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은 당일날 꼬박꼬박 받았던 선물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그 시절 유행하던 로보트 혹은 장난감이 항상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그게 산타가 아니라 부모님이 주시는 거라는 걸 알았을 때에는 나름 좀 충격적이었지만 그래도 그 선물 덕분에 항상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어쩐지 산타가 원하는 선물을 따박따박 잘 주시더라니.
그리고 어느 순간 부모님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않으면서 내 크리스마스 기억은 툭 끊겼다.
그러다 결혼하고 아내를 만나게 되면서 다시 크리스마스 기억이 이어지게 되었다. 아내는 판타지를 좋아하는 소녀다. 해리포터, 라푼젤과 같은 영화는 물론 크리스마스와 같은 매우 판타스틱한 이벤트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거 다 거짓부렁이야, 라고 생각하는 심드렁한 남편과는 몹시 다르다.
2013년 12월 아내는 결혼하자마자 당시 코스트코에서 파는 1.9 미터 트리를, 50개짜리 오너먼트와 200개짜리 전구와 함께 샀다. 난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에서도 이렇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게 지낼 수도 있구나를 느꼈다. 그 후 매년 10월 말이 되면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을 가졌고 올 해까지 포함하면 햇수로 벌써 8회째가 되었다.
나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지난 시간 크리스마스 트리를 찍어놓았던 사진들을 천천히 돌려본다. 첫 해에는 둘만 있었지만, 어느 순간 준서가 생겼고 그 후 아이가 점점 더 커갔으며 올해는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민서가 등장했다. 별 것 아닌 이벤트가 한 두 해 쌓이다 보니 가족에게 큰 의미가 되어가는 것 같다.
와서 보니, 미국의 많은 가족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크리스마스 추억을 만들며 지내온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오나먼트로 트리를 장식하고, 할머니가 쓰던 전구로 집을 밝힌다. 아버지가 어릴 적 난로 위에 걸었던 양말은 그대로 아들에게 대물림 되고, 몇 대에 걸쳐 물려받은 어머니의 크리스털 장신구는 여전히 트리 제일 위를 빛내고 있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축복스런 시간이고, 그 시간을 가족과 함께 준비하고 꾸미고 즐기면서 또 다른 추억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로 어수선한 크리스마스이지만, 우리 역시 어쩌면 가족과 함께 집 안에서 새로운 추억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할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