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 경기 도전기
아이언맨 70.3을 완주했다. 기록은 7:20:16. 7분이 아니라 7시간이다. 난 왜 그 긴 시간을 물과 길에서 보내야만 했을까.
처음 생각은 달랐다. 작년에 참가한 시카고 철인3종 경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기 개최일이 내가 귀국한 뒤였다. 포기해야 했다. 그 순간 아이언맨 Ironman 이 눈에 들어왔다. 오호 이걸 해볼까.
하지만 아이언맨은 만만치 않았다. 작년 시카고 철인3종과 비교해보자.
시카고 철인3종 올림픽 코스: 총 31.93마일[수영(0.93마일), 자전거(24.8마일), 달리기(6.2마일)]
아이언맨 70.3: 총 70.3마일[수영(1.2마일), 자전거(56마일), 달리기(13.1마일)]
아이언맨 70.3의 경우, 마일을 익숙한 킬로미터로 변환하면, 수영(1.93km), 자전거(90.12km), 달리기(21.08km) 였다. 이 수치 실화인가.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미시건 호수의 파도를 맞으며 1.93km 수영하고 나면 몸이 퍼진다. 당연히 하루 정도는 쉬어줘야 한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그런거 없다. 바로 자전거에 몸을 싣고 90.12km를 타야한다. 자동차로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 거리를 3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나면 몸이 다 부서져 내릴 것이다. 이제는 이틀 정도 쉬어줘야 한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그런거 없다. 바로 운동화 끈을 묶고 21.08km 하프마라톤을 뛰어야 한다. 이게 바로 아이언맨 70.3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몹시.... 미친짓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는 귀신에 홀린듯 지난 3월 27일, 대회를 정확히 3개월 앞둔 시점에 아이언맨 70.3에 등록하였다. 지옥문 오픈이었다.
그리고 등록과 동시에 훈련을 시작했다. 시간만 나면 집근처에서 5km 또는 10km를 뛰었고 주2회 1.5km 수영도 잊지 않았다. 자전거는 집근처 Illinois prairie path 를 따라 20km 씩 연습했다. 그리고 대회 한 달 전부터는 자전거 후 러닝하고, 수영 후 자전거 타는 등 근전환 훈련도 지속적으로 시행했다. 막판에는 무릎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체중을 빼기 시작해서 대회일 기준 5kg 감량에 성공했다. 마지막 봄학기 수업, 졸업준비와 동시에 진행했던 통에 몸과 마음이 몹시 힘들었다. 아내 역시 여기가 태릉 선수촌이냐며 푸념을 하곤 했지만 항상 남편의 도전을 응원해주었다. 우리 와이프 살아있는 부처임.
그리고 드디어 대회일인 6월 26일이 돌아왔다. 바로 오늘이었다.
새벽 5시 아내는 나를 대회장에 데려다 주었다. 나는 수영 슈트와 자전거 클릿 슈즈, 헬맷 등을 한 짐 갖고 Transition area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벌써부터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 상태를 확인하고 가져온 물건들을 순서대로 정리했다. 동이 터오고 있었고 수영 준비를 위해 슈트를 입었다.
근데 파도가 심상치 않았다. (미시건은 호수지만 바다처럼 파도가 친다) 작년에는 날씨 때문에 수영이 취소되었지만 올해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워밍업 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컷오프(cut-off) 시간은 1시간 10분(1.93km)이었다. 그 안에는 못들어오면 탈락이었다. 코스는 600미터를 전진한 후 오른쪽으로 돌아 700미터를 나아간 후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600미터 가량을 전진하여 육지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내 차례가 되었고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많이 차지 않았다. 자유형을 위해 스트로크를 몇 번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이 앞으로 거의 나아가지 않았다. 나아가기는 커녕 파도에 몸이 실려 오르락 내리락만 반복했다. 옆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파도 때문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파도를 뚫어야만 했다. 대략 난감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힘을 내서 파도와 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힘이 두 배로 들었다. 자유형과 평형을 교차로 하며 법석을 부려도 전진이 더디기만 했다. 내 앞과 뒤, 옆에 사람들이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물 위에 둥둥 떠있었다. 타이타닉 침몰 후의 모습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꾸역꾸역 전진해서 600미터 부표를 터치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다. 이제 오른쪽으로 돌아 700미터를 가로로 전진해야 했다. 파도를 옆으로 놓고 하는 수영이라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을 똑바로 수영해도 몸이 파도에 떠밀려 부표 안쪽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똑바로 가려면 왼쪽으로 20-30도 기울여 수영을 해야했다. 톱니모양 전진이었다.
