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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Mar 21. 2021

36. 첫 돌 in 시카고


둘째 민서가 첫 돌을 맞았다. 태어난 지 150일도 안 된 핏덩이를 안고 미국에 올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그저 울기만 했던 아기가 이제는 제 발로 서고 걸음마도 하는 걸 보면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민서 생일은 정말 우연히도 내 생일 다음 날이다. 처음에는 이게 머선 일이고 싶었는데 이번에 생일을 같이 지내고 나니 참 잘 된 일인 것 같다. 물론 딸 생일이 메인이고 내 생일은 곁다리가 됐지만, 같이 축하해주고 축하받는 것이 정말 좋았다.


민서가 돌 무렵 되니 많이 키웠다고 생각됐는지 준서 친구 미국 엄마들이 하나 같이 하나 더 나을 거냐고 묻는다. 사실 미국의 경우 둘은 기본이고 셋 넷까지 낳는 집도 꽤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내가 아직 젊으니 하나 더 나으라고 은근슬쩍 권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낳으면 미국 시민권도 얻을 수 있다고 직접 꿀팁(?)을 주기까지 한다. 물론 아내가 인기가 좋아서 다들 눌러앉기를 바라고 한 말이겠지만 미국 사람한테 직접 시민권 이야기를 들으니 신기하기는 했다. 하지만 저희 그래도 안 낳아요.


지난 1년 동안 둘째 민서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사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탄생의 순간이었다. 하나의 생명이 세상에 빛이 되어 나오는 순간, 나는 그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정육식당에 들렀다. 만삭인 아내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나서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초기, 식당은 고기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속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기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하얀 연기와 사람들의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같이 따라 나왔다.


집에 도착해 아내와 준서에게 고기를 구워주었다. 나는 크게 입맛이 없었는데 만삭인 아내는 그 날따라 내가 구워주는 고기를 참 잘 먹었다. 포만감에 취한 아내는 평소대로 일찍 잠에 들었다. 출산 예정일을 3주 앞둔 때였다. 나는 티비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12시 즈음 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내가 나를 깨웠다. 느낌상으로는 거의 눕자마자 였던 것 같다. 시계를 보니 1시였다.


오빠, 양수가 나오는 것 같아.


준서 때와 같은 시나리오에 화들짝 놀라 잠이 깼다. 5년 만에 재방송을 보는 듯했다. 그때도 비슷한 시각 양수가 나와서 나를 깨웠고 차를 타고 부랴부랴 병원에 갔었다.


병원에 가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코로나 때문에 준서가 산부인과에 출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가 아파트 1층에 도착했다. 아내는 그 택시를 홀로 타고 병원으로 갔다. 둘째여서 좀 더 의연해진 듯했다.


나는 대전 사시는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했다. 바로 출발하신다고 하셨다. 2시간 후에 아버지가 오시면 준서 맡기고 병원으로 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뜬 눈으로 기다렸다.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아내였다.


오빠, 나 아기 낳았어.


하이패스 출산도 아니고, 너무 빠른 출산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내는 야밤에 카카오 택시 타고 홀로 분만실에 들어가 3.2킬로의 예쁜 딸을 한 시간 만에 낳았던 것이다. 좀 지나자 아버지가 오셨다. 자는 준서를 맡기고 산부인과로 갔다. 아내는 벌써 회복실에 있었다. 웃는 얼굴로 저녁에 먹은 한우 덕분에 빨리 낳은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로 아기를 바로 볼 수는 없었다. 해가 뜨고 오전 10시가 되자 면회가 가능해졌다. 첫 만남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갓난 아이들 사이에 딸 아이가 있었다. 눈이 크고 예쁜, 요다를 닮은 딸이었다. 아내가 옆에서 속삭였다.


고마워, 우리에게 와줘서.


.


민서 돌을 앞둔 우리는 돌상을 구해야 했다. 한국에서야 대여업체가 워낙 많아서 쉽게 빌릴 수 있지만 시카고에서는 꽤 어려운 일이었다. 업체 수도 적었고 가격도 비쌌다. 그래서 긴 시간 고민이 이어졌다. 우리가 만들까도 고민해봤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시카고에서 새로 개업한 돌상 대여업체에서 하는 이벤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개업을 기념하여 1명에게 돌상 전체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인스타그램 이벤트였다. 평소 인스타그램에 CEO인 마크 주커버그보다 더 공을 들이던 아내는 보자마자 바로 신청을 했다. 물론 결과는 반신반의였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당첨이었다! 맛스타그램이 효스타그램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아내는 무척 기뻐했다. 덕분에 우리는 민서 돌 당일, 올 뉴 돌상 한 세트를 무료로 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시카고 돌상 대여업체인 @rememberyou_chi 사장님 번창하세요.


둘째 민서와  365일을 같이 보냈다. 행복했다.  다른 365 역시  즐겁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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