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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May 03. 2021

41. 에그드롭 in 시카고


금요일, 결전의 날이 밝았다. 오늘은 에그드롭(egg drop)의 날이다.


에그드롭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건물 2층에서 던지는 달걀 깨지도록 보호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한 어떠한 방법도 모두 가능하며, 다만 보호장치가 20cmx20cmx20cm 정육면체 부피를 초과하면  된다.


준서 담임 선생님은 이를 super fun STEM challenge 라고 이름 붙였지만(STEM은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의 약자), 우리는 이를 가문의 경쟁 family challenge 로 명명하였다. 5-6살 아이들이 스스로 이걸 기획하고 만든다는 건 무리였으니 이건 결국 부모들 간의 지략 대결이었다. 달걀을 사용한 시카고 천하제일 무술대회 같은 거였다. 준서와 나는 송 씨 가문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달걀을 사수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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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7


아직 여유가 있었다. 일단 A4용지에 스케치를 시작했다. 무조건 달걀을 깨지 않겠다, 보다는 심미적 기준을 충족시킬  있는 작품 master piece  만들어보자고 준서와 약속했다. 하지만 예술가를  번도 배출해   없는 가문의 후손답게 예술혼이 삭막했다. 역시 사막에서는 꽃이 피지 않았다. 장기 레이스인만큼 컨디션 관리하자는 생각에 첫날은 일찍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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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


아내가 도대체 언제 에그드롭 만들 거냐고 다그쳤다. 아직 좀 남은 것 같은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한 게 너무 없었다. 일단 준서와 마주 앉았다. 나는 무조건 뽀대가 나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준서는 아빠 뽀대가 뭐에요, 라고 되물었다. 뽀대가 뭐였지, 그동안 나도 모르고 썼던 말이었다. 아이 앞에서 표준어를 써야 하는데 반성하면서 네이버를 검색하다가 또 시간을 많이 보내었다. 준서가 졸리다고 했고 우리는 컨디션 관리차 또 일찍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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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숙면에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몸이 정말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나도 만든  없었다. 에그드롭에 대한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이제는 진짜 만들어야  시간이 되었다. 스케치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일단 스케치 없이 생각의 흐름에 따라 만들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안에 뽁뽁이로 감싼 계란을 넣고,  다른 플라스틱 컵을 뒤집어 아래를 받쳤다. 그리고  컵에 안에 얇은 나무꼬치  개를 다리처럼 붙였다. 그리고 위에는 낙하산처럼 비닐봉지를 달았다. 스케치 없이 만들었지만 만들고 보니  그럴듯했다. 2층에서 떨어뜨리면 낙하산이 펴지면서 바람을 타고 천천히 내려와 나무꼬치 다리로 연착륙할 것만 같았다. 준서와 둘이서 이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라 자화자찬했다. 준서와 나는 의기양양했고 내일 나가서 직접 낙하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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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


에머슨 유치원 부모들의 관심은 온통 에그드롭이었다.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걀 얘기만 했다. 병아리 유치원에 다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축구리그에서 준서 친구인 글렌 아빠 트레버에게 에그드롭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작년 경험에 대해 비밀스럽게 들려주었다. 핵심은 남자 선생님이 2층에서 던질 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안 던져준다는 것이었다. 작년에 자기는 비행기 모양을 만들어 갔는데 생각대로 날려주지 않고 옆으로 툭 던지더라는 것이다. 달걀 탑승자가 전원사망하는 비행기 추락사고를 눈 앞에서 목격한 트레버는 올해는 어떤 방향으로 던지던 상관없이 달걀이 안 깨지는 모형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굉장한 꿀팁이었다. 집에 돌아와 우리의 낙하산을 보니 이건 옆이나 거꾸로 던지면 낙하산 펴질 시간도 없이 바로 자유 낙하할 모양새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밖에 나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준서가 일단은 1미터 60센티 정도에서 옆으로 그냥 휙 던져보았다. 역시나 탁,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잘 익은 달걀이 바닥에 새어져 나왔다. 우리는 얼른 깨진 달걀을 회수해 바로 계란 후라이를 해 먹으며 새 모델 구상에 돌입했다. 현재 모형은 원하는 방향으로 안 던져주면 필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전면 수정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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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


역시 사람은 닥쳐야 잘한다. 하루 전이 되니 놀라운 아이디어가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난 이제 그만 그만, 하면서 내 뇌를 다독여야만 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떨어져도 안전한 UFO 모양을 만들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큰 틀은 유지하되 낙하산은 치워버리고 중간에 두꺼운 종이로 둥근 고리를 만들어 끼웠다. 안전과 "뽀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밖에 나가서 시험해보니 역시 괜찮았다. 이제 진검승부만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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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결전의 날, 결연한 자세로 준서 등교를 준비했다. 우리는 거의 국가대표의 심정이었다. 준서는 냉장고에서 UFO 모형을 꺼내서 학교로 가져갔다. 오늘 3시가 드롭 시작시간이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3시, 준서 학교로 모든 학부모들이 출동했다. 모두들 자신들의 에그드롭 모형이 성공했으면 하는 기대 반 근심 반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모든 달걀모형을 들고 남자 선생님이 건물 위 2층에 올라가셨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숨죽여 기다렸다. 남자 선생님은 아이 이름 호명과 함께 달걀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풍선을 달아온 아이도, 비닐에 물을 채워 안에 달걀을 넣어온 아이도 있었다. 성공과 실패가 교차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성공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UFO의 성공만이 필요했다.


어느덧 준서 차례가 왔다. "준서!" 외침과 함께 UFO가 떨어졌다. 순간 UFO가 선생님의 손을 떠나 슬로우 모션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UFO는 안정적으로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가 싶더니 마지막 순간에 톡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닿았다. 불안했다. 아이들이 모두 준서 UFO를 향해 달려갔다. 그 사이를 비집고 선생님이 가서 UFO를 분해해 달걀을 찾기 시작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1초 2초 3초. 그때 담임선생님이 준서의 달걀을 꺼내 들면서 외쳤다.


"준서 에그 서바이브"


귀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울려 퍼졌다. 지난 일주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외국인들 앞에서 보일 수 없었다. 깨졌으면 아빠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텐데 정말 다행이었다. 정말로.


일련의 과정을 겪어보며 부모와 함께하는 체험 학습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특히 에그드롭은 아이와 중력과 낙하, 마찰력, 그리고 부력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스케치 없이 했지만 내년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그리고 더 뽀대 나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ps. 이것 역시 한국도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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