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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Jun 11. 2021

45. 학교 종업식 in 시카고


작년 9월에 시작한 준서 유치원 과정이 오늘로 마무리되었다. 여름방학 지나고 9월이 되면 이제 1학년에 정식 입학하게 된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했던 것도 아직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학부모라니. 거기에 애 둘 아빠라니. 세월 정말 빠른 것 같다.


32년 전 1989년 3월, 나는 대전에 있는 유천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집에서 어른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리는 학교였는데, 입학 당일 첫 등굣길은 어머니와 함께 했다. 그날 어머니는 나에게 각종 이정표를 가리키시면서 차근차근 등굣길을 알려주셨는데, 다음날부터 쿨하게 잘 다녀와 하실 포석이셨던 것 같다. 지금 준서 생각하면 나 역시 꼬꼬마였겠지만 그래도 찻길 건너고 언덕도 오르면서 바지런히 학교 잘 다녔던 것 같다. 


내 기억에 입학식 당일은 좀 추웠던 것 같다. 아이들은 다들 가슴팍에 손수건 하나씩 달고 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의아하겠지만) 코 닦는 용도였다. 그 시절에는 왜 그리 다들 코를 흘렸는지 참 미스터리다. 실제로 우리 반 용철이란 아이는 생각보다 많은 코를 흘렸는데 어머니는 나에게 그런 용철이하고 친하게 잘 지내라고 하셨다. 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자식 뒷바라지하신다고 학교일을 많이 도우셨다. 그 해 가을, 어머니는 담임선생님을 도와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가셨다. 당시 50명이 넘는 아이들을 담임선생님 한 분이 인솔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소풍이라고 해봐야 학교 근처에 있던 배재대 뒷 산 나들이였다. 학교에서 걸어서 왕복 1시간 반 정도 걸릴 거리였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담임선생님 김밥과 과일을 준비하셨다. 반 아이들은 담임선생님과 우리 어머니와 함께 즐겁게 산에 올랐다. 점심을 먹고 장기자랑을 했는데 어머니가 아이들을 위해 노래도 불러주셨다. 노래 부르는 장면은 눈에 선한데 그때 어떤 노래를 부르셨는지는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동요였을 것 같은데, 어머니가 나훈아 찐팬이시라 가요를 불렀을 수도 있다. 물론 둘 다 충분히 가능하신 분이다.  


그 시절 어머니는 선생님에 대한 공경을 항상 강조하셨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하셨다. 어머니는 학교에 오시면 항상 선생님께, 우리 아이는 말 안 들으면 좀 때려주세요, 라고 간청(?)하시기도 하셨다. 선생님은 농담으로 알고 웃으셨지만 어머니는 진지하셨고 난 이거 여차하면 호되게 맞겠구나 하는 생각에 선생님 말씀을 정말 잘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자라왔기에 초등학교 선생님인 아내를 맞아 공경하면서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어머니가 나 몰래 아내에게, 말 안 들으면 좀 때려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말 안들을 때마다 아내 손이 움찔움찔하던데. 내일부터는 말 잘 들어야겠다. 


오늘 준서 종업식에서는 부모들이 현금을 모아 아이들 단체사진 액자와 함께 기프트 카드 형태로 선생님께 선물을 드렸다.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모인 앞에서 전달해드렸는데 훈훈하고 보기에도 참 좋았다. 한국에서야 어떻게 현금을 모아서 기프트 카드를 드려, 하겠지만 미국은 그런 면에서 좀 자유로운 듯하다. 선생님 생일에 스타벅스 기프트카드도 드리고,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손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도 드린다. 심지어 두 달 축구 코치해줘서 감사하다고 나에게 던킨도너츠 기프트카드 주는 학부모도 있었다. 대형마트 기프트 카드 섹션에 한가득 쌓인 카드들이 다 쓰임새가 있는 것이었다. 


난 특히 아이들 단체사진 기념액자가 너무 좋아 보여서 아내에게 한국도 저랬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좋기는 한데 한국은 어려울 거라고 했다. 돈 모으고 선물 주는 게 워낙 금기시되어서 서로 부담된다고 했다. 저건 돈보다는 마음인데, 하는 생각이 들자 내가 옛날 사람처럼 느껴졌다. 


요즘 보면 미국이 은근히 정 많은, 옛날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동네 사람들 모여서 파티하고, 서로 음식 나눠먹고, 아이들 같이 모여서 놀고. 정말 유행이 돌고 도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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