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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Dec 27. 2023

초기 당근마켓 썰



아내와 나는 신혼집을 판교에 얻었다. 2013년 12월에 들어가서 2020년 8월에 떠났으니 거의 7년 가까이를 판교에 살았다. 정확히는 서판교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판교는 살기 좋은 곳이었다. 서판교는 쾌적함, 동판교는 편리성이라는 장점을 지니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서판교와 동판교 사이, 정확히는 동판교에 가깝게 판교테크노밸리가 있었다. NC소프트, 카카오, 넥슨, 안랩 등 유수의 IT 기업들이 위치한 곳이었다. 당연히 해당 IT기업들의 테스트배드 test-bed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판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근마켓’도 그중 하나였다.


우리 부부가 판교에 적응하고 한참을 재밌게 살 무렵 ‘당근마켓’ 어플이 동네에 퍼지기 시작했다. 동네사람들과만 안전하게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어플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제한적인 집 근처 동네에서만 거래하니 위험하지 않고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는 '중고나라'를 통해 중고거래 하는 것이 대세였던 시기라 '당근마켓'은 그저 신규로 등장한 어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신기한 마음에 어플을 깔고 물건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초기여서 물건이 많지는 않았다. 우리 아파트에서 거래 가능한 물건도 있었고 옆 아파트에서 파는 물건도 있어 신기하긴 했다. 서판교, 동판교 모두 주거지로서 매우 안정적인 곳이었기에 사기의 위험성도 없었고 더욱이 물건상태도 좋았다.


그렇게 소소하게 몇몇 거래를 거치며 우리 부부의 '당근마켓'에 대한 신뢰는 높아져갔고 우리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필요 없는 물건은 처분하는 통로로 사용하곤 했다. 그게 아마 서비스 초기인 2017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당근마켓'은 판교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그 후 전국 단위로 확대해 나가 현재에 이르렀다. (카카오 바이크도 마찬가지로 판교에서 시범서비스를 실시했는데 내가 당시 전국 최초(?) 정도로 이용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에야 '당근마켓'으로 중고거래 하는 것이 국룰 같은 게 되어버렸지만 과거 대중화되기 전에는 실험버전 같은 느낌이 있었다. 아직 룰이 정해지지 않은 광야에 새로운 중고거래 어플이 생겨 모두가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했다고나 할까. 그 과도기에 경험한 몇 가지 기억이 떠올라 여기에 남겨본다.



1. 당시에는 나눔의 정(情)이 있었다


현재의 "나눔" 기능이 초기에도 있었다. 애들 장난감, 책, 옷가지, 신발 등에 "나눔"이 많았다. 아내는 나눔을 받으러 갈 때면 우유 한 팩(혹은 식빵 한 봉지)을 주고 왔다. 나눔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우리가 나눔을 주는 입장일 때는 받으러 오시는 분이 빵이나 음료수를 갖다 주기도 했다. 역시나 감사의 표시였다. 이건 중고거래라기보다는 뭔가 동네사람들 사이의 정(情)을 주고받는 느낌이었다. 아마 동네 안에서만 이루어지던 이웃 간의 거래여서 가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초기 단계가 지나며 지금은 이러한 문화는 점차 사라진 것 같다.



2. 옷의 경우 실착도 이루어졌다


당시 내가 안 입는 청바지를 하나 팔려고 내놓았다. 근데 그 바지가 트루릴리젼이라는 브랜드로 직접 입어봐야 핏을 알 수 있는 옷이었다. 요즘 같으면 본인이 (블로그 같은 곳에서) 잘 알아보고 구매하겠지만 초기에는 옷을 직접 실착 해보기도 했다. 어차피 동네 사람이 구매하는 거라서 마실온 김에 한 번 입어보고 사는 느낌이었다. 그것에 대해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거부감이 없었다.


청바지를 사러 한 남성분이 오셨고 그분은 옷을 입어보기를 원하셨다. 나는 아파트 내에 있는 공중 화장실로 그분을 이끌었고 그분은 화장실에 들어가 청바지를 입으시더니 나와서 거울을 보며 나한테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원래 허벅지가 핏한 브랜드여서 좀 타이트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입으면 예쁘다고 설명드렸고, 그분은 괜찮나 하면서 한참을 거울을 보다가는 3만 원 현금을 주고는 내 청바지를 입은 채 본인이 끌고 온 Ford F-150을 타고 돌아가셨다.


어느 날은 퇴근하고 집 문을 여는데 안에서 엄마야 하는 여자 비명소리가 들렸다. 난 순간 우리 집이 아닌가 하고 문을 다시 닫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 이상 이곳이 우리 집이 아닐 리가 없었다. 호수도 맞았다. 다시 문을 열었다. 왠 낯선 아주머니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분은 나에게 "아 당근마켓 바지 입어보느라고..."라고 얼버무리며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당근마켓에서 중고바지를 사러 오셨고 혹시 입어볼 수 있겠느냐고 해서 흔쾌히 그러라고 해서 집 안에서 입고 있었는데 마침 내가 문을 따고 들어왔다는 거였다. 우리 부부는 웃었지만 당시에는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실착은 초기의 당근마켓만의 독특한 문화 같은 거였다. 동네에서 만나 거래하니 먼저 좀 입어볼 수 있지 않나 정도.



3. 현금 거래가 기본이었다


요즘은 당근페이, 계좌이체가 기본이지만 (물론 코로나 때문으로 안다) 예전에는 현금거래가 디폴트였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살 때도 팔 때도 잔돈을 미리 챙겨놔야 했다. 7000원 같은 어설픈 금액으로 판매하는 경우에는 내가 7000원을 딱 맞춰 가져가든지 상대방이 3000원 거스름을 가져와야 거래가 성사되었다. 물론 하다 하다 안돼서 계좌이체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반적인 거래는 현금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미리 채팅을 통해 거스름돈 보유 여부를 확인해야만 했다. 아까 같은 상황에서 거스름돈이 2000원밖에 없다면? 당연히 네고 쿨거래로 가는 것도 또 다른 묘미였다. 이웃사촌이니까.



4. 거래하면서 일상적인 조언을 주고받기도 했다


토플에서 원하는 점수 다 얻고 난 나는 저렴한 가격에 관련 책을 당근에 올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분이 구매를 원했고 직접 만나보니 수험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거래장소에서 만남과 동시에 스몰토크로 시작된 토플 이야기가 꽤 길게 이어져 내 공부방법론, 시험요령에 이르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 서서 정담을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지만 그때는 아마도 같은 동네에 사는 동생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듯하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당근마켓’이 대세가 되었다. 당근 그게 뭐냐고 묻던 환갑 넘은 어머니가 집에 있는 물건 올려놓고 용돈벌이 하시는 걸 보면 이제 중고거래 = 당근으로 굳혀져 가는 듯하다. 라떼는 말이야, 정도는 아니지만 아내와 이야기하다 몇몇 에피소드가 떠올라 간단히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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