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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Jan 25. 2021

28. 초보 와인 in 시카고



1월이 되니 많이 추워졌다. 낮이고 밤이고 상시 영하다. 내일부터 다시 heavy snow 가 내리고 밤에는 영하 15도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당분간 이불 밖은 위험해 모드로 지내야겠다.



작년 시카고 도착 이후 나의 여름밤을 책임져 준 이는 다름 아닌 맥주였다. 낯선 환경에서 잠이 안 올 때마다 시원한 맥주가 나를 꿈나라로 편안히 인도해 주었다. 미국 맥주 3 대장은 쿠어스, 밀러, 버드와이저인데 집 근처 마트에서 24캔 12달러에 살 수 있다. 3 대장 각각 한 박스씩 쟁여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오늘은 밀러 나오너라, 내일은 쿠어스 썩 나오지 못할까 하면서 놀다 보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맥주 덕분에 여름을 잘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겨울이 되니 맥주에 통 손이 안 간다는 것이었다.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하는 시카고 날씨에, 씨원한 맥주 한 잔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다. 맥주 3 대장은 마치 통금에 걸린 사람처럼 밤에 냉장고 밖을 나오지 못했다.  



아무래도 주종 선택을 달리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러시아 사람들이 괜히 40도 보드카를 먹는 게 아니었다. 역시 추운 날씨에는 도수 있는 술을 먹어줘야 하는 법이다.



고민 끝에 와인을 먹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와인=몬테스알파'인 대표적인 와알못(와인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관련 지식이 정말 1도 없었다. 그렇다고 와인을 글로 배우자니 생산지, 포도 품종, 당도, 탄닌, 산도, 바디감 등등 공부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이거 다 공부하다 가는 와인 한 잔 못 마시고 다시 여름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이럴 땐 그냥 무식하게 부딪혀 보는 게 경험상 나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무턱대고 와인 마트에 갔다.



와인 마트에는 톤즈 오브 와인이 있었다. 그런데 아..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도 한 번 골라 봐야지 했지만 어떻게 선택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예쁜 그림으로 골라 볼까, 멋진 이름으로 골라볼까 30분을 고민하다가 한 병도 못 사고 그냥 밖으로 나왔다.



난 와인 마실 팔자가 아닌가보다 하면서 집으로 오다보니 갑자기 난데없는 승부욕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래서 최소한의 선택 기준은 마련하고 다시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미국 와인에 대해서 아주 조금 공부해보았다.




미국 내에서는 캘리포니아, 워싱턴, 오레곤, 뉴욕, 버지니아, 텍사스 등에서 와인을 생산한다. 그중 생산량은 캘리포니아가 84%로 압도적이다. 따라서 지역사랑으로 먹는 것이 아닌 이상 캘리포니아 와인이 가장 대중적이고 접근도 용이하다.


캘리포니아 내에서는 Napa Valley 와 Sonoma County 가 제일 유명하다.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는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데, 마야카마스 산 Mayacamas Mountain 을 기준으로 서쪽은 소노마 카운티, 동쪽은 나파 밸리로 나뉜다.


태평양 연안에 인접한 소노마 카운티는 시원한 해풍의 영향으로 피노누아 Pinot Noir 와 샤르도네 Chardonnay 재배에 이상적이다. 반면 내륙에 위치한 나파밸리는 지중해성 기후로 카베르네 소비뇽 Cabernet Sauvignon 을 재배하기 안성맞춤이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피노누아는 레드와인 품종이고, 샤르도네는 화이트 와인 품종이다.


레드와인을 기준으로 카베르네 소비뇽과 피노누아를 비교하자면, 카베르네 소비뇽은 묵직하고 강한 맛이고, 피노누아는 부드럽고 옅은 맛이다.





많은 내용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공부하고 나니 근본없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와인 마트에 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뭔가 아는 이름들이 매치되기 시작했다.



나는 배운 대로(?)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2병과 소노마 카운티의 피노누아 1병, 샤르도네 1병을 샀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초보이므로 저렴한 것들로 구매하였다. 물론 가격이 비쌀수록 맛있겠지만 싸다고 맛없는 것은 아닐거라 스스로를 다독거리면서 말이다. ‘세상에 나쁜 와인은 없다, 더 좋은 와인이 있을 뿐’ 이라는 명언도 있지 않는가. 아무리 그래도 나파밸리, 소노마 카운티다.



집에 와서 며칠 동안 시음을 해보니 전부 다 맛이 좋았다. 내 개인적 입맛에는 포도맛이 강하고 묵직한 카베르네 소비뇽이 제일 좋았지만, 편하게 마시기에는 좀 옅은 맛의 피노누아도 괜찮아 보였다. 화이트 와인인 샤르도네는 과일향이 나서 상큼했고 샐러드, 생선요리와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다만, 샤르도네는 겨울보다는 여름에 더 어울려 보였다.



일련의 와인 학습과 구매를 거치면서 느낀 점은, 와인을 알아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는 점과 잘 배워놓으면 한국 가서도 평생 좋은 취미가 될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와인과 함께라면 시카고의 긴 겨울을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작은 나파밸리와 소노마 카운티지만, Lodi, Livermore Valley, Escondido 등 캘리포니아에 아직 갈 데가 많이 남아있다. 와인 품종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더 기쁘다.


와인,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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