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서민서패밀리 Jun 25. 2023

아이언맨 70.3 고성, 참가하다.



1. 참가 參加



지난주 일요일(2023. 6. 18.) "아이언맨 70.3 고성"에 참가했다. 생애 세 번째 철인3종 경기 출전이었다.


참고로, 철인3종은 올림픽 코스와 70.3마일 코스(Half), 140.6마일 코스(Full)로 나뉜다. 올림픽 코스는 32마일 정도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철인3종 하면 이것을 말한다. 이와 별개로 세계 Ironman 협회는 매년 170여 개 이상의 Ironman 70.3, Full Ironman 행사를 전 세계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고성에서 70.3 코스를, 구례에서 Full 코스를 진행하고 있다.
70.3 Ironman 을 기준으로 할 때, 전체 거리를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113.1km 이고, 구체적으로는 수영 1.9km, 자전거 90.1km, 달리기 21.1km 가 된다.


처음 참가한 철인3종은 2021년 시카고 트라이애슬론 (Chicago Triathlon) 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52. 시카고 트라이애슬론 (brunch.co.kr) 참고)



처음의 기억은 언제나 강렬하다. 나름 오랜 기간 준비했고 훈련했다. 너무 떨려서 당일날 좀 헤매기는 했지만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당시는 올림픽코스(수영 1.5km, 자전거 40km, 달리기 10km)였는데 하는 내내 체력적으로 크게 힘들지 않았고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서도 힘이 남아 있었다. 해보니 할 만했다. 그때 나이 만 39세였다.


철인3종을 준비하는 동안 체중과 근육을 관리하다 보니 건강상태가 매우 좋아짐을 느꼈다. 작년에 만 40세가 된 나는, 불혹(不惑), 즉 세상사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에는 도달하였지만 신체적 능력치가 점점 떨어지는 것까지는 막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매년 한 번씩 몸을 만들어 철인3종 대회에 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해인 2022년, 기왕 하는 거 조금 더 긴 아이언맨 70.3 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석사 졸업 후 귀국국 전에 할 수 있는 대회를 찾아보았고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인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Benton Harbor 에서 열리는 Ironman 70.3 Steelhead 를 발견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63. IRONMAN 70.3 Steelhead (brunch.co.kr) 참고)



거리가 전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만큼(수영 1.9km, 자전거 90.1km, 달리기 21.1km) 더 철저하게 준비했고 꽤 오랜 기간 훈련했다. 다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미시간호수가 원래 파도가 좀 치기는 했지만 그날은 좀 심하게 쳤다. 영어로 하면 choppy 했다. 파도를 뚫고 힘겹게 수영을 했는데, 이게 지금까지 수영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이번 대회에서도 좀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암튼 긴 시간 힘들었고 막판에 허벅지에 쥐도 올라왔지만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결승선에 도착해서 가족들을 보니 피로가 다 풀리는 듯했다. Benton Harbor에서 미국집까지 차로 2시간 좀 넘게 걸리는데 그날 경기 끝나고 내가 운전해서 왔으니 체력이 완전 방전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작년 만 40세 첫 철인3종 경기의 출발이 좋았다. 준비기간 동안 열심히 훈련하다 보니 체력도 좋아졌고 몸도 가벼워졌다. 철인3종은 언제나 배신하지 않고 건강한 신체를 선물해 주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는 언제나 좋았다. 아내에게 40대 내내 매년 한 번씩 대회를 준비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맙게도 아내도 동의해 주었다.


우리 가족은 2년간의 미국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2022년 8월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바쁘게 사는 사이 수영 한 번, 자전거 한 번 못 타고 연말이 다가왔다. 나는 몸이 다시 무거워짐을 느꼈고 내년 철인3종 경기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 41세에도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검색해 보니 2023년 6월에 경남 고성에서 Ironman 70.3 대회가 개최예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연말에 얼리버드(299달러 + 10% fee)로 고성 대회 등록을 하였다. 2022년 12월 27일이었고,  대회일인 2023년 6월 18일까지 173일 남은 시점이었다.






