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에서 듣는 수업이 대부분 개발도상국 경제개발에 관한 것이다. 과거 50년 전이라면 우리나라도 여기에 해당되었겠지만 이제는 어느덧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기에 한국에 관한 내용은 없고, 대부분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것이다. 오히려 한국을 모범 사례로 꼽는 분야가 많으니 격세지감이라 하겠다.
개발도상국 경제개발을 공부함에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케이스 스터디다. 몇몇 나라를 집중적으로 파서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해 나가다 보면 전체 개발도상국의 문제와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문가들이 많이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나라의 역사에서부터 문화, 정치, 경제상황 등에 대해 전반적인 공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학기 10주 정도의 기간 동안 그것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보통은 다른 지름길을 모색하게 된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그 나라의 여러 통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인구통계, 교육통계, 경제통계, 산업통계 등을 살펴보다 보면 그 나라의 과거 및 현 상황이 마치 날 것처럼 눈앞에 펼쳐지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래는 브라질 Brazil의 빈곤율 통계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10%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가 갑자기 2020년 5월에 빈곤율이 5%대로 떨어지게 된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단체로 로또라도 맞은 것일까?
실상은 이렇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브라질 정부는 현금지급을 계획하였고, 2020년 4월부터 4개월에 걸쳐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 매달 평균 250 헤알을 현금으로 지급하였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에 빈곤율이 떨어진 것은 이러한 현금지급의 직접적 효과였던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매우 단기적이었다. 지원금이 끊기자 다시 빈곤율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2021년도에는 기존 빈곤율보다 높은 12.83%를 기록하게 되었다. (관련 기사)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통계 수치로 만들어진 그래프 하나가 코로나 바이러스 현금지급 정책에 대한 효과성을 매우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통계는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그 나라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많은 시간이 안 든다는 것은 전술한 것처럼 그 나라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지 않고도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지 통계 찾기가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통계를 찾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일단은 여기저기를 많이 기웃거려야 한다. 세계은행(Worldbank),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좋은 사이트가 많이 있지만 클릭 한 두 번에 내가 원하는 통계를 정확히 얻을 수는 없다. 파고 파고 또 파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위 사이트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OECD가 제일 유용했다. OECD 안에는 각 대륙의 대표 국가들이 골고루 모여있어 개발을 꿈꾸는 나라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성장 기준으로 삼기에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 혹은 후진국 입장에서는, 선생님 1인당 "적정" 학생수 기준을 얼마로 잡아야 할지, 실업률은 어느 정도가 "적정" 수준인지, 출산율은 몇 %가 "적정" 한지 등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럴 때 그 "적정" 기준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OECD 평균이다.
물론 100%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잘 사는 국가들은 이 정도가 평균이래" 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어렸을 때 "우리 학교 공부 잘하는 애들은 하루에 8시간 공부한대, 나도 오늘부터 8시간 공부해야지"와 같은 마음의 안정감을 주기에 생각보다 효과가 크다.
OECD 가입국인 한국 안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한국의 어떤 분야를 잘하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부족한지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비교하는 잣대가 바로 OECD 평균이다. R&D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가계부채는 적정한지 등을 OECD와 비교하면 우리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요즘 OECD 사이트에 갇혀서 여러 통계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중이다. 내 연구의 주 타깃은 중남미 쪽이다.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등등. 따라서 이쪽 통계만 잘 살피면 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자꾸 눈길을 가는 한 나라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내가 자라고 큰 나라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따라서 중남미 통계를 볼 때마다 한국을 꼭 끼워서 같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래와 같은 식이다.
위 통계는 인터넷 접속 가능 비율인데, 뭐 한국이 압도적인 1등이다. 이럴 때마다 소위 국뽕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위 통계는 OECD 국가들의 비만율이다. 일본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로 비만율이 낮은 국가이다. 스스로 뱃살을 보면서 매일 한탄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 뱃살은 애교살이었다. 진짜 뱃살은 멕시코와 미국이 가지고 있었다. 통계는 이처럼 자기 객관화마저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OECD는 다양한 통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대부분의 통계에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OECD 평균 근처에 맞춰져 있는 한국의 통계들을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 수치만 보면 헬조선이 아니라 헤븐조선이다.
그런데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때때로 눈에 띄게 요상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통계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된다.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보다 하는 걱정에서다.
아래에서는 나에게 걱정을 안겨주었던 몇몇 통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의 걱정이 기우가 될 수 있도록 국가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주었으면 좋겠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출산율이다.
압도적인 꼴찌다. OECD 평균이 1.61명인데 비해 한국은 0.92명이다. 잠재적이 아닌 확정적 인구소멸국가 이다. 예전에는 일본이 한국보다 출산율이 낮았었는데 2000년 이후로 역전되었다. 현재 일본 출산율은 1.36명이다.
이로 인해 15세 이하 청소년 인구 비율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현재는 일본과 더불어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출산율은 국가의 성장을 넘어 존속 자체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변수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관심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의 대사가 걸린 문제인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할 듯하다.
주식 공부한 사람은 알겠지만, 회사 주식의 월봉도 아닌 년봉이 저렇게 대세 하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거의 회사 망해간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마도 투자자들은 진즉에 탈출했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둘째는 빈곤율이다.
평균 빈곤율은 미국, 루마니아 등에 이어 7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노인 빈곤율이다.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자그마치 43.4%이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의 노인 빈곤율이 전체 평균 빈곤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인구 고령화가 문제 되고 있는 일본에서조차 노인 빈곤율은 20%를 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듯 하다.
위 통계는 노인연금에 대한 공공지출 비율을 나타내는데, 한국은 OECD 평균인 7.7%에 한참 부족한 3%에 머무르고 있다. 노인들에 대한 현금 지원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정부가 노인 빈곤을 줄이기 위한 여러 대안을 고려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다 늙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자살률이다.
말이 필요 없다. 압도적 1위이다. 아까 "수치만 보면 헬조선이 아니라 헤븐조선"이라고 한 말을 여기에서 취소한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를 어떻게 천국이라고 할 수 있겠나.
자살률 세계 1위 뉴스는 검색해보면 2000년 초반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1만 명 이상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데 이에 대해 줄이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철저히 반성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노인 빈곤율과 더불어 노인 자살률도 1위라는 점은 같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넷째는 대기오염 노출이다.
미세먼지는 직접적으로 우리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OECD 국가 중 한국은 미세먼지 노출에 있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 입방미터 당 27.45 마이크로그램인데, OECD 평균인 13.93의 두 배이고, 7.68 인 미국에 비해서는 3배 넘게 차이가 나고 있다.
특히, 다른 국가들은 전부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한국은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심을 갖게 된다.
미국 교외지역에 1년 반을 거주하면서 좋았던 점은 공기가 정말 깨끗하다는 점과 매일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은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하고 누구나 하늘에서 내린 눈을 먹는 것을 즐긴다. 어른들 누구도 이에 대해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같이 즐긴다. 공기가 깨끗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도 많은 예산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최소 OECD 평균 정도로 복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대기오염은 정말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정리하다 보니 너무 무겁게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사실 위에 언급한 4가지만 빼면은 대부분 OECD 평균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 하지만 잘하는 것은 더 잘하도록 하고, 못 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해 중요한 일일 것이다.
전 세계 대상이 아닌 OECD 대상이어서 기준이 좀 가혹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위상으로 볼 때 우리의 기준은 최소 OECD 평균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좀 더 높은 기준에서 논의해 보았다.
끝으로, 한국의 모든 통계 수치가 OECD 평균보다 높아지는 그날까지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노력하였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