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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Jan 01. 2022

56. 재외선거 in 시카고


2021년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온 지 정확히 504일 되는 날이기도 하다. 어느덧 국외연수 기간의 2/3가 지났고 이제 집에 갈 날도 200여일 남짓 남았다. 남은 기간, 그동안 참아왔던 향학열을 불태.. 아니 꺼뜨리면서 가족들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야겠다. 


최근 지인 분께서 내게 새해 인사를 겸해 가족들과 현재를 행복하게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시간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그게 후회의 크기는 줄일 수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무척 공감이 되었다. 


사실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에 정착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미국에 사는 건지, 미국이 나를 사는 건지 도통 알 수 없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 올해는 달랐다. 한 해 동안 미국에서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서와 그 친구들을 통해 미국 아이들의 생활을 관찰할 수 있었고 그 부모들을 보면서 미국인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나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태도와 가치관을 점검하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성찰이 앞으로의 내 삶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2022년에는 3월 9일 20대 대통령선거가 있고, 6월 1일 제8회 지방선거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첫 재외선거이다. 한국의 대통령선거 투표권이 어떻게 미국 일리노이주 내가 사는 동네에 까지 올 수 있었는지 참 신기한 일이다. 재외선거 관련하여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런 저런 바쁜 일(노는 일)로 끝맺음 못한 글이 컴퓨터에 남아있었다. 2021년 마지막날 동네 도서관에 앉아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면서 여기에 마무리하려고 한다. 다만, 낮 2시부터 시카고 불스 경기가 있어서 경기시간되면 마침표 찍고 그냥 끝낼 것이다. 따라서 글과 관련한 모든 오타, 실수, 부족함, 창피함, 책임은 온전히 시카고 불스에게 있다.


임인년 새해 모두 복 많이 받으세요 ^^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인기다. 구독자 2억명이 넘는 넷플릭스에서 전세계 1등이라고 한다. 주위 미국 친구들이 서로 시청을 권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미국인들이 서로 권하면서 보는 한국 드라마라니, 감회가 새롭다. 


인기는 드라마 자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 곳에 등장하는 한글, 음식, 그리고 놀이로 확장된다. 그들은 딱지치기와 구슬치기에 관심을 보이고 떡볶이와 달고나 맛을 궁금해한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에게는 이런게 큰 힘이자 ‘기댈 곳 lean-on’이 된다. 


지금이야 영화, 드라마, K-pop 등을 통해 한국 문화가 해외에 널리 보급되어 있지만, 우리 문화가 세계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인 1893년, 조선은 ‘Corea’라는 국호로 시카고 만국박람회(Chicago World Fair)에 처음 참석하였다. 내가 다니고 있는 시카고 대학교가 바로 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이역만리 조선에 직접 대외사절을 보내 만국박람회 참석을 요청하였다. 고종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대외적으로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참석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고종의 적극적인 참석의지와 달리 당시 조선은 무척이나 가난한 나라였다. 참의 내무부사 정경원을 단장으로 하여 통역, 악사 등 총 10여명으로 구성된 매우 단출한 사절단을 시카고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도착해서도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박람회에 걸맞는 조선 고유의 전통 건축물을 세워야 했지만 돈이 부족했다. 전통 목수도 없었다. 따라서 서까래와 기둥, 지붕의 전통양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조악한 임시 부스를 급조하여 설치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은 ‘제조와 교양관’ 건물 한쪽 구석에 아주 조그맣게 할당받은 공간조차 제대로 채울 수 없는 매우 참담한 상황이었다. ‘장난감 같은 전시관 (toy-like exhibition)’ 이라는 혹평이 따라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시품 역시 부실했다. 미국 등 선진국은 최신 기계장비와 전기설비 등을 뽐내고 있었지만 조선은 전통악기, 그릇, 의류 같은 수공예품 외에는 내놓을 것이 마땅치 않았다. 물론 그것들이 외국인 눈에는 이국적이고 신기하였겠지만 ‘고립된 은둔국가’였던 조선을 문명국가 또는 문화국가로 인식하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하루 종일 전시관에 체류하며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윤치호는 “나는 그 처참한 모습에서, 내 나라의 모습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라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사절단은 이웃나라 일본이 미국 건축학계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영감을 준 건물인 호오덴 전통사원을 화려하게 짓고 있는 것을 그저 곁에서 지켜봐야만 했을 것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미시간 호수의 찬바람을 맞으며 기댈 곳 하나 없이 서있었던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해외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들의 지난 삶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타국에서 행복한 삶보다는 힘들고 지친 날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태평양 건너 대한민국의 발전을 바라보며, 그 모습에 기대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더 인내하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헌법재판소는 2007년 6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재외국민 투표권을 인정해 주었고,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재외국민 대상 재외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헌법기관들이 해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기댈 곳 lean-on’이 되어준 것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재외선거인 등록신청 및 국외부재자 신고 마감일(2022년 1월 8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외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온라인을 통해 신청 및 신고를 할 수 있다. 세계 어디에 있든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상 보장된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재외국민 모두 긍지를 가지고 신고 및 투표에 적극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다. 100여년 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희망이 오징어 게임으로 꽃 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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