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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Dec 03. 2022

2022 카타르월드컵 대한민국 16강 진출

관전후기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 선전 후(0:0) 가나를 잡고 16강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가나와의 경기는 아쉽게 패하고(2:3) 말았다.


포르투갈과의 마지막 경기에 앞서 많은 언론에서는 "경우의 수" 분석에 열을 올렸다. 4년마다 항상 듣는 1타 강사들의 수학강의에 모두들 피곤해했다. 우린 언제 이 따분한 “킹우의 수” 강의를 벗어날 수 있을까.


암튼 16강의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건지려면 우리는 포르투갈을 반드시 이겨야 했다. 거기에 가나 대 우루과이 경기 결과도 중요했다. (이건 언론의 “갓우의 수” 강의 참고)


그렇다면 포르투갈 상대전적은 어떨까. 우리가 포르투갈을 월드컵에서 만난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우리의 조별예선 3차전 상대가 포르투갈이었다.


당시 상황은 우리가 유리했다. 우리는 1승 1무를 거두고 있어서 비기기만 해도 16강이었고, 포르투갈은 미국 대 폴란드 경기 상황에 따라 이기거나 비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잘 알다시피 1:0 우리의 승리였다. 전반을 0:0으로 끝낸 뒤 폴란드가 미국을 2:0으로 이기고 있어서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하게 된 포르투갈은 당시 우리 선수들에게 비기자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포르투갈은 후반 박지성에게 한 골을 먹고 0:1 패해 조별 예선을 탈락하였다. 박지성이 가슴으로 공을 받은 뒤 오른발로 수비수를 완벽하게 제친 후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드는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포르투갈은 짐을 싸서 고국에 돌아가야만 했다.


세월은 20여년이 지나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포르투갈은 2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으며 우리는 무조건 승리한 후에 다른 경기 상황을 살펴야 했다. 만약 그들에게 20년 전 악감정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인 파울로 벤투였다. 그는 2002년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 멤버였고 대한민국과의 경기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직접 출전도 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내에는 2002년 앙갚음이라는 감정과 남은 16강을 차분히 준비해야 하는 냉정함이 공존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루과이가 전반 초반에 이미 두 골을 넣어 포르투갈의 조1위가 확정되었음에도 계속 열심히 한 걸 보면 감정이 전혀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이건 개인적 생각이다.)


경기는 전반 5분 이른 실점, 하지만 전반 27분 김영권의 동점골, 그리고 후반 인저리타임 1분에 황희찬의 역전골로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Awesome!


하지만 아직 16강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경우의 수”는 가동 중이었다. 우리의 2:1 승리는 우루과이가 가나를 3점차 이상으로 이기지 않을 경우에만 성립하는 16강 시나리오였다.


우리의 경기 종료 당시, 우루과이 대 가나는 후반 4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다행히 2:0 아직 두 골 차이였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한 골만 더 넣으면 본인들이 16강을 갈 수 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가나가 이상하리만치 열심히 막고 있었다. 이미 16강은 물건너갔고 비길 가능성도 없는 경기에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지고 있는데도 시간 지연 플레이를 했고 막판에 시간을 끌기 위해 선수도 대거 교체했다. 마치 한국 대신 우루과이가 16강을 가서는 안된다는 듯이 싸우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사실 가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동기가 있었다. 우루과이와 가나는 12년 전 2010 남아공 월드컵 8강에서 만났었다. 당시 가나가 아프리카 최초로 4강에 진출할 것인가로 관심이 집중된 경기였다. 아프리카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경기이기도 했다.


여기서 우루과이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는 1:1로 맞선 연장전에서 가나 선수의 헤딩슛을 마치 골키퍼처럼 손으로 쳐냈다. 엄청난 비매너 행위였다. 수아레스는 바로 퇴장 당했지만 가나는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결국 우루과이가 승부차기 끝에 4강에 올랐다.


가나 포함 아프리카 전체가 들끓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나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우루과이에 대한 복수를 언급할 정도였다. 이후 수아레스는 이에 대해 사과할 마음이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랬던 수아레스가 울먹이며 벤치에서 가나와의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우루과이는 16강 탈락이었다. 하지만 한 골을 더 넣으면 그 울음이 웃음으로 환호로 변할 터였다. 동기는 분명했다. 가나는 정말 열심히 막았고 다행히도(?) 0:2로 패했다. 우루과이 조별예선 탈락이었다. 가나 복수의 완성이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지긋지긋했던 ”경우의 수“에서의 해방이었다. 2002년, 2010년에 이은 세 번째 조별예선 통과였고, 손흥민 선수의 인터뷰처럼 모두가 한 발 더 뛰자는 생각을 가지고 덤볐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우리나라 경기를 보는 내내 긴장했고 가나를 응원하며 1분 1초가 이렇게 더디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모두가 잠들지 못했지만 푹 잔 것처럼 행복한 하루였을 것이다. 브라질과의 16강은 세상에 없던 보너스로 여겨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행복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축하합니다”



보너스 하나,

숨은 역사적 사실 하나 더, 약간의 소설을 더해..


우리에게도 포르투갈에 대한 한 가지 숨은 (아무도 모를) 동기가 있었을지 모른다.


1966년 북한은 영국 월드컵에 출전해 8강 신화를 썼다. 당시 북한 대표팀의 명칭은 '천리마축구단'이었다. 평균신장이 162cm로 매우 작은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북한 대표팀은 첫 경기에서 소련에게 0:3으로 패하였지만 전 대회에서 3위를 거둔 칠레와 1:1로 비기며 16강 진출의 가능성을 높였다. 그리고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이탈리아 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16강에 진출하게 된다.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당시 관중들의 카드섹션 문구인 "AGAIN 1966"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북한이 8강전에서 만난 상대가 바로 포르투갈이었다. 북한은 전반 25분까지 3:0으로 앞섰다. 아시아 최초 4강이 눈 앞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후 북한은 5골을 연거푸 먹어 3:5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당시 4골을 넣어 승기를 가져온 이가 바로 포르투갈의 축구영웅 에우제비우(9골로 대회 득점왕)였다.


2002년에 이어 2022년에도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김으로써 우리는 (아무도 모를) 복수를 하고 있었을 수 있다. 한국은 여전히 포르투갈을 상대로 무패를 유지하고 있고 그 복수는 계속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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