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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Jan 16. 2021

27. '화이트시티'로 보는 19세기말 시카고



작년 7월 말, 시카고로 유학 간다고 하니 지인께서 책을 한 권 소개해주셨다. 당시 경황이 없어 스마트폰에 책 제목만 간단히 메모해 두었었는데 최근에 메모를 정리하다 발견하게 되었다. 


에릭 라슨의 “화이트시티”


19세기 말 시카고를 배경으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묘사한 논픽션 non-fiction 이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운명을 가진 두 사람의 인생을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사건을 중심으로 밀도 있게 전달하는 책이다. 한 명은 시카고 만국박람회 총책임자이고 다른 한 명은 의사이자 연쇄 살인마이다. 


물론 책 자체가 매우 재미있기는 하지만, 내가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일련의 사건들이 바로 시카고 대학교 근처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 공부하고 머무르는 곳에서 1세기 전에 일어난 일들을 다시 살펴보는 것보다 흥미로운 일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과거와 현재의 시카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만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시카고 대화재, 그리고 시카고 만국박람회


시카고 대화재(Great Chicago Fire)는 1871년 10월 시카고 도심에서 일어난 큰 화재사건이다. 이로 인해 시카고 도심 지역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사건 이후 시카고는 무서운 속도로 도시를 재건했으며 이 때 생겨난 자부심을 ‘시카고 정신’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시카고 정신'을 가지고, 시카고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만국박람회 개최를 추진하였다. 경쟁 상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1등 도시인 뉴욕이었지만, 시카고는 재투표를 거치며 당당히 승리하였다. 



2. 시카고 만국박람회 개최장소 선정, 잉글우드 잭슨공원


잉글우드 Englewood 는 시카고 대화재 이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외지역 중 하나였다. 도심의 화재 후 많은 사람들이 시카고 최남단에 위치한 잉글우드 주택지역으로 몰려왔다. 이곳은 여덟 개의 철도노선이 모여드는 곳이어서 현재도 “시카고 정크션 Chicago Junction”으로 불리는 곳이다. 


잉글우드 안에는 잔디와 정원, 육상트랙을 갖춘 워싱턴공원과 개발되지 않아 황량한 잭슨공원이 있었다. 박람회 장소는 최종적으로 잭슨공원으로 결정되었는데, 박람회의 배경으로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푸르고 광활한 미시간 호수가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카고대학교는 서쪽의 워싱턴공원과 동쪽의 잭슨공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공원을 연결하는 버드나무 길인 미드웨이 플레이슨스가 캠퍼스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시카고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잉글우드 잭슨공원에는 여러 중요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미드웨이 플레이슨스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전시관이 설치되었다. 당시 최초로 만국박람회에 참여한 대한제국의 전시관도 미드웨이 어딘가에 들어섰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학교에 갈 때마다 미드웨이에 차를 주차하는데 가끔 고종황제께서 차 똑바로 안대니, 라고 꾸중하시는 것 같아 뜨끔할 때가 많다. 폐하, 평행주차는 어렵사옵니다.



3. 페리스 휠


시카고 만국박람회 직전 개최 도시는 파리였다. 4년 전인 1889년 파리는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며 그 유명한 에펠탑을 상징물로 건축하였다. 따라서 시카고는 박람회 계획단계부터 ‘에펠 타도’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건축가 조지 워싱턴 G. 페리스에게 에펠탑에 버금가는 상징적인 건축물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페리스는 고민 끝에 Ferris Wheel 이라는 직경 76m 바퀴가 수직으로 회전하는 구조물을 건설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놀이동산마다 있는 대관람차의 시초이다. 


당시에 페리스 휠은 매우 인기가 많아 매일 수천 명이 이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펠탑의 명성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페리스 휠은 박람회 기간 동안 미드웨이 중앙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박람회 종료 후에는 링컨파크 쪽으로 옮겼다가 세인트루이스로 다시 옮긴 후 그곳에서 완전히 해체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에펠탑은 넘사벽이지. 



4. 시카고 제조예술관, 현재의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제일 큰 건물은 제조예술관 Palace of Fine Arts 이었다. 잭슨공원 북쪽에 위치하여 박람회의 상징과도 같은 건축물이었다. 조지 B. 포스트가 설계한 이 건물은 신고전주의 양식을 채택하여 고대 로마의 영광을 되살려내려는 의도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이 건물의 영향으로 후에 시카고에 지어진 많은 박물관, 미술관 등의 건물이 한결같이 고대 로마식 원주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시카고 대학교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에 학교 구경 간다고 차 몰고 가다가 동네 한 복판에 왠 로마 신전이 있나 하고 넋 놓고 보다가 앞에 차량과 부딪힐 뻔하기도 했었다. 또한, 이곳은 우리 가족이 시카고에 도착하고 처음 가본 박물관이기도 하다. 규모가 말도 안 되게 큰데, 안에 실제 보잉-727 비행기도 들어있고 지하에 U-505 잠수함도 전시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현재의 박물관 규모가 130여 년 전 시카고 박람회 당시와 같다는 것이다.



