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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May 27. 2017

야구를 보지 않을 용기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부쳐

나는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해에 태어났다.


지난 36년의 세월 동안 나는 늘 야구와 함께였다.


태어난 곳이 대전이었기에 나에게 있어 야구는 언제나 이글스였다.


어린 시절 "빙그레 이글스는 우리들의 꿈" 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야구장에 살았다.


당시 2,000원이면 입장료, 교통비에 컵라면까지 먹고도 돈이 남던 시절이었다.


(내 기억에 90년 전후 한밭운동장의 어린이 입장권 가격은 500원이었다)


그 시절 이정훈, 이강돈, 장종훈, 강정길은 최고의 타자였으며, 한용덕, 송진우, 한희민은 최고의 투수였다.


당시 한밭운동장 1루 뒤 쪽으로는 경마장이 있었는데 파울볼이 그 쪽으로 넘어가면 아저씨들이 말 죽겠네 하는 농을 던지던 기억이 있다.


흡연과 소주 음주가 너무나 당연시 되어서 담뱃재가 바닥에 그득했으며 술 취한 아저씨들의 고성방가는 늘 있는 일이었다.


마음에 안드는 일이 생기면 소주병을 그라운드로 던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외야에 앉은 아저씨들은 상대 선수에게 욕도 많이 했다.


어린 시절 동안 야구장은 내게 놀이터였다.


이기면 이기는대로 지면 지는대로 그냥 재밌었다.


그러한 추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게 이글스 야구는 최고의 스포츠로 남아있다.






최근 10년 동안 이글스는 항상 하위권을 전전했다.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은 2006년이고, 당시 마지막 타자는 제이 데이비스였다.)


그 사이 한대화, 김응룡, 김성근 감독이 거쳐갔다.


혜성 같이 등장했던 류현진은 거액의 돈을 구단에 남기고 LA 다저스로 이적했고,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은 영구결번되었으며, 김태균은 일본에 갔다 다시 돌아왔다.


이용규, 정근우, 정우람 등 고액 FA도 영입했다.


최고 6위의 성적을 거둔 적도 있으나 10년 동안 꼴찌는 5번이나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난 경기장과 TV 앞에서 팀을 응원했다.


4할도 안되는 승률을 기록했던 2010년대 초반에도 유니폼 입고 경기장에 가서 열심히 응원하곤 했다.


어쩌다 이긴 날에는 TV 하이라이트를 반복해서 보며 승리를 만끽했다.


그냥 야구가 좋았다.


어린 시절 추억도 있고 정중동의 묘미도 있었다.


0:10으로 지는 경기도 그냥 봤다.


정든 선수들이 있기에 안타 하나에도 박수를 쳐줬다.


야구는 원래 그런거니까.


내일은 또 다른 야구가 펼쳐질테니까.






그런데 엊그제 구단이 갑작스레 감독을 경질했다.


(구단은 사임을 통보받았다고 하지만 정황상 경질이 맞아 보인다.)


144경기 중 100경기가 남은 시점이었다.


시즌 초부터 단장과 감독 사이가 안좋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설마했다.


시즌 개막 겨우 2달 지난 시점에서 감독 교체라니.


경기력이 살아나고 있으며 하반기에 치고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동력을 상실한 느낌이었다.


왜 시즌 초에 감독을 경질했을까.


팀을 위해서? 팬을 위해서?


사실 구단 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다.


누구를 위한 결정인가.






감독 퇴임 이후 며칠 동안 야구를 보지 않았다.


차마 보기가 힘들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때때로 스코어를 확인하면서 한숨만 나왔다.


무기력한 패배는 7연패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어제 NC와의 경기 마지막 부분을 보게되었다.


9회말 투아웃 주자 2, 3루에 하주석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 있었다.


안타 하나면 동점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삼진이었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그 전까지 하체를 잘 고정시키고 안정된 스윙을 했었는데, 어제의 마지막 스윙은 붕 떠있었다.


삼진에 화가 났다고는 하지만, 그 어린 선수가 방망이를 땅에 내리쳐 부수기까지 했다.


최고의 유격수로 커가던 선수다.


앞으로 10년 넘게 이글스를 책임질 선수이기도 하다.


야구가 잘되고 있던 상황에서 팀 분위기가 깨져 본인 멘탈이 흔들리는 듯 했다.


그 방망이는 내 가슴도 쳤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누구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야구를 안 볼 용기는 없지만 너무 힘들다.


나에겐 인생의 동반자와 같은 야구이기에.


정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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