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irth of the first baby
조짐(兆朕),
좋거나 나쁜 일이 생길 기미가 보이는 현상
그 밤 어떠한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2015년 8월 26일 저녁,
만삭의 아내와 나는 그저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TV에는 언제나 그랬듯 야구 중계가 틀어져 있었다.
만삭인 아내가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8할이 임신 관련 주제다.
그래도 첫 아이인지라 인내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물론 대부분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하면 안되고 저건 먹어서는 안되고 거기는 가서는 안되고.
조심성 많은 우리 부부에게는 가외적인 정보일지도 모르지만 가뜩이나 만삭에 예민한 아내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잠자코 듣는 편이다.
21세기 남편에게 복종은 언제나 미덕이 된다.
경기 초반 응원팀인 한화 이글스가 크게 지고 있었다.
그깟 공놀이 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계는 틀어놓는다.
저 멀리 야구중계소리를 들으며 늦은 저녁을 먹었다.
후식으로 과일도 먹었다.
그 사이 쉽게 마무리될 것 같았던 야구경기는 놀라운 추격전 끝에 연장전에 접어들고 있었다.
야신(野神)으로 불리던 이가 팀을 맡은 지 첫 해만에 한화 이글스는 끈질기게 변해가고 있었다.
11회말 2사 1, 2루에서 김태균이 그림같은 끝내기 안타를 쳤다.
경기는 이겼고 우리 부부는 덩실덩실 춤을 췄다.
시간은 벌써 11시 40분이 지났다.
5시간 넘는 혈전이었다.
짜릿했던 경기의 여운 때문인지 우리 부부는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초저녁 내가 아내의 복부를 마사지해주다 아내가 뀐 방귀 이야기를 시작으로, 정준하의 랩가사가 얼마나 중독적인지를 논하며 눈물이 날 정도로 한참을 웃은 후에 우리는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오전 2시 40분.
"오빠...."
아직 얕은 잠에 들어 있을 무렵 갑자기 아내가 나를 찾았다.
"양수가 나오는 것 같아.."
우리는 서둘러 옷을 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번 주가 임신 마지막 주일 것 같아.."
지난 주말 아내가 점쟁이처럼 했던 말이 공연히 머리에 떠올랐다.
새벽 3시 10분.
검사를 하러 아내는 분만실로 들어갔다.
나는 밖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다른 방에서 응애하는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원하는 소리였다.
양수가 터진게 맞았다. 간호사는 점심 전에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 했다.
드디어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만나서 반가워,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미리 준비한 말을 잊지 않도록 조용히 되뇌였다.
오전 4시 20분.
병원 밖에는 초가을비가 내렸다.
나는 배냇저고리를 가지러 다시 집으로 향했다.
34년전 내가 세상에 태어났던 날 처음 입었던 옷이었다.
그 오래된 옷을 어머니가 잘 보관해두었다가 며느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부지런하며 현명한 어머니를 둔 덕에 우리는 아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배냇저고리와 미아가 산후조리원 가져가려고 미리 싸놓은 여행가방을 챙겼다.
여행가방을 열어보니 옷가지와 출산준비물이 가지런히 잘 정리되어 있었다.
배냇저고리는 이미 삶아서 다려놓은 상태였고, 다른 아기용품 역시도 하나하나 깨끗이 개어져 있었다.
아내가 조만간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하나하나 삶고 다렸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릿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아들은 사랑이 많은 부지런한 어머니를 두었구나.."
오전 5시.
병원에 다시 도착했다.
아기의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산소마스크를 써야한다고 했다.
"소망아, 엄마 뱃속에서 놀 시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더 놀아야지.."
미아가 조용히 되뇌였다.
소망이는 아이의 태명이었다.
옆에 앉아있던 나는 그 말에 또 울컥했다.
진통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다.
산소마스크는 벗었지만 아직 자궁문이 많이 열리지 않아 날이 밝으면 촉진제를 놓아야 한다고 했다.
촉진제라는 차가운 단어가 낯선 병실만큼 무섭게 느껴졌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전 6시 20분.
촉진제 주입 후 진통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5분 간격부터 시간을 재보았는데 3분, 2분으로 줄더니 이제는 시계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통을 참아내려 앙다문 아내의 입이 극심한 진통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전 7시 20분.
아내가 너무 힘들어해서 간호사에게 무통주사를 놓아달라고 하였다.
간호사는 지금 자궁문이 5센치 정도 열렸으니 무통주사는 가능하지만, 사람마다 통증 완화 효과가 다를 수 있어 고통이 덜할 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단 1%의 가능성라도 의지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오전 8시.
다행히 무통주사 주입 후 고통이 확연히 약해졌다.
약효가 2시간이라고 했는데, 그 안에 아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출산의 고통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데 옆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진정 괴롭게 느껴졌다.
그저 손 잡아주고 주물러주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무척이나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오전 9시.
자궁문이 다 열렸다.
복도 옆 화이트보드에는 아내의 이름 옆에 full이라고 적혀 있었다.
간호사들이 분만 준비로 분주해졌다.
어느새 가족분만실 안은 여러 명의 간호사로 채워져 있었다.
"숨 들이 쉬고 숨 멈추고, 하나, 둘, 셋!!! 더.. 더.. 더...."
그들은 미아의 배를 누르며 계속 힘주기를 반복시켰다.
출산이 임박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전 9시 30분.
드디어 주치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본격적인 분만에 돌입했다.
30분, 지독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생명을 세상으로 낳아내기 위한 영겁의 시간들이었다.
나와 아내의 인생 시계도 이전과는 다르게 흘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졌던 그간의 시간들이 응축되어 또 다른 새로운 인생을 창조해내는 느낌이었다.
오전 10시.
소망이가 세상 빛을 보았다.
우렁차지만 절제있는 울음과 함께, 우리 부부는 아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엄마야, 소망아, 엄마야.."
아내의 울먹이는 외침은 진짜 엄마의 목소리였다.
미아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있었다.
가족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