2. 훈련 訓鍊



참가신청을 했으니 본격적으로 훈련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한겨울에 할 수 있는 훈련은 많지 않았다. 수영은 실내에서 하니 가능했지만 자전거와 러닝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일단 수영부터 시작했다. 수영은 회사 근처 대전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에서 할 수 있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7시에 자유수영하러 갔고 안되면 저녁 퇴근 후에 가서 수영을 했다. 25미터 레인이었지만 시설이 깔끔하고 사람이 많지 않아 훈련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한국 귀국하고 정리하느라 한참 운동을 쉬었던 터라 새로 몸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수영은 관련 근육이 많이 빠져서 더더욱 힘들었다. 수영 첫 주에는 겨드랑이와 목에 근육통이 왔다. 그래도 차근차근해보자는 생각으로 서두르지 않았고 매주 거리를 늘려갔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1,900미터를 쉬지 않고 40~50분 사이에 왕복할 정도가 되었다. 다행이었다.



러닝은 대전집 근처 탄방동 보라매공원(그 옛날 대전 군공항 부지)에서 연습할 수 있었다. 올해 1월은 너무 추워 사실 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뛰는 훈련을 해야만 했기에 영하 10도 보다 추우면 뛰지 말고 영하 10도 보다 따뜻하면 뛰자, 라는 나름 강력한 기준을 가지고 러닝 훈련을 했다. 말이 영하 10도지 한 번은 영하 9도에 나가 뛰다가 얼굴 다 터질 뻔하기도 했다. 암튼 추운날에도 히트텍 안에 입고 꽁꽁 싸매고 나가 열심히 뛰었다. 주말에 집에 올라오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열심히 뛰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자전거 훈련에 돌입했다. 105급 로드바이크를 구해 근처 자전거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대전이 자전거 도시로 홍보하는 것에 비해 도로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긴 거리 연결해 놓아서 연습하기는 괜찮았다. 탄방동에서 맹꽁이서식지까지 다녀오면 왕복 30km, 대청댐까지는 왕복 40km여서 연습하기에 적당했다.


초봄에는 해가 짧아 멀리까지 갈 수 없었고 해가 점점 길어지면서 거리를 늘릴 수 있었다. 다만 날이 더워지자 천변에 날파리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스크 없이 탔는데 입 벌리면은 날파리가 그대로 입 속으로 들어와 단백질이 보충되는 기적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마스크를 구입하고 곤충 단백질 보충 없이 열심히 훈련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월 중순 즈음이 되자 D-100 일이 되었다. 그리고 수영, 자전거, 러닝 모두 작년 수준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완주가 목표였지만, 조금 욕심을 내자면 작년 기록인 7:20:16 보다 빨리 들어오고 싶었고 좀 더 욕심을 내자면 7시간 안에 피니시라인을 통과하고 싶었다. 그래서 100일 이후로는 체중 감량과 동시에 운동량을 좀 더 늘리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운동을 해야 했기에 시간이 많지 않았고, 더군다나 주말부부였기에 주말에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작년에 비해 운동량을 많이 늘리지는 못했지만, 감량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여 가벼운 몸으로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대회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서울로 올라가서 일을 해야 하는 변수가 생겼다. 대회 2주 전이었다. 대전에서 사용하던 수영장, 자전거길, 러닝장소를 모두 포기하고 새로운 곳을 빨리 구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 등 철인3종 준비물을 몽땅 자가용에 실은 채 서울로 올라왔다.


수영장은 성남종합운동장 수영장으로 선택했다. 50미터 레인에 시설이 잘되어있어 마무리 훈련하기 딱 좋았다. 자전거는 탄천을 통해 한강, 하남으로 연결되는 자전거길을 탔다. 집에서 하남 경계까지 왕복 45km 이었고 하남 넘어가는 경계에 높은 언덕도 있어 업힐 연습하기에 적격이었다. 러닝은 아파트 내 산책로를 그대로 이용했다.