그렇게 또 어찌어찌 700미터 부표를 터치했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았다. 이제는 육지를 향해 600미터를 나아가야 했다. 이건 쉬웠다. 내 뒤에서 파도가 나를 육지를 향해 밀어주었다. 쉬지 않고 수영했고 결국 육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시간이 관건이었다. 시계를 보니 다행히 컷오프 2분 전이었다. 01:08:04. 휴, 살았다.
파도와 씨름을 하고 나오니 모래사장을 걷는데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이대로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가서 해물라면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전거를 타야했다. Transition area로 가서 슈트를 벗고 티셔츠를 입은 후 클릿 슈즈를 신고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시원한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혔지만 전혀 신이 나지 않았다. 앞으로 90.12km 를 타야했다. 아...
미시건 benton harbor 근처 도로는 만만치 않았다. 울퉁불퉁한 곳도 많았고 자갈도 많았다. 작년 시카고 lakeshore 드라이브는 여기에 비하면 실크로드였다. 자전거 바퀴 펑크가 걱정되는 수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코스 초입부터 두 명이 바퀴가 터져 고치고 있었다. 도로 위에 시선을 집중해야만 했다.
자전거 코스는 길고 지루했다. 초반에는 차가 많은 곳을 달리더니 조금 지나자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체감상 70퍼센트 이상이 시골길이었던 것 같다. 자전거간 앞뒤 거리가 꽤 멀었기에 나는 거의 모든 시간 자전거와 둘이서만 있게 되었다. 그리고 3시간 넘는 시간동안 자전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발은 계속 페달을 구르면서도, "저 작물은 도대체 뭘까, 너는 아니?" "여기에 와이너리가 있네, 포도가 잘 자라나보다" "나 허리 아픈데 넌 어떠니, 아프지 마렴" "너 바퀴 펑크나면 안돼, 제발 그러지마"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러다 자전거 타기 너무 힘들면 같이 욕도 했다. 여기에 쓸 수 없는 욕을 하며 아픔을 극복했다.
암튼 총 3시간 44분을 달려 나와 자전거는 코스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허벅지는 터지려고 했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다. 나는 또 다시 Transition area로 돌아왔다. 자전거를 걸어놓고 티셔츠를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이제 뛰어야 했다. 순간 운동화를 미시건 호수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한 게 너무 아까웠다. 돌아가기엔 자전거를 너무 많이 탔다.
신발끈을 새로 묶고 뛰기 시작했다. 바로 허벅지가 올라왔다. 마사지가 필요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뛰었다. 마사지 하는 순간 쥐가 나서 허벅지를 마비시킬 것 같았다. 이럴땐 무시가 답이었다. 허벅지도 타이밍이 안좋은 걸 알았는지 몇 번 승을 내다가 잠잠해졌다. 그렇게 마지막 하프마라톤이 시작되었다.
코스가 약간 특이했는데 후원사인 월풀 Whirlpool 본사를 두 바퀴 도는 코스였다. 3km 정도 뛰니 월풀 본사가 나왔다. 헤드쿼터, 국제관, 커뮤니티센터, 어린이집을 골고루 돌아보도록 코스가 구성되어 있었다. 그곳을 두 바퀴나 돌면서 삼성전자 평택공장이 아닌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후원사 투어를 겸해 총 21.08km 를 달렸다. 기록은 2시간 11분이었다.
러닝이 끝나는 곳에 Finish 라인이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레드카펫 위를 뛰었다. 파도를 뚫고 수영하던 모습,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던 모습, 땡볕에서 달리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순간 울컥했다. 아침 7시 10분에 물에 입수해서 오후 2시 30분이 되어서야 피니쉬 라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진행자가 내 이름을 불러줬고 나는 결승선을 지나 아내와 아이들과 진한 포옹을 할 수 있었다.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