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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Apr 08. 2021

38. 토끼 in 시카고


우리 집에  식구가 생겼다. 바로 토끼.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언젠가부터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지지난주, 우리는 준서 봄방학을 기해 뉴욕을 다녀왔다. 5박 6일의 일정이었다. 뉴욕은 10년 전 출장으로 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타임스퀘어를 걸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가져다주었다. 마치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물론 아시안 헤이트(Asian Hate) 때문에 걱정은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한결 같이 우리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어딜 가나 속 썩이는 문제아 한 둘은 있는 법이니 그런 사건들을 너무 큰 물결로 보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사람 사는 곳은 얼추 다 비슷하니.


암튼 달콤한 뉴욕에서의 5박 6일을 뒤로하고 우리는 금요일 오후 집에 도착했다. 오랜 운전 끝에 집에 도착하고 나니 집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어서 쉬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문 쪽으로 향하는데 다소 낯선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텃밭 한가운데 웬 토끼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그것도 턱 하니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나도 놀랐지만, 토끼는 나보다도 더 놀란 듯했다. 마치 난 원래 여기 살던 사람, 아니 동물인데 댁은 뉘슈 하는 눈빛으로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묘하게 당당함을 표출하고 있었다. 정식 임대차 계약을 맺고 매달 꼬박꼬박 임대료를 내는 건 난데 무단 점거 중인 저 토끼는 왜 저리 당당하지 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슬몃슬몃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정식 세입자와 불법 세입자 간의 신경전이 좀 길어졌다.


이런 와중에 준서가 달려왔다. 동물 사랑이 시튼 못지않은 준서는 나와 토끼 사이의 신경전을 허물고 토끼에게 다가갔다. 무작정 다가오는 준서(a.k.a 절대 권력자)의 등장에 놀란 토끼는 부리나케 일어나 집 앞 나무데크 아래로 들어갔다.


응 그렇지, 넌 너네 집으로 가야지........ 응? 근데 거긴 내 집인데?


기이한 동거의 시작이었다. 토끼와 함께 살게 되다니. 하지만 아직 하나의 가능성, 데크 아래로 도망갔다가 우리가 없어진 사이 다른 곳으로 갔을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그래 설마 데크 아래 살겠어.


그런데 그 날 저녁 준서가 토끼 먹으라고 데크 아래에 놔둔 당근이 다음날 아침 감쪽같이 사라지면서 남은 하나의 가능성은 사실상 소멸하였다. 토끼는 그곳에 사는 듯 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탄 걸 쟤가 알고 저러는 건가 싶었다. 마을의 유일한 한국인 집에 기생하다니.


하지만 그 이후 또 며칠 눈에 띄지 않아서 사나 안사나 반신반의하기는 했다. 그러다 지난주 화요일 그 토끼가 다시 집 앞 잔디밭에 나와 보란듯이 야생화를 뜯어먹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는데도 코만 벌름벌름할 뿐 미동도 없었다. 여전히 이 곳을 자기 집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때 준서가 다급히 나를 찾았다.


아빠 아빠, 저기 봐요 저기!

왜?

한 마리 더 있어요.

뭐가? 응?


그랬다. 데크 옆 텃밭에 한 마리가 더 있었다. 토끼 부부였다. 이것들이 아예 신혼살림을 데크 아래 차린 듯 보였다. 집을 비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뉴욕에 간 사이 아마도 빈 집이라 생각하여 터를 잡은 것 같았다. 며칠 전부터 벌들도 와서 집을 짓고 딱따구리 새들도 집 앞 나무에 집을 짓는 모양인데 이제는 토끼까지 데크 아래 신혼방을 차리고 있었다. 여기가 동물의 왕국인가 싶었다.


이후 토끼 부부는 종종 집 근처에서 우리 눈에 띄었다. 때로는 따로 때로는 같이였지만 둘이 함께 데크 아래 살고 있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냥 운명이라 생각하고 토끼 부부를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피할 수 없으면 같이 행복해야지.


그래도 가끔은 토끼에게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를 전해주기는 한다. 토끼야, 여긴 우리집이야. 그러니 선은 넘지 마.


ps. 동물, 곤충, 새들이  집처럼 살고 있는 살기 좋은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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