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차이
나는 미국과 한국에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조치를 겪게 되었다. 참 우연한 일이다.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나라 간 정책 시행 시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2022년 2월에, 한국에서는 2023년 1월 말에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다.
그런데 두 나라 국민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미국은 너도나도 다 마스크를 벗었고, 한국은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국의 경우를 먼저 보자. 한국은 2022년 1월 30일부로 코로나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다. 2020년 10월에 마스크 착용 의무가 생긴 이해 35개월 만의 일이었다. 정부의 규제완화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감소세에 접어들었고 위증증 및 사망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요구나 참여는 거의 없었다. 물론 우리는 정부의 결정에 따르는 것에 익숙하다. 코로나 방역조치의 시작도 정부였고 그 끝도 정부였다. 그게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유교 문화에서 나라는 곧 어버이시고 자식 같은 백성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지는 않다. 정부의 지침은 바뀌었지만 국민 개개인들은 여전히 코로나에 대한 불안이 남아있는 듯하다. 물론 추운 겨울이라는 계절적 요인도 있을 것이다. 봄이 되고 뜨거운 여름이 찾아오면 서서히 마스크 쓰는 사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정부가 마스크 의무를 해제한 며칠간 사람들은 행동의 변화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제 미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2022년 2월, 미국도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조치가 있었다. 그리고 명령 발효일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었다. 쓰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미국 사람들이 마스크 쓰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내 경험을 근거로 그들이 바로 마스크를 벗었는지에 대한 다른 이유를 제시해 보겠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주에서 2022년 2월 말에 마스크 의무가 해제되었다. 일리노이주의 경우, 주지사인 J.B. 프리츠커는 2월 9일 브리핑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확진자 수가 빠른 속도로 감소함에 따라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는 오는 2월 28일부터 철회된다”라고 발표했다. 미국 50개 주 대부분이 그즈음 마스크 의무를 해제했다.
이것만 보면, 미국은 각 주에서 평화롭게 스스로 결정하여 실내 마스크 의무를 해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막은 따로 있었다. 주에서 스스로 한 게 아니었다. 시민들이 제기한 소송 결과에 따른 결과조치였다. 일리노이 주지사의 인터뷰 날짜가 2월 9일이고, 아래 우리가 겪은 경험이 그 전인 2월 6~7일 임을 기억하고 아래 일기형식의 글을 읽어보자.
2022년 2월 6일 (일요일)
평범한 주말이었다. 지난주 내린 눈으로 동네는 온통 하옜다. 저녁즈음 레드와인을 한 병 꺼냈다. 브래드앤버터 까르베소비뇽이다. 동네마트에서 10.19달러에 팔고 있는 나파밸리산 와인이다. 데일리와인으로는 최고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우리 지역 교육감 superintendent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우리 지역 학부모들에게,
지난 금요일 오후 일리노이 재판부(단독)가 700명이 넘는 부모들로부터 제기된 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소송내용은 주지사의 코로나 19 규제 등에 대한 강제명령을 취소해 달라는 것이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주지사의 규제 명령에 대한 일시중지 명령(TRO: a temporary restraining order)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주지사의 마스크, 백신, 코로나 검사, 그리고 자가격리에 대한 강제 명령은 재판부(단독)의 판결 이후로 정지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제부터 우리 지역 내에서 개인이 마스크를 쓰는 것과 자가격리를 하는 것은 강제가 아닌 권고로 완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는 2월 7일 월요일부터, 학교 내 마스크 착용은 의무가 아닌 선택입니다.
물론 이러한 결정이 갑작스러운 변화이기 때문에 우리 지역 내 학교 커뮤니티 구성원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스크에 대한 개인과 가족들의 선택이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각자의 개인적인 결정을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와 관련한 어떤 종류의 괴롭힘이나 무례한 행동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리노이주는 해당 판결에 대해 항소할 뜻을 밝혔으므로 향후 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우리 교육청은 이전 코로나 규제 조치를 다시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상급 법원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몇 주 안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안전이 우리에게는 가장 우선입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의 변화에 대한 인내를 부탁드립니다. 추후에 변동사항이 있으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Dr. Jeff Schuler 교육감"
와인의 취기가 살짝 가시기 시작했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 착용 해제는 바이든 대통령 혹은 질병청장 정도가 TV에 나와서 설명해야 하는 중차대한 국가사 아닌가? 이걸 개인 소송으로 단독 재판부에서 결정하고 하루아침에 해지한다고? 방역은 의료적인 문제 같은데 이걸 비의료인인 판사 한 명이 법리로 결정해서 중지한다고? 아내와 나는 한 마음이었다.