대회 4일 전인 수요일에 1.9km 자유수영을 마지막으로 공식 훈련을 끝냈다. 그리고 이후 대회까지는 아무런 훈련도 하지 않았다. 숨쉬기만 하면서 그동안 지친 근육들에 휴식을 주었다. 감기 조심하느라 마스크도 쓰고 다니고 무리한 움직임도 하지 않았다. 프로 운동선수는 아니었지만 그간 훈련한 게 아까워서라도 꼭 좋은 컨디션으로 대회장에 가고 싶었다.그렇게 마지막 2주를 새로운 장소에서 보냈다.






3. 당도 當到



전날 짐을 쭉 펴놓고 정리했다. 빠진 것 없는지 확인을 위해서였지만, 재작년부터 이어온 전통이기도 했다. 슈트와 물안경 외에는 3년간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러닝화를 새로 사서 신을까 하다 첫 철인3종을 함께한 물건이어서 올해까지는 함께 하고 싶어 바꾸지 않았다. 헬맷도 모자도 클릿슈즈, 운동복 모두 시카고, 미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온 물건들이었다. 하나하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들이었다. 얘들아,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D-1, 토요일 낮 경남 고성 대회장에 도착했다. 해가 쨍한 화창한 날씨였지만 기온이 높아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주차를 하고 등록을 위해 공룡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판넬이 나왔다. 참가자 명단이었다. Anything is Possible, 이라고 써진 빨간 글씨 밑으로 깨알 같이 사람들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내 이름도 거기에 있었다.



등록하고 사전 수영점검 하러 가야 해서 마음이 급한데, 아들 딸은 공룡 삼매경이었다. 대회장은 고성 회화면 당항포관광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이 공룡엑스포 개최 장소여서 여기저기 공룡 관련 놀이시설이 많았다. 아빠가 뭐 하러 온 지도 정확히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공룡 보러 가자고 난리였다.




보채는 두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혼자 등록장으로 이동했다. 등록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신분증을 제시하니 기록칩과 기어백 등을 멋진 기념백에 담아주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시부터 시작하는 사전 물적응 훈련을 위해 바꿈터 쪽으로 이동했다. 슈트 입고 벗고 밤에 말리고 하기 귀찮았지만, 바다수영이 난생처음이어서 적응할 필요가 있었기에 하기로 결정했다.


화장실에 낑낑대며 슈트를 갈아입고는 30도가 넘는 무더위 땡볕에 남해 바다에 들어갔다. 입수하는 순간 첫 느낌은, 물이 따뜻하다는 것이었고 다음 느낌은 물이 짜다는 것이었다. 작년까지 미시간 호수는 담수여서 짜지도 않고 나와서 털기만 해도 찝찝하지 않았는데 바다는 다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바람이 좀 불어서 파도도 꽤 있었다. 스트로크를 막 시작하는데 몸이 파도에 떠밀려 두둥실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아 이거 큰일인데,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작년 미시간 대회가 생각났다. 거센 파도와 싸우며 어렵게 수영한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었다.


200미터 사전 물적응 훈련을 마치고 물 밖에 나오는데 온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기상예보상 내일 아침에는 바람이 잦아들거라 했지만 이미 마음은 수영 걱정으로 불안해졌다. 슈트를 벗고 아내와 아이들 있는 곳으로 갔다. 무더운 날씨에 아이들은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마음은 여전히 수영 걱정으로 무거웠다. 저녁을 먹고 기어백을 챙긴 후 일찍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파도에 몸이 실리던 느낌이 계속 나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10시에 누웠지만 기상시간인 새벽 4시 30분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 했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부모님도 오신다는데 결승선을 웃으며 통과할 수 있을까? 방이 덥지는 않았지만 밤새 땀을 많이 흘렸다.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했다.






4. 실전 實戰



4:30, 정확히 알람이 울렸다. 잠을 거의 못 이룬 상태였지만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날씨 어플을 켜서 바람을 보니 예보대로 잦아들어 있었다. 다행이었다.


