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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서민서패밀리 Mar 10. 2024

익숙해진다는 것의 무서움


집에 어항이 하나 있다. 미국 가기 전부터 사용하던 것인데 구피, 네온테트라 등 소형어종 위주로 키우던 것이었다.


미국 가 있는 2년 동안은 다 정리하고 비워뒀었다. 하지만 귀국하고 나서는 다시 물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첫째 아이가 원하는 물고기를 넣기로 하고 함께 수족관에 갔다. 아이는 많은 물고기 중에 “실버샤크”라고 불리는 어종에 꽂혔다. 진짜 샤크는 아니고 잉어과에 속하는 물고기이다. 상어를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꽤 큰 실버샤크 세 마리를 어항에 넣고 나니 다른 물고기 넣기가 애매해졌다. 구피나 작은 어종은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으니 실버샤크와 크기가 비슷한 비파, 테트라 등을 골라 어항에 투입했다. 유목, 수초 등을 넣으니 그럴 듯했다. 이제 여기서 마무리하고 유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내가 두 아이와 친정집(밀양 시골)에 다녀왔는데 첫째 아이가 강물에 사는 피라미를 잔뜩 잡아왔다. 그리고는 우리 어항에 넣어 같이 키우고 싶다고 했다.


어항이 아직 과밀상태는 아니었지만 열대어와 토종 피라미를 합사 하는데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 전염병 문제도 있고, 특히 서로 잡아먹을 가능성도 싸울 가능성도 높았다. 거기에 더해 토종 피라미는 물 위를 뛰어오르는 본능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고, 결국 15마리 정도의 토종 피라미를 집 어항에 투입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서로 숨고 건드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싸우고 건드리고 하는 건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다. 아침에 깨어나 어항 앞뒤옆을 살펴보니 세네 마리 피라미가 멸치로 변해서 말라 죽어있었다. 아마 밤새 물 위로 뛰어오르다 어항 밖으로 떨어져 버린 아이들 같았다.


그제서야 우리 어항에 뚜껑이 없음을 깨달았다. 마땅한 방안이 없어 퇴근하면서 덮개를 사 오기로 하고 일단 회사에 갔다. 그런데 저녁에 돌아 와보니 또 두세 마리가 멸치가 되어 있었다. 심각했다. 피라미들이 백제 삼천궁녀처럼 다 밖으로 떨어질 것 같아 얼른 윗부분에 망을 설치했다.


그러고도 며칠간은 물 위로 뛰어올라 망에 부딪히는 피라미들이 눈에 보였다. 서울생활에 적응 못하는 시골쥐 같았다. 하지만 망이 버티고 있어 더 이상의 사상자는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피라미들은 서서히 서울생활에 적응해 갔다. 물도 따땃했고 때 되면 맛있는 사료도 충분히 주니 천국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물 위로 뛰어오르는 아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달 반 정도 지났을 때 망을 벗겨냈다. 이제 누구든 물 위로 뛰어오르면 밖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피라미 그 누구도 물 위로 뛰어오르지 않았다. 편한 생활에 적응하여 더 이상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물을 뛰어오르는 본능을 스스로 억제하는 듯했다.


이 사례처럼 편안함이 본능을 이겨내고 인생에 더 강력하게 작용할 때가 있다. 물론 편안함도 좋지만 여기에 적응하면 어항 속에 갇혀 평생을 익숙함 속에 길들여져 살아야 될 수도 있다.


우리 인생이 그런 편안함에 익숙해져 발전 없이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늘 경계하고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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