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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Feb 09. 2023

중간 관리자의 자세

액체 같은 사람이 되자


중간 관리자 middle manager는 조직에서 허리 역할을 주로 한다. 허리가 사람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쓰는 표현일 것이다.


통상 중간 관리자는 상사의 지시를 받아 부하 직원에게 명령을 내리고 업무를 진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업무가 종료되면 평가도 그들의 몫이다. 부하 직원들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고 영감을 부여하는 멘토의 역할도 해야 한다. 조직의 리더들이 중간 관리자 인사에 신경 쓰는 이유이다.


성공한 관리자들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항상 새로움에 목말라한다.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며 스스로를 개선한다. 상황의 변화에 민감하며 그에 대한 적응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변화에 충격받기보다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방책을 찾기 위해 공을 들여 노력한다. 만약 한계에 부딪히면 포기보다는 도전을 통해 그것을 넘어서기도 한다.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차분히 돌아보고 그것을 통해 배움을 얻는 환류과정도 잊지 않고 진행한다.


특히, 환류에 관해 리더십 전문가 워런 베니스 Warren Bennis는 "삶의 경험을 되돌아보는 행위는 자기 자신과 소크라테스식 대화를 나누는 일과 같다. 이런 식의 질문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을 찾고 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라고 하여 환류 방식의 자기 성찰이 관리자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 나은 관리자가 되기 위한 몇 가지 가르침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모든 직원들을 존중하라. 설득하는 말투로 소통하라. 먼저 공통 관심사를 제시하라.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라. 책임을 가져라. 결단력 있게 행동하라 등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기사는 중간 관리자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중간 관리자는 일반적으로 조직에 대해 상급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이 조직과 사람, 문화, 예산에 있어 상급자보다 더 밀접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선에서 업무를 하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누가 중요한 업무에 관여하고 있는지도 더 잘 알 수 있다. "악천후로부터 회사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중간 관리자는 회사의 경영 아이디어에 가치를 더해야 하고, 조직 내 중요한 가치 변화를 일으키는 데 힘써야 하며, 하급자들의 태도와 요구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변화와 지속성 사이의 긴장관계를 관리해서 조직이 한쪽 극단(급진적 변화 또는 무력한 관성)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여기까지가 중간 관리자의 특징과 역할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교과서 같은 이야기라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다 맞는 이야기인데 뭔가 체감되지 않는, 학창 시절 공부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라고 항상 말씀하신 교장 선생님 훈화 같은 이야기다. 귀에 잘 안 들어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X세대보다 더 오래된 소크라테스 옹과의 대화는 치워두고, 그냥 개인적으로 10년 넘게 중간 관리자를 하면서 느낀 점을 몇 가지 말해보고자 한다. 개인적 경험에 따른 것이니 다 맞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개중 한 둘은 맞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인생은 확률 싸움이다. 필요한 것 몇 개만 건져내면 성공이다. 아래는 내가 생각하는 중간 관리자의 자세다.




중간 관리자는 액체와 같아야 한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급자는 실무를 담당한다. 야전규범을 들고 FM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재량 따위는 없다. 시키는 대로 잘하는 게 미덕이 된다. 묵묵하게 바위처럼 맡은 바 업무를 쉼 없이 잘해야 한다. 하급자는 그래서 고체와 같이 좀 딱딱한 게 좋다.


상급자는 비전을 제시한다. 목표를 정하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 쉽게 말해 뜬구름 잡듯이 해야 한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발이 땅에 붙어있어서는 안 된다. 상급자가 하급자처럼 규정 따져가며 시키는 대로 일하면 자리보전 못한다. 곧 무능함의 상징이 된다. 따라서 상급자는 기체와 같이 변화무쌍해야 한다.


