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기본 명제는 “모든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이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모든 의사결정에 있어 본인이 가진 사고를 총동원하여 합리적으로 결정 및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에 따르면 시장 market 은 언제나 효율적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공급자와 수요자 역시 효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합리성 명제는 꽤 오랜 시간 경제학의 주류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로부터 알프레드 마샬, 케인즈에 이르기까지 시장과 정부 모두의 합리성을 가정한 상태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였다. 따라서 누구도 “모든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라는 명제에 크게 반기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었다. 190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이에 대한 이의제기가 늘어났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허버트 사이먼 Herbert A. Simon 교수였다.
그는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제한된 합리성 bounded rationality 이었다. 이는 인간이 해결해야 할 문제의 크기가 자신의 문제해결능력보다 큰 경우 완벽하게 합리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이먼 교수는 인간은 합리적 존재 rational being 가 아니라 합리적이려고 노력하는 합리지향적인 존재 intendedly rational being 라고 했다. 인간의 인지구조와 당면한 환경의 복잡성 때문에 인간은 종종 목표를 이루는데 실패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공로로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사이먼 교수를 시작으로 점점 많은 학자들이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행동경제학 behavioral economics 이다. 이들은 인간이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인간이 합리적 판단에 따라 움직인다는 경제학의 기본 명제를 넘어 비합리적인 측면도 고려하여야 인간의 행동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들은 대공황 great depression 이나 투기 speculation 가 일어나는 이유가 인간이 때때로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 시카고 대학교 교수가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넛지 Nudge 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한 그는 현대 행동경제학의 대가로 불린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의미로,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의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탈러 교수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고려해 인간에게 유리한 의사결정(삶의 질 향상)을 제도로 유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1990년대 후반 미국은 근로자 퇴직연금(401k) 참여율이 낮았다. 내용을 알아보니 근로자가 서식 내에 있는 참여란에 직접 체크하지 않으면 참여가 되지 않도록 제도가 설계되어 있었다. 따라서 퇴직연금(401k)의 장점을 잘 모르는 근로자들은 참여란을 선택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근로자 본인에게 매우 유리한 제도임에도 내용을 몰라 비합리적인 결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정부가 개입(넛지)하여 근로자가 의도적으로 탈퇴란에 체크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참여가 되도록 디폴트를 설정하자 참여율이 대폭 상승하게 되었고 근로자들도 고루 이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이는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책에서 나온 예시이다.
실험이 있다. 연구자는 한 명의 피실험자에게 10달러를 주었다. 대신 이 돈을 무조건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하는 조건을 붙였다. 만약 그 돈을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피실험자는 다른 사람과 돈을 나누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에게 1달러를 주겠다고 하니 거절당하는 비율이 무려 75%에 달했다. 사실 1달러라도 그냥 주겠다고 하면 받는게 이득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1달러를 받는 것에 대한 생각보다 상대방이 9달러를 갖는 것에 대한 생각이 크기 때문에 이 거래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기 쉽다.액수를 늘려 3달러를 주겠다고 제안을 해도 60%가 넘는 사람들이 거절한 반면 돈을 반씩 나누자는 제안에는 95%가 동의했다. 이처럼 우리는 실질적인 이득을 생각하기 보다 상대방과 비교를 하면서 비합리적인 판단을 할 때가 많다. 때문에 협상을 할 때는 이러한 상대의 비이성적인 측면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행동경제학은 전통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모형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여, 합리성의 틀에서 벗어난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폭넓게 연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행동경제학은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새로운 틀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인간이 스스로가 항상 옳은 판단을 한다는 오만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능력 범위 내에서 이성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겸손을 배울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