국 간호사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간호사는 세 가지 검사를 위한 혈액 채취를 빠르게 각각 끝낸 뒤 주사를 뽑고 밴드를 준서 팔에 붙여줬다. 그때까지 계속 울고 있던 준서를 향해 올셋을 외치며 사탕 하나를 던져준다. 준서는 사탕을 먹고 울음을 그쳤다.


준서는 나에게 이제는 집에 가면 되는 거냐고 물어본다. 나는 또 한 번 준서 눈을 피했다. 곧 또 다른 간호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플루샷 주사기를 꺼내자 이때부터 대환란이 시작되었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 준서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내가 손으로 붙잡으니 몸부림을 치기까지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 간호사는 단호했다. 별거 아니란 듯이 나에게 아이를 무릎에 올려 타이트하게 팔을 붙잡으라고 지시한다. 꽥꽥 소리를 지르는 준서를 잡으니 간호사가 빠른 손놀림으로 허벅지에 플루샷 원샷을 날렸다. 단호한 한 방이었다. 간호사는 쿨하게 굿잡 하면서 미키마우스 캐릭터 스티커랑 사탕을 던져주고 나갔다. 하나 같이 모두 쏘쿨하다.


준서는 이제는 제발 가자고 한다. 아들아 나도 더 이상 여기에 미련이 없단다. 씩씩한 아들은 이내 울음을 그쳤다. 진료실을 나와서 캐시 카운터에 가니 보험에서 다 커버되어 지불할 돈이 없다고 한다. 고맙다고 하면서 병원을 나왔다.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그래도 손에 스쿨 피지컬을 얻을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병원을 나와 학교에 스쿨 피지컬을 제출하니 웰컴 에머슨 스쿨이란다. 이제 학교 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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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요약


1. 미국 초등학교 입학하려면 School Physical 필요한데 한국에서 미리 영문 예방접종증명서를 뽑아와야 한다. (한국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서 출력 가능)


2. 미국 병원 예약할 때 먼저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병원 추천을 받아서 진행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다.


3. 영어 못해도 되는 게, 닥터에게 통역 서비스 사용한다고 하면 전화로 통역사 연결해준다.


(2020. 9. 1.)


 


ps. 준서 달래려고 병원 나와서 아이스크림 먹었다. 맛있는 집,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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