미리 사둔 간편식 닭죽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아이들은 자고 있었다. 아이들을 둘러업고 차에 태워 대회장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하지만 이미 날은 밝은 상태였다. 30분 동안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대회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도착했고 나는 기어백 3개를 둘러메고 깨어있던 아들과 자는 딸, 아내와 인사를 나누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대회장은 참가자들로 가득했다. 준비물 정리하는 소리, 자전거 바람 넣는 소리, 슈트 갈아입는 소리가 주위를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그 소리 사이로 들어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러닝과 자전거 짐을 정리한 후 슈트를 입고 준비운동하는 곳으로 갔다.



흥겨운 음악이 나왔고 다 같이 모여 준비운동을 했다. 이후 내빈을 소개했다. 고성군수도 나오고 철인3종 협회장도 나오고 가수 션도 나왔다. 션? 션이 오는지 몰랐는데, 아마도 단골손님인 듯했다. 슈트를 반쯤 입고 무대에 오른 션은, 저 고성 다시 왔습니다 파이팅 합시다,라는 짧은 인사말을 했고 사람들은 크게 호응했다.



6:40이 되자 모두가 출발선에 도열했다. 롤링스타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5초마다 5명씩 출발하는 방식이었다. 삑 소리와 함께 첫 그룹이 바닷물에 들어갔다. 이후 5초마다 삑 소리가 울렸고 5명씩 계속 입수를 했다.


한 오분쯤 지났을까,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숙소로 돌아갔고, 날 부를 사람이 없는데 하면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 계셨다. 오신다고는 하셨지만 이 새벽에 여기에 오실지는 꿈에도 몰랐었다. 특별한 말 없이 손을 흔들어주셨고 나도 그에 응답하여 손을 흔들었다. 새벽에 와주신 부모님이 고마웠고 힘이 되었다.


나중에 아버지가 찍은 동영상을 보니 당시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긴장된 상태로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지만 물 속이 어떨지 예상할 수 없었기에 몸과 마음 모두 긴장된 상태였다. 그런데 부모님 덕분인지 마음이 좀 차분해졌고, 여기까지 온 이상 끝까지 간다, 라는 굳은 결심이 서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가 되었다. 이윽고 삑 소리가 났고 그대로 물에 첨벙 뛰어들었다. 다행히 물속은 고요했다. 나는 바로 호흡을 잡고 스트로크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와 달리 파도가 치지 않아 마치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중간중간 앞뒤옆 사람들과 크고 작은 몸싸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리 없이 안정적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었다.



부표는 100미터마다 1개씩 있었다. 쉬지 않고 스트로크를 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인 18번째 부표를 지나게 되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전방에 종료지점이 보였다. 그 순간 아 이제 수영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100미터 스퍼트를 했다. 점점 물이 낮아졌고 나는 마침내 땅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시계를 보니 54분이었다. 연습 때보다는 느렸지만 처음 한 바다수영치고는 좋은 기록이었다. 이게 다 잔잔한 바다 덕분이었다. 하늘에 감사했다. 슈트 상의를 벗으며 뛰어나가 민물에 간단히 얼굴과 몸을 씻은 후 바꿈터를 향해 뛰어갔다. 자전거를 탈 시간이었다.



바꿈터는 이미 많은 자전거가 빠져나가 있었다. 수영하고 나온 몇몇 사람들 틈에서 나는 슈트를 벗었다. 수건으로 발을 간단히 닦은 후 양말을 신고 클릿슈즈를 신었다. 짠 바닷물 때문인지 목이 말라 게토레이 반 병을 원샷했다. 에너지젤을 하나 먹으며 자전거를 거치대에서 내렸다. 이제 90km, 자전거를 타야 했다.



자전거 도로의 풍경은 작년 재작년과는 크게 달랐다. 작년은 미시간주 미국 시골 풍경이었고 재작년은 시카고 시내 풍경이었다면 올해는 경남 고성군의 농어촌 풍경이었다. 물론 나에게 친근하고 편한 건 한국 농어촌의 풍경이었다. 한쪽은 푸른 바다가 있었고 다른 한쪽은 초록 논밭이 있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 풍경은 자전거 타는 내내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풍경이 3시간 넘는 라이딩을 모두 책임져 줄 수는 없었다. 가끔 풍경을 보며 페달을 돌리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전방을 주시하면서 달렸다. 10km, 20km 는 후딱 지나갔는데, 30km, 45km 넘어가면서 허리와 허벅지에 피로가 누적되어 시간이 더디게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들어도 멈출 수는 없었다. 페달은 어쩔 수 없이 계속 굴러만 갔다.


