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도 봄이 왔다. 드디어 지난주 영상 기온을 회복했다. 아직 따뜻하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긴 겨울을 거쳐서인지 상대적으로 포근하게 느껴진다. 오랜 기간 쌓여있던 눈과도 이제 안녕이다. 다시 오지 마.
완연한 봄기운에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거리로 나온다. 본인이 원해서인지 개가 원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개 한 마리씩 데리고 산책을 시작한다. 햇살 좋은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니 동네에 조금씩 활기가 돈다. 풍경이 점점 유채색으로 변해가는 게 참 좋다.
반팔 반바지 입은 사람도 종종 보인다. 아무리 영상이라지만 바람 불면 체감기온 영하인데 정말 대단하다. 노출된 살이 추워서 빨갛게 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지런히 걷고 달린다. 다음 주 15도 넘으면 웃통 까는 사람들도 슬슬 나올 것 같은데, 정말 못 말린다.
얼었던 미시간 호수도 거의 다 녹았다. 등굣길에 라디오 진행자가 웨더맨에게 오늘 다운타운 날씨 어떠냐고 물었더니, Water is moving 이라고 답하고 자기들끼리 웃더라. 진행자가 날씨 물었는데 너 뭔 소리하냐고 웃으면서 핀잔을 줬지만, 사실 저 말만큼 요즘 날씨를 잘 표현하는 말도 없는 것 같다. 호수가 녹고 파도가 치면서 시카고의 봄은 오는 법이니까.
사회 전반적으로 따뜻한 기운이 넘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활력이나 긍정적 기운 같은 건데 3월이 되면서 눈에 보이듯 꽤 선명해졌다. 비단 날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긋지긋한 코로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람들 사이에서 늘어나는 것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인구 1,270만의 일리노이 주의 경우 오늘까지 전체 인구의 8%인 100만 명이 (2차)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오늘부터는 화이자, 모더나에 이어 존슨앤존슨 백신까지 더해져 백신 3종 접종이 가능하다고 한다. 3종 모두 자국 백신이고,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 종식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어 속도는 점점 빨라질 예정이다.
일리노이주의 경우 대규모 접종 장소를 계속 확보하고 있고 제일 만만한(?) 군인들 동원해서 운송에서 접종까지 작전 수행하듯이 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로 접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현재는 65세 이상 노인들과 1.5단계인 의료계, 교육직군, 대중교통, 식료품점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접종이 가능한데 4월 이후에는 2단계 일반인 접종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 오래 거주한 사람조차 미국 건국 후 사람들이 이렇게 빠릿빠릿하게 뭔가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전례 없는 속도전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5월 말까지 전 국민 접종을 완료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공언도 지켜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그 덕에 우리 같은 검은 머리 외국인들도 덤으로 백신을 접종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머슴도 대감집 머슴이 낫다더니.
물론 백신 접종 관련해서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3종 백신이 균등하게 전 세계에 공급되어 다른 나라의 65세 이상 고위험 노인들이 먼저 접종을 완료할 수 있도록 했다면 전체 효용상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 국제정치에서 자국 이익보다 중요시되는 건, 사실상 없다. 어쩌면 전 세계 역시 미국의 자비를 기다리기보다 그들의 접종이 하루빨리 완료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이 빠르게 면역체계 구축에 성공해야 우리나라 포함 다른 나라로 가는 백신 공급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복잡한 마음으로 미국 코로나의 빠른 종식을 기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여전히 코로나 종식은 요원해 보인다고 한다. 나 역시 우리 집 앞에 눈이 가득해 있을 때는 봄이 정말 멀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눈이 걷히고 나니 바로 아래에 꽤 많은 초록색 새싹들이 이미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내 눈에는 안보였지만 봄은 어느새 내게 와 있었던 것이다. 화단에 있는 푸른 싹처럼, 한국의 코로나 종식도 시나브로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