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긴장되는 순간이 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꼭 해내야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긴장이 더할 것이다. 그러한 긴장감을 이겨내고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다면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해냈다는 기쁨과 함께 행복감이 밀려들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어릴 때의 일이라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 오전, 준서의 국기원 태권도 1품 심사가 있었다. 준서는 작년 8월 한국에 오자마자 태권도에 등록했고 꼬박 1년을 열심히 다녀서 승품할 기회를 얻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가서 수련한 결과를 오늘 드디어 평가받게 된 것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아침 일찍 일어났다. 준서는 태권도 단체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밥을 먹고 태권도장으로 향했다. 아내와 나, 민서는 우리 차를 타고 심사장으로 향했다.
심사장은 성남실내체육관이었다. 체육관은 엄청 컸고 아이들과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스탠드에 앉아서 준서의 차례를 기다렸다.
9시 시작시간이 되자마자 국민의례와 동시에 심사가 시작되었다. 준서의 번호는 110번이었다. 100명의 아이들이 우선 입장했고 이후 10명이 더 들어왔는데 거기에 준서가 있었다.
준서는 진무태권도 아이들과 함께 앉아있었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힐끗힐끗 우리 쪽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엄마 아빠 얼굴 보면서 안정을 찾으려는 듯 보였다.
본인의 순서가 다가올수록 긴장한 기색이 더 역력해졌다. 가끔씩 머리를 감싸 쥐기도 했다.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 그리고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듯 보였다. 저러한 긴장과 압박이 처음이라 낯설고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견디고 이겨내면 인생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기에 안쓰럽지만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준서가 긴장하며 앉아 있는 걸 보니 불현듯 내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5살이 되자마자 나를 태권도장에 보냈다. 집 근처도 아니고 봉고차로 10분 이상 타고 가야 하는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태권도장이 많이 없었다.) 태권도장에서 나는 당연히 최연소자였다. 그렇다고 옛날 형들이 봐주면서 하지는 않았다.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80년대였다. 겨루기 같은 걸 하면 어리다고 대충하지 않았다. 아마 더 때렸을 수도 있다. 암튼 나는 그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맷집을 많이 길렀다.
당시 관장님은 태권도 사업을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된 분이었다. 따라서 도장에 어린 꼬마애가 검은띠 매고 있으면 홍보효과가 있을거라 생각하셨는지 나를 정책적(?)으로 키우셨다. 덕분에 나는 어린 나이에 3품까지 통과해 검은띠를 딸 수 있었다. 요즘도 3품이 흔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귀했었다.
나는 3품 심사를 위해 아침 일찍 엄마랑 대전 충무체육관에 갔다. 심사장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 3품 심사를 할 때 쯤에는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1품, 2품 심사가 끝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집에 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얇은 도복을 입은 채로 차가운 나뭇바닥 위에 맨발로 덩그러니 서 있었다. 긴장감인지 추위인지 몸은 오돌오돌 떨려왔다. 주위의 키 큰 형들 때문에 엄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긴장감이 넘어 공포감이 들기 시작했다. 열심히 수련하고 나왔지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 상황을 잘 이겨내면 검은띠를 딸 수 있었지만, 실수한다면 관장님도 사범님도 부모님도 모두 실망하실 거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두려워졌다. 어린 나 혼자 온전히 이 상황을 견뎌야만 했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이름이 호명된 다음에는 사실 큰 기억이 없다. 나는 홀린 듯 기본 동작과 품새, 겨루기를 했다. 품새를 마치고 나니 긴장이 조금 풀어졌고 그래서 겨루기는 좀 편안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겨루기 상대는 나보다 두 배쯤 커 보이는 형이었는데 맞으면 죽을 것 같은 돌려차기와 회축을 피하며(그 형이 내가 안맞게 적절히 찼을 것이다) 나는 준비한 발차기를 열심히 했다. 다 끝나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렸고 인사하고 나오자마자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었다. 그 다음 주에 내 이름이 박힌 검은띠를 받았을 때의 행복이란 말해 무엇할까.
이 모든 어릴 적 기억이 체육관에 앉아 있는 준서를 보자마자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어쩌면 내가 어릴 적 얻었던 성취감을 준서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손을 매만지며 머리를 감싸는 준서의 모습이 눈물 겹게 안타까웠지만 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 단계 성숙하게 될 것이란 생각에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곧이어 준서 차례가 되었다. 준서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집중력을 가지고 태권도 기본동작들을 멋지게 선보였다. 이어 5장과 8장 품새도 잘 해내었다. 빨간색 호구를 쓰고 겨루기도 성공적으로 잘했다. 쉽지 않은 과제였지만 잘 해내 주었다. 준서는 씩씩하게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국기원 태권도 1품 심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많이 떨리고 긴장되었겠지만 묵묵히 잘 이겨내주었다. 어린 나이에 저런 어려운 상황을 겪어보고 이겨내 본다는 것 자체가 준서에게는 정말 큰 경험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상황에 종종 부딪힐 것이고, 때로는 이길 때도 때로는 질 때도 있겠지만 그 상황 속에서 배우면서 커간다면 준서가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모는 그저 묵묵히 응원하면서 바라보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준서의 앞날이 오늘처럼 어려움을 극복하는 여러 과정의 연속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