미국 자전거 길과 한국 자전거 길의 차이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고개가 많다는 것이었다. 한 고개 넘으면 또 한 고개, 그러다 높은 언덕, 그리고 또 고개. 쉴 새 없이 나오는 고개에 기어를 바꾸며 대응해 봤지만 피로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60km 를 넘어가니 이제 많이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70km 가 되는 순간 좀만 더 버티자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동네 어귀 오두막에 둘러앉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했다. 손주뻘되는 젊은이들이 땀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안쓰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암튼 그 모습에 감동받아 또 페달을 굴렸다. 이것 또한 한국만의 특징이기도 했다.


80km 넘어가자 이제 다왔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출발했을 때 보았던 점점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은 거리가 5km, 4km, 3km 줄어들수록 이제 땅에 발을 딛고 설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꿈터가 눈에 들어왔고 나는 3시간 30분 만에 자전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이제 러닝만이 남았다.



다시 바꿈터로 돌아왔다. 땡볕에 수고한 자전거를 거치하고 클릿슈즈를 벗고 러닝화로 갈아 신었다. 땀에 젖은 티셔츠도 갈아입었다. 게토레이 또 한 병을 원샷하고 에너지젤을 하나 먹은 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제 21km 러닝만 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웠다. 30도가 넘는 기온에 햇살까지 강렬했다. 땀은 비 오듯 내리고 몸은 탈 듯이 뜨거워졌다. 1km 마다 있는 보급소에서 얼음물도 마시고 목덜미에 물도 뿌려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양쪽 허벅지에 쥐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파스 뿌려주는 요원들이 중간중간에 있어 지속적으로 파스를 뿌려가며 뛰었지만 뭉침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다. 땡볕 아래 걷는 사람 반 뛰는 사람 반일 정도였다.


그렇게 또 꾸역꾸역 뛰어가는데, 저 멀리 가족들이 보였다. 내가 뛰는 코스 중간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7살 아들은 스케치북에 "송현기 파이팅!" 을 적어서 응원하고 있었고 3살 딸은 뭔지 모를 그림을 그려 아빠를 응원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아내, 아들, 딸을 보니 또 없던 힘이 생겼다. 아이언맨 70.3 고성은 러닝이 동일한 코스를 3번 도는 방식이었는데 힘들 때마다 가족들을 보고 힘을 낼 수 있어 참 좋았다. 내가 달려오면 아빠 파이팅을 외쳐주는 아이들 덕에 걷고 싶어도 뛰었던 것 같다. 언제나 가족이 큰 힘이 된다.



중간에 흥겨운 농악을 연주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장구, 북, 꾕가리의 흥겨운 연주는 엄청 큰 힘이 되었다. 그 근방에만 가도 힘이 솟구쳐 더 빨리 뛸 수 있었다. 신명나다, 의 뜻이 저절로 일어나는 흥겨운 기분과 멋이 생기다, 인데 실제로도 그랬다. 농악 연주해주신 분들 덕에 한 걸음이라도 더 뛰었던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러는 사이 1바퀴, 2바퀴를 뛰었고 마지막 바퀴를 남겨두게 되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자 갑자기 없던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모두 결승점으로 자리를 옮겼고 나만 뜨거운 도로 위에 남아 마지막 질주를 하고 있었다.



이제 좀만 더하면 그만 달려도 된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고 조금 있으면 차가운 무언가를 앉아서 먹고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18km 경과 팻말이 보이자 정말 끝이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 1.9km 수영하고 땡볕에서 90km 자전거를 타고 뜨거운 도로 위에서 20km 넘게 뛰다가 드디어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또 해냈구나, 하는 안도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저 멀리 레드카펫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그곳에 서 있었다.



해냈다.





