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부터 다시 겨울학기 시작이다. 학기 전 마지막 주말을 편하게 쉬고 싶었는데 이메일을 통해 전달사항이 계속 전해지고 있다. 이번 학기 과제는 이렇고, 퀴즈는 저렇고, 다음 주까지는 뭘 해서 내고 등등.
훗, 너란 학교는 역시 꼼꼼하구나.
영하의 기온이 계속되고 길에 눈도 많이 쌓여있다 보니 주말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우리 동네 길거리는 원래 걸어 다니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요즈음에는 더더욱 드문 듯하다. 그럼에도 가끔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들 곁에는 언제나 개가 함께 있다. 그럴 때마다 본인 건강을 위한 것인지 아님 개 건강을 위한 것인지 직접 가서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다.
와서 보니, 미국인들의 개에 대한 사랑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듯 하다.
여행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이다. 그리고 휴게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단연 “개 산책로 Dog Walk”이다. 작년 여름 처음 로드트립을 떠나 휴게소에 들렀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개를 데리고 나와서 산책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참을 잔디 위에서 개와 함께 걷다가 차를 타고 다시 길을 떠났다.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든 개 산책로가 없는 곳이 없었다. 장거리 여행을 가면서 개를 데리고 가는 것도 신기한데 거기다 산책까지 시키면서 개 스트레스를 풀어주다니, 진정으로 개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호수 또는 바다에는 “개 해변”도 있었다. 처음 시카고에 왔을 때 여름이어서 미시간 호수에 수영을 하러 갔는데 길을 잘못 들어 이름 모를 한적한 해변에 도착하였다. 사람도 없고 잘 되었다 싶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다들 개를 끌고 오는 것이었다. 뭐 개랑 같이 해변 산책이라도 하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손님이었고 걔네가 주인이었다. 그곳은 개를 위한 해변, Dog Beach 였다. 플로리다 키웨스트에 갔을 때도 북적이지 않는 해변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간판에 역시 Dog Beach 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 해변에 갔을 때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으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나를 위한 해변인지 아닌지. 오 마이 도그.
실제 생활에서는 개에 대한 사랑을 더더욱 체감할 수 있다.
일단, 집 주변 미국인 집 중 개 안 키우는 집이 드물다. 보통 다 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길에서 사람 만나는 일이 매우 드문데, 가끔 만나면 여지없이 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중이다. 지난달에 앞 집에 새로운 미국인 가족이 이사를 왔는데 평소에는 마주치지 못하다가 그 가족 단체로 개 산책시킬 때마다 만나서 하이 하고 인사를 한다. 여기는 개 덕분에 이웃사촌의 미덕이 이어지는 것 같다.
준서 학교 미국 친구들 집 역시 개 안 키우는 집이 없다. 미국 아이들은 정말 개랑 뒹굴면서 커가는 것 같다. 반면 준서는 친구들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걱정이 많다. 개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준서는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보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아마도 미국인들이 보기에는 개와 친하지 않은 준서가 무척 신기할 것 같다.
하루는 준서가 학교 친구와 함께 동네 공원에서 눈썰매를 탔는데, 그 친구가 옆에 있던 엄청 큰 동네 개한테 갑자기 달려들어 개를 만졌다고 한다. 곁에 있던 아내는 아이가 큰 개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깜짝 놀랐고, 옆에 같이 있던 그 아이 엄마 역시 놀랜 듯 아이에게 다가가서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말은 다음과 같다.
“너 갑자기 개한테 달려들면 어쩌니? 그러면 개가 놀래잖니? 너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너한테 달려들면 좋겠니? 개도 마찬가지야. 네가 아무리 개가 좋더라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지. 다음부터 그러면 안돼.”
물론 모든 미국인들이 개를 사랑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5개월 동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보면 미국인들의 개에 대한 사랑은 정말 어메이징 한 것 같다. 털 달린 짐승을 내외하는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ps. 개 대신 닭을 좋아하는 준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