‘미국 참 신기하다.’
암튼 내일부터 당장 준서는 학교에서 마스크를 벗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1학년인 준서에게 의견을 물어봤다. 준서는 벗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래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마스크를 끼고 올지도 모르니 일단 가지고는 가라고 했다.
2022년 2월 7일 (월요일)
준서는 마스크를 가방에 넣은 채로 학교에 갔다. 그리고 3시 30분에 학교가 끝나고 준서가 마스크를 안 쓴 채로 집에 돌아왔다. 아내와 나는 준서에게 물었다.
"애들 다 마스크 쓰고 있었지?"
"아뇨, 한 두 명 빼고는 다 벗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안 썼어요."
"첫날인데도?"
"네."
대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준서 학교 담임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안녕 가족들,
모두가 잘 지내고 있길 바래. 오늘 꽤 많은 아이들이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안 써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했어. 나는 아이들에 대한 가족들의 결정을 존중해. 아이 이름과 함께 아이들이 마스크를 학교 내에서 쓰길 원하는지를 'Yes' or 'No'로 보내줄래? 이유는 필요 없어. 고마워!
Charlotte Morgan 1학년 담임"
우리는 너의 친절함에 감사한다는 인사와 함께, Junseo Song, No mask, 라고 적어서 담임에게 답장을 보냈다.
위 사건 발생 이틀 후인 2월 9일 수요일,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는 브리핑을 통해 오는 2월 28일부터 실내 마스크 의무를 철회된다고 발표했다. 준비하고 있었다기보다는, 재판부(단독)의 일시중지 명령(TRO)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대응으로 보였다.
물론 프리츠커 주지사는 해당 판결로 인해 학교와 학생, 교직원, 학부모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고 재판부를 비난하면서 항소를 제기했지만, 이후에 주자사가 소송에서 이겼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지난해 내내 준서가 마스크를 벗고 학교에 다닌 걸로 볼 때 소송은 어느 순간 취하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부모들이 소송으로 마스크 해제를 얻어낸 결과는 생각보다 컸다. 많은 부모들과 학생들이 이에 호응해 바로 마스크를 벗었다. 주정부가 내린 개인 자유의 제한을 소송을 통해 스스로 풀었기에 마치 새로이 자유를 얻은 느낌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남이 준 자유보다 개인이 스스로 얻은 자유를 더 소중히 여긴다는 심리학 연구도 있지 않는가.
담임 메일이 온 다음날부터 마스크를 쓰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물론 다수가 벗고 있는 상황에서 소수가 홀로 쓰고 있기는 어려웠을 테지만, 다수가 단시간에 행동을 변화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미국과 달리 한국은 개인이 아닌 정부가 지침을 내리고 그에 따라 규제를 풀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는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소송을 통해 스스로 마스크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일거에 주어진 자유와 스스로 쟁취한 자유의 차이랄까.
만약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 스스로가 마스크가 필요 없다고 느끼고 우리 이제 마스크 벗자고 청원을 하고 혹은 집회를 하면서 스스로 의무해제를 쟁취했다면 아마도 해제 당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기 전에 수동적으로 정부의 지침을 받았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왜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지 혹시 위험하지는 않을지 생각하며 섣불리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만 것이다.
심리학에서 '감응저항(reactance)'이란 자유의 포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명령뿐 아니라 제안까지도 거부하는 성향을 뜻한다. 위 상황을 볼 때 미국은 마스크를 벗고 살 자유에 대한 감응저항이, 한국은 마스크를 쓰고 살 자유에 대한 감응저항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참 어렵다. 한국 방역당국 입장에서야 사람들이 마스크를 안 벗는 게 방역에 유리하니 다행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러한 감응저항도 학습될 수 있으니 장기적으로 볼 때 정책 효능감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단점이 될 수도 있음을 새길 필요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