5. 시카고 만국박람회 조경


잭슨공원의 조경은 뉴욕 센트럴파크 조경을 담당했던 프레드릭 L. 옴스테드라는 인물이 담당했다. 그는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브루클린의 프로스펙트파크, 코넬대학교와 예일대학교의 운동장, 그리고 수많은 다른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사람이었다. 시카고 대학교 캠퍼스의 조경 역시 그의 작품이다. 박람회 당시 몸이 안좋았던 그는 열정을 불살라 아름다운 조경을 완성하였는데 그의 힘들었던 순간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잭슨공원 안에는 우디드 아일랜드라는 곳이 있는데 현재도 일본식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박람회 준비 당시 일본이 그곳에 일본식 절을 짓겠다고 제안했고 시카고가 이를 수용하면서 지어졌다고 한다. 절은 일본에서 정교하게 만들어 와서 일본 장인들이 현장에서 조립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현재 절은 남아 있지 않다. 


박람회 주최 측은 조경에 더해 당시 “특별히 눈에 띄는 하얀 백로 4마리, 황새 4마리, 갈색 펠리컨 2마리, 홍학 2마리를 포함해서 오리와 거위 800마리 이상, 그리고 7,000마리의 비둘기”를 잭슨공원에 풀어주었다고 한다. 130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 영향 때문인지 학교 운동장과 근처 공원에 거위가 정말 많다. 많이 모일 때는 한 자리에 백 마리가 넘게 있을 때도 있다. 난 그 아이들을 캐구라고 부른다. 캐나다 구스의 약자.



6. 토마스 에디슨,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박람회 준비 당시 토머스 에디슨은 박람회장에 아크등보다는 백열전구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널리 사용되는 직류(DC) 방식을 사용하도록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람회는 교류(AC) 방식을 사용하는 웨스팅하우스사와 계약했고 이것이 전기의 역사를 바꾸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한다. 박람회 이후 일반 가정집에서도 교류 방식의 백열등을 사용하게 됐는데, 교류 방식은 박람회 건물에 사용된 후 대규모 건물에 적합한 방식임이 증명됐다고 한다. 이건 에디슨 흑역사인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세계 3대 건축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뉴욕의 구겐하임 박물관을 비롯 여러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시카고 대학교 부스 경영대학원 앞에 있는 로비 하우스 Robie House 라는 건물 역시 그의 작품이다. 시카고 만국박람회는 미국이 아름다움에 눈뜰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같은 사람들이 성장하는 데 기초가 된 필수적인 변화를 일으켰다고 평가되고 있다. 다만, 박람회 당시 교통회관, 특히 골든 도어를 설계해서 칭찬을 듬뿍 받았던 루이스 설리번(시카고 건축학파의 한 사람)은 동료들에게 결코 너그럽지 않았는데 후배 한 사람이 자유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고객의 집을 설계한 것을 알고 화를 냈고 결국 그를 해고했다고 한다. 그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였다. 지못미 라이트. 



7. 추운 겨울 날씨


19세기 말에도 시카고는 역시 추웠다. 당시에 나온 기사들이다. 


“기온이 영하 28도까지 떨어졌다. 얼어붙은 말의 분뇨 더미들이 여기저기서 추위를 실감나게 했다. 우디드 아일랜드의 둑을 따라서 60cm 두께로 언 얼음 속에 갈대와 사초 속 식물들이 심하게 뒤틀린 채 갇혀 있었다.”

“눈도 많이 내렸다. 날마다 내린 눈은 마침내 각 건물의 지붕에 수백 톤의 눈을 쌓아 놓았다.” 

”바람은 박람회장에 원한을 품은 것 같다.”


한결같구나. 시카고, 너란 날씨는.




1993년 내 고향 대전에서 개최되었던 엑스포 EXPO가 사실은 19세기 중반부터 이어져 온 만국박람회였다. 당시 엑스포 개최 장소 근처에 살았던 나는 자주 행사장을 들락날락하곤 했었다. 오랜 시간 줄을 서서 자동차관이나 테크노피아관을 보고 온 날에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딱 100년 전인 1893년 시카고에서 같은 행사가 열렸고 그 장소가 현재 내가 공부하는 건물 근처라는 점은 무척 신기하다. 평행이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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