중간 관리자는 어떨까. 그 중간인 액체가 되어야 한다. 추울 때는 얼음과 같이 고체가 되었다가 더울 때는 구름과 같이 기체가 되어야 한다. 상황변화에 민감해야 하고 그에 따라 적응을 잘해야 한다. 이를 처세술이라 하기도 한다. “처세가 좋다”라고 하면 나쁜 이미지도 있지만, 동서고금 중간 역할을 하는 사람은 처세를 잘해야 오래간다. 딱딱한 하급자에게 재량을 주고 유연한 상급자에게 질서를 줘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회사에 호경기가 찾아왔다. 상급자는 이 기회에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반면 하급자는 현재 운영되는 상황을 그대로 지속하면서 기반을 더 튼튼히 할 것을 주장할 것이다. 이때 중간 관리자는 상황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 진짜 호경기가 맞는지, 그리고 오래 지속되는 경기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다음 상하급자 간 간극을 조정해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중간 관리자 밖에 없다. 하급자 편에 서서 상급자를 설득하든지, 상급자 편에 서서 하급자를 설득하든지, 아니면 제3의 길을 제시하든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선택을 미루면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상급자 편만 들면 딸랑이 소리를 듣게 되고, 하급자 편만 들면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빠르고 정확한 선택을 하면서 양측을 모두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상황 circumstance 파악도 중요하지만 상하급자 성향 character 파악도 중요하다. 강성인지 온화한지, 급한지 여유로운지, 똑똑한지 멍청한지, 부지런한지 게으른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상급자가 강성이면 중간 관리자는 기운을 좀 눌러줄 필요가 있다. 다른 관점들을 제시하면서 잠시 생각을 정돈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쉼표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걸 해줄 사람은 중간 관리자가 유일하다. 상급자가 강성이라고 무조건 예스맨이 되어 같이 호응만 하다 보면 중요한 포인트에서 미스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결정 과정을 천천히 검토하면서 템포를 조절하고 다른 이슈가 없는지 빠진 곳은 없는지 중간 관리자가 한 번 더 확인해줘야 한다. 반대로 상급자가 온화하면 중간 관리자가 리드할 필요가 있다. 느린 템포에 활력을 주고 결정을 압박해야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일을 진행해 나갈 수가 있다. 상급자가 너무 꼼꼼하면 중간에서 관리자가 논점들을 쳐내면서 업무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하나하나 다 검토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하급자들이 힘들어한다. 적절하게 무시할 건 무시해 가면서 일을 해 나가야 조직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다. 역린 건드리지 않는다고 꼼꼼함을 따라가다 보면 영원히 일이 마무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급자도 마찬가지다. 하급자가 강성이면 눌러주면서 다른 관점들을 제시해줘야 한다. 스스로 다른 이슈들을 찾아보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하급자가 연약하면 적극적으로 지시하고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 확신이 없으면 중간에서 확신을 심어주고 자신감을 불러 넣어줘야 한다.


이러다 보니 결국 중간 관리자는 액체 같은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상황에 따라 상하급자의 성향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이 한쪽으로 흘러갈 때는 다른 생각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고, 조직에 긴장감이 없을 때는 팽팽하게 줄을 당겨줘야 한다. 얼음 같은 사람에게는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뜬구름 같은 사람에게는 차가운 현실감각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액체의 성격도 달라져야 한다. 조직에 변화가 필요할 때는 촉매제처럼 변화를 이끌어야 하고 긴장감 가득한 상황에서는 물이 되어 농도를 낮춰줘야 한다. 조직을 리드해 나갈 때는 원액처럼 농도를 높여야 한다. 그럼에도 언제나 부드러운 액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옛말에 중간만 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경험상 중간이 참 어렵다. 상급자에게 물어보면 중간 관리자일 때가 제일 어려웠다고 한다. 위아래 눈치 보면서 일도 잘해야 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내가 해보니까 역시 그렇다. 그런데 상급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그래도 그때가 제일 좋았다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긴장감 넘치게 일을 하고 눈치 보면서 처세하는 그 순간이 직장생활의 꽃이 아니었나 한다는 것이다. 언젠간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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