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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Nov 10. 2023

관리자의 조각 맞추기 능력


회사일을 하다 보면 '추론'을 해야 할 일이 생긴다. 관리자로 갈수록 그런 일이 늘어나는데, 여러 불확실한 단서 혹은 증거들을 '추론'이라는 과정을 통해 기대가능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이를 관리자의 조각 맞추기 능력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여러 정보 조각들을 통해 정부의 예산기조가 긴축으로 돌아선다고 파악된다고 하자. 이 경우 관리자인 나는 그에 따른 조직의 영향들을 다양하게 '추론'해보고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대효과(결과)까지 예측해야 한다. 국제적인 업무를 하는 기업의 경우, 미국 정부, 일본 정부, 중국 정부의 예산기조로 확장될 테니 추론할 양이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증거의 조각들이 모여 있는 것도 아니다. 상호 관련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조각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면서 조각끼리 상호연관관계를 논리적으로 엮어가면서 나아가야 한다. 경제분야만 하더라도 물가, 금리, 실업률 등이 정부재정정책과 맞물려 있는데, 사회분야, 정치분야처럼 변수도 많고 변수간 상호관련성도 불확실한 경우도 많다. 이 경우는 추론으로 가기 전 단계인 채증의 과정에서부터 딱 막히게 된다. 


다른 예로 검찰, 경찰 같은 수사 기관의 경우 전체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해서 범죄혐의를 입증해야 하는데 그 안에 수많은 추론 과정이 겹쳐져 있다. 여러 증거 조각들을 모아 전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인데, 아래의 그림과 같이 칠판에 사진을 붙이고 화살표를 그리는 식으로 추론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승우가 연기한 우장훈 검사 역의 경우 여러 인물들의 조각을 끼워 맞추면서 전체 사건의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면서 왜 조그만 샷시 회사 사장이 유력 대선 후보자에게 접근하는지, 유력 대선 후보자의 정당은 왜 특정 대기업 총수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는지 등등을 천천히 맞춰가는 식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우장훈 검사가 놀라운 추론 능력을 통해 사건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나간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영화처럼 쉽게 조각이 맞춰지지 않는다. 한 예로, 9.11 테러가 왜 일어났는지를 조사하는 과정을 들 수 있다. 


리처드 셸비(Richard Shelby)는 2002년 당시 미국 상원정보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그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를 통해 9.11 테러를 암시하는 신호들을 놓치거나 잘못 해석한 사례를 꼼꼼히 지적했다.


셸비는 보고서를 통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정보기관들이 9.11 테러의 단서가 담긴 정보 조각들을 확보하고도 전체 그림을 맞추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는 '조각 맞추기'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분명한 패턴이 있었지만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조각들(이게 퍼즐 완성에 필요한지 아닌지도 불명확한)을 가지고 전체 퍼즐을 완성하는 것은 지나고 나서는 쉽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개최된 청문회에서 클린턴 대통령 국가안보 보좌관을 역임했던 새뮤얼 버거(Samuel Berger)의 말은 그래서 의미 있다.


“앞을 내다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뒤를 돌아보고 어려운 질문들을 던지고 정직한 답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또 다른 재앙을 막기 위해 올바른 교훈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최종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퍼즐 조각들이 어떻게 맞춰지고 있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역사는 백미러를 통해 쓰이지만 안개 낀 앞유리를 통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분명한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당파와 정파를 떠나 앞을 내다보는 능력을 최대한 갈고닦아야 합니다.”


History is written through a rear-view mirror,  but unfolds through a foggy windshield.


관리자는 실무 전문가가 아니다. 안개 낀 앞유리 앞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여러 증거 조각들을 통해 추론하고 그 결과(위험)를 예측해야 하는 사람이다. 물론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조각 맞추기를 잘해야 진정 조직에서 필요한 관리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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