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의 낮은 정치참여가 문제라고 한다. 그것이 왜 문제일까.
보통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으로 정의한다(David Easton). 세상에는 많은 가치가 있다. 모두가 가치를 얻고 싶어한다. 따라서 가치를 "잘" 배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배분해야 하는가. 이에 우리는 선거를 통해 대표자(대통령, 국회의원 등)를 선출하고 그들로 하여금 가치를 권위적으로 "잘" 배분하도록 위임한다.
그런데 대표자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치면 가치를 "잘" 배분하기 힘들어진다. 가령 백인이 대표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흑인을 위한 가치 배분은 소홀해지기 쉽다. 특정 종족이 대표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다른 종족들을 위한 가치 배분은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여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표자의 대부분을 남성이 차지한다면 여성을 위한 가치 배분은 녹록치 않을 것이다.
남녀 비율이 50:50 이라면 그 비율에 맞는 대표자를 선출해야 가치를 "잘" 배분하기에 용이할 것이다. 이를 정치학에서는 "대표성의 확보"라 한다.
-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역시 녹록치 않다. 제20대 총선에서 여성은 총 300명 중 51명이 당선되어 전체 17%이다. 국제의회연합(IPU)가 낸 통계에서 한국은 여성국회의원 수 세계 115위이다. 상당히 낮은 수치다. 물론 미국도 19.4%로 전체 99위이고 일본은 10.1%로 전체 157위이다. 정치적 성숙도보다는 정치 제도와 문화가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회의 여성 대표성이 낮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여성은 가치를 배분받는데 있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에 많은 학자들이 여성의 정치참여를 높일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 정치참여를 높일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안으로 여성 공천 확대를 위한 정치관계법 개정, 여성 비례대표 비중을 높이기 위한 선거제도 개선, 정당의 여성할당제 적극 실천, 여성추천보조금 확대 등이 있을 것이다. <기사 참고> 모든 것이 다 제도와 예산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에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 실행이 된다하더라도 위 대안들만으로는 근본적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왜 그럴까.
제시된 대안들이 모두 하향식 Top-Down 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자생적으로 발전하여 나온 결과물이 아니라 제도를 통해 이상점과 사회의 현실을 인위적으로 맞추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임시방편적으로 보인다.
물론 비뚤어진 운동장을 단숨에 평평한 운동장으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에 어느정도 인위적인 부양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저러한 대안들이 마중물처럼 여성의 정치참여 증가를 이끌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성이 문제다.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재와 같은 남성 중심 사회 현실에서는 오히려 현실과의 괴리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형식적인 대표성만 지니고 실질적인 대표 활동은 제약되는 것이다.
- 대표적인 사례가 있는가.
르완다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앞서 제시한 여성국회의원 수 전세계 1위는 르완다이다. 여성의원 비율 61.3%로 80명 중에 49명이 여성이다. 굉장히 높은 수치다. 아마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It's The No. 1 Country For Women In Politics — But Not In Daily Life" 라는 NPR의 기사 제목에서 보여주듯 르완다 일상 생활에서의 여성의 삶은 여성 국회의원 숫자에 못미친다.
이유는 단순하다. 하향식으로 만들어낸 제도이기 때문이다. 남녀 평등에 대한 요구는 수천명의 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남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바로 르완다 대학살 genocide 을 종식시킨 폴 카가메 Paul Kagame 대통령이다. 카가메 대통령은 2003년 새 헌법을 제정해 국회 여성의원 비율을 30%로 의무화하였다. 국가와 정부는 카가메의 정책을 잘 따랐다. 그가 군대를 통솔하는 강력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카가메가 만약 새롭게 헌법을 개정해서 여성의무 비율을 없애버린다면 다음 선거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0%가 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 여성들도 극렬하게 저항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일 수도 있어 보인다. 남성들이 그랬듯이)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하향식 정책이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적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전략인 상향식 정책 bottom-up 을 같이 진행해야 한다. 바로 사회적 참여이다.
미국의 "리벳공 로지 Rosie the Riveter" 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남성들은 대부분 전쟁에 참가했다. 따라서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체에 어쩔 수 없이 여성이 들어가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참여가 늘어나자 이는 곧 정치적 참여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정치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전쟁의 종료와 더불어 방위산업체에 종사했던 여성들이 갑자기 직장을 떠나야 했던 점을 지적하는 반대의견도 존재한다)
여성이 사회적 참여 증가가 정치적 참여 증가로 이어진 다른 사례도 있다. 바로 북유럽이다.
노르웨이는 55%에 머물렀던 여성의 노동참여를 최근 70%대로 끌어올리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에도 적극적 지원을 하고 있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다른 북유럽 국가들도 기업의 여성 이사나 임원 비율 쿼터제를 운영하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활동이 가능하려면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노르웨이 정부는 1세부터 5세까지 유아를 돌보는 어린이집을 50년 사이 250곳에서 6000곳 이상으로 늘렸고 국가가 양육비 전액을 부담하고 있다. 이 결과 노르웨이에서는 90% 이상의 어린이는 이러한 시설에서 유아교육을 받고 있다. <기사 참고>
노르웨이 여성 국회의원은 70명으로 전체 169명 중 41.40%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 10위이다. (스웨덴은 43.6%로 5위를, 핀란드는 42%로 7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먼저인지 정치참여가 먼저인지 분명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경우 1970년 이후 여성 경제참여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당시 44%에서 현재 70%대로 증가), 1973년에 15.48%였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1985년 34.40%, 1993년 39.39%로 증가한 것을 보면 사회참여가 정치참여를 견인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 요약한다면.
여성의 낮은 정치참여는 분명 문제다. 가치의 배분에서 여성이 외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영역에서의 여성 대표성 확보가 필요하다. 다만 제도와 예산으로 하는 하향식 방법만 추진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사회참여를 늘리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과 노르웨이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