5. 후기 後記

: 내가 철인3종을 좋아하는 이유


누구나 한 번쯤은, 철인3종에 도전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운동 깨나했던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아마도 "철인"이라는 단어의 묘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강함의 상징인 철(鐵)과 결합된 사람이라니, 듣기만 해도 그 단단함이 느껴진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이름이 "아이언맨 Ironman"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암튼 "철인" 칭호는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느끼게 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철인3종에 도전해볼까, 라는 생각이 그대로 도전하자!!, 로 연결되기는 쉽지가 않다. 신체적인 강인함은 둘째치고 실제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가 철인을?', '나 정도가..', '내가 감히..' 이런 생각들이 결심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수영 좀 하다가, 사이클 좀 타다가, 마지막에 좀 달리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쉽게 생각하면 좋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게 잘 안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좀 하고 좀 타고 좀 달리는 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 가지를 모두 동시에 하루에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달리기는 그렇다고 쳐도 수영과 사이클의 거리가 만만치 않다. 특히 바다에서 하는 수영은 많은 사람들이 철인3종을 큰 벽으로 느끼게 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랬다. 꽤 오랜 시간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도전장을 내밀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나는 수영과 사이클을 좋아해 어느 정도 신체적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맞아, 이 표현이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대회 참여를 결정했고 완주를 했고 그 기회가 또 이어져 새로운 대회에 나갔고 또 완주를 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준비만 열심히 한다면 보통의 사람이 못할 일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큰 장벽이라고 느껴졌던 수영도 꾸준히 연습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슈트를 입고 하기에 절대 바다에 빠져 죽을 염려는 없다) 사이클도 연습을 통해 익숙해진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혼자서 하기 어렵다면 동호회에 가입해서 해도 되고 아니면 나처럼 계획 세워서 혼자 해도 충분히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도전의 의지만 있다면 망설일 필요 없이 도전해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철인이 되기 위한 훈련은 쉽지 않다. 지난한 훈련과정은 필수다. 타고난 철인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주를 담보할 수 없다. 작년에 완주했다고 자만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올해는 컷오프 될 수 있는 것이 철인3종 경기이다.


이번 대회에서 러닝을 하다 보니 우연히 가수 션과 함께 달릴 기회가 있었다. (나란히 달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근처에서 달릴 기회가 있었다는 뜻이다) 보급소에 서서 물 마시고 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어머 션이다, 해서 옆을 보니 가수 션이었다. "얼음물 있나요", 한 마디였고 물을 마시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션 가수 활동 당시에 내 나이를 감안하면)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기에 난 뛰면서 금방 제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을 같이 뛰다 치고 나가더니 나중에는 보이지도 않게 멀리 뛰어 나갔다. 와, 정말 체력 좋네.


나중에 집에 와서 나이를 검색해 보니 나보다 10살 많은 만 51세였다. 원래 철인 체질인가 보다 생각하고 인스타에 들어가 보니 아이언맨 70.3 고성 대비 매일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훈련을 하고 있었다. 원래 타고난 것도 있었겠지만 결국은 노력을 해야만 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지난 노력들을 인스타를 통해 보면서 그의 달리기가 왜 그렇게 빠른지, 전체기록은 또 왜 그리 좋은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이 말이 딱 맞는 운동이 철인3종 경기 같다.



어쩌면 보통의 사람이 꾸준한 노력을 통해 사람들이 선망하는 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안에 많은 스토리가 숨어있다는 것이 철인3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바다에서 그리고 도로에서 만난 사람들이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이 힘든 경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젊은 사람도 있었지만 나이 든 분들도 계셨고 여성분들도 많았다. 나이나 성별보다는 얼마나 준비했느냐 어느 정도 진심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나오는 매우 정직한 운동이었다. 70세 이상 노인이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전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감동과 함께 존경심마저 든다.


나에게 철인3종은 아마도 40대 내내 매년 한 번씩 대회를 준비하면서 세월에 저항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한 스토리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계속 열심히 한다면 말이다.


항상 나를 지지해 주는 부모님, 아내와 두 아이에게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중천에서 민물새우를 발견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