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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Nov 15. 2023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공약을 읽을까


선거에서 후보자들은 공약을 제시한다.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본인이 당선될 경우 무엇을 할 것인지를 사전에 약속하는 것이다. 공적인 약속이라는 한자어의 公約 이지만, 실제 의미는 선거와 관련하여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본인 임기 내 달성할 것을 약속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선거에 임하는 모든 후보들은 공약을 제시한다. 공약을 통해 본인이 당선될 경우에 펼쳐질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좋은 일자리 창출, 자영업자 보호, 교통시스템 확충, 교육 개선, 주택 공급 등등 어찌 보면 뻔하디 뻔한 공약들이지만 모든 후보가 빠짐없이 제시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후보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야 유권자들이 자신을 뽑아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은 선거공약에 대한 두 가지 규정을 가지고 있다.


제65조(선거공보)는 "후보자는 선거운동을 위하여 책자형 선거공보 1종을 작성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후보자는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을 모두 포함하는 후보자다. 책자형 선거공보는 대통령선거에 있어서는 16면 이내로, 국회의원선거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선거에 있어서는 12면 이내로, 지방의회의원선거에 있어서는 8면 이내로 작성하고, 그 수량은 당해 선거구 안의 세대수와 예상 거소투표신고인수 등을 합한 수에 상당하는 수 이내에 한하고, 구시군 선거관리위원회가 발송한다.


제66조(선거공약서)는 "대통령선거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선거의 후보자는 선거운동을 위하여 선거공약 및 그 추진계획을 게재한 인쇄물 1종을 작성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공약서에는 선거공약 및 이에 대한 추진계획으로 각 사업의 목표ㆍ우선순위ㆍ이행절차ㆍ이행기한ㆍ재원조달방안을 게재하여야 하며, 대통령선거에 있어서는 32면 이내로, 시ㆍ도지사선거에 있어서는 16면 이내로, 자치구ㆍ시ㆍ군의 장선거에 있어서는 12면 이내로 작성하여 해당 선거구 안에 있는 세대수의 100분의 10에 해당하는 수 이내에 한해 후보자와 그 가족, 선거사무장 등이 배부할 수 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모든 후보자가 작성하는 선거공보와 달리 선거공약서는 국회의원, 지방의원을 제외한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만 작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조항은 2007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후보자들의 공약 남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후 2008년 대통령 선거 후보자에게까지 적용되었지만 국회의원, 지방의원은 최종 입법 과정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후보자들은 공약을 잘 지킬까?


2024년 22대 총선을 5개월 앞두고 동아일보는 21대 지역구 국회의원 238명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공약 1만 4119개를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공약 중 검증 가능한 공약은 70%에 불과했고, 그중 이행된 비율은 18.5%에 그쳤다고 한다. 그야말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인 空約의 남발이었다.


대통령들의 공약 이행률은 어떨까? 경실련의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이 40% 언저리의 공약이행률을 기록하고 있고 낮을 경우는 10%대에 머물기도 했다. 사업목표, 우선순위, 절차, 기한, 재원조달 등 기본적인 사업 타당성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표를 얻기 위한 공약을 발표하다 보니 공약 이행이 쉽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공약 이행률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공약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선거공보, 선거공약서는 물론 선거벽보, 홈페이지, SNS 등을 통해 후보자가 어떤 공약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당선 후에 그 공약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 반영해서 투표를 해야 한다. 그래야 후보자들도 공약 남발을 하지 않고 이행가능한 공약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공약을 알고 있을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실시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 관한 유권자의식조사에 따르면, 후보자의 정책 및 공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지를 설문한 결과(1,500명 대상), ‘알고 있다’는 응답이 63.9%로 ‘모른다’(34.5%)보다 29.4%p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로 보인다. 물론 유권자 모두가 모든 공약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분의 2 정도의 유권자가 후보자들의 공약을 인지하고 있다는 응답을 한 점은, 후보자와 정당에게는 공약에 대한 상당한 압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지후보 선택 시 ‘정책·공약’(29.7%)을 고려한다는 응답이 ‘인물·능력·도덕성’(29.8%)과 ‘소속 정당’(29.0%)을 고려한다는 응답과 비슷한 비율을 보인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 선거에서 공약만으로 당선되거나 공약이 다른 요인에 앞서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요소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가능해 보인다.


그러면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공약을 꼼꼼히 읽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명확히 조사된 바는 없다. 다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실시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 관한 유권자의식조사에 따르면, 후보자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주로 어디에서 얻는지 조사한 결과, ‘인터넷 및 소셜네트워크’가 31.2%로 가장 많고, ‘TV, 신문, 라디오 등 언론보도’(23.9%)가 그 뒤를 이었으며, ‘정당 및 후보자의 선거홍보물’(18.6%), ‘선관위 선거벽보 및 선거공보’(9.6%)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통해 볼 때 온라인 또는 언론보도 등을 통해 후보자 정보를 주로 습득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며, 선관위 선거벽보 및 선거공보 등 공약내용이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나열되어 있는 매체에 대한 관심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미국과 같은 정치 선진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뉴욕타임스 에디터인 Jessica Bennett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각 후보자의 공약을 깊이 읽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국인들이 토론회나 연설회에서 후보자들을 그저 엿보고 (glimpse) 그들에 대한 의견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순간이 바이럴 한 뉴스거리가 된다면 그 찰나가 후보자 결정에 더욱 중요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약이 아닌 찰나로 자신이 뽑을 후보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영국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 몸소 이러한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영국 국민들은 그들이 무엇을 투표하는지, EU를 떠나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고 투표했다. 투표 결과 브렉시트가 결정되었지만 실제 이행과정에서 본인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후회하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다. 유권자들이 공약을 자세히 읽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에 따라 투표하는 선거문화가 바뀌지 않다 보니 나오게 된 안타까운 결과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 공약에 초점을 맞추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우선, 유권자들이 공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주택, 교통, 일자리, 소득 등 검증가능한 공약부터 꼼꼼히 따져야 한다. 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들에 얼마나 후보자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는지를 체크해야 하는 것이다.


후보자는 유권자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유권자가 꼼꼼해지면 후보자는 두 배로 꼼꼼해질 수밖에 없다. 사업목표부터 절차, 기한, 재원조달에 이르기까지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 공약을 세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당선된 후에는 이행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선거는 1회성 행사가 아니다. 임기가 끝나면 다음 임기를 위한 선거가 진행된다. 반복 게임이라는 말이다. 유권자들이 공약을 꼼꼼히 읽고 이행여부를 기억하면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e)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걸 두려워하는 후보자 또는 정당은 헛된 공약 남발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한때 매니페스토(manifesto) 시민운동이 붐을 이룬 적이 있었다. 후보자는 정책으로 경쟁하고 유권자는 후보자의 정책을 따져 결정하자는 것인데, 2006년 제4회 지방선거를 필두로 2010년대 초반까지 열풍이 불었었다. 당시 유력 정치인들이 정책선거를 핵심 선거대책으로 삼기도 했었다.


다시 오래된 매니페스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후보자를 움직이는 것은 유권자이고 그 유권자가 공약에 관심을 가져야 선거가 정책선거로 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공약보다는 인물이나 정당에 초점을 맞춰 투표하는 선거문화가 지속된다면 공약은 언제나 텅 빈 약속에 머무를 것이다. 결국 그 시작은 유권자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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