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번여사 Feb 21. 2022

만약 퇴직하지 않았다면?

자발적 고독에 처하는 프리랜서의 삶


나는 17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퇴직을 했다. 만약 퇴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직장 생활을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이제껏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먼저 떠오른다. 이것은 그동안 퇴직에 대해 별다른 미련이 없이 잘 살아왔다는 말이기도 하겠고 또 직장 생활 그 자체에도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지금껏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몇몇 친구들처럼 지금도 계속 그 직장을 나가고 있다면? 하고 생각해보니, 오! 싫다. 그냥 싫다! 지금보다는 훨씬 재미없는 인생이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면서 무조건 싫다. 일단은 서울이 아닌 바닷가 작은 도시에서 벗어날 길 없는 반복된 패턴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마이너스다. 더군다나 17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는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 나의 개발되지 못한 사회적 처신이라고 해야 할까, 사회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능력들로부터 나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니 나머지 직장생활도 잘했을 거란 보장이 전혀 없다. 직장을 그만둔 것은 어쩌면.. 이 아니고 분명히 내 인생 신의 한 수였다.


휩쓸려서 떼거리를 만드는 능력도 제로, 비위 맞추고 로비하는 능력도 제로, 살아보니 나는 그냥 혼자서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제 잘난 맛으로 살아가야 하는 게 제격인, 그야말로 예술하기 좋은 아티스트가 딱인 사람인 것이다. 어떨 때 생각해 보면 직장 생활 17년도 오래 잘 버텼다 싶다. 물론 무조건 직장을 다니며 살아내야만 하는 처지였다면 어떻게 해서든 또 순응하며 잘 살아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몸과 마음은 다 썩어 들어갔겠지. 속으로.


주변에 오랜 직장 생활 끝에 아프고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들 보면 나처럼 직장생활 부적합자는 일찌감치 퇴직하고 프리랜서로 살아온 이 삶이 정말 잘했다 싶다. 분명히 나 같은 사람은 속으로 골병이 들대로 들어 긴 세월 지나지 않아 필시 큰 병을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법한 충분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기에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그저 좋다. 이런 환경이 만들어져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가끔씩 그러한 커다란 감사함 속에서 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가 가져야 할 필연적인 외로움과 치명적인 고독이 가끔씩 찾아올 때가 있다.


누군가 그랬다. 인간은 고독할 줄 모르는 데서부터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고. 코로나로 집에서만 생활하는 나날들이 예전보다 더욱 많아지면서 나는 더욱더 자발적인 고독에 처했다. 이제는 자식들도 다 성장해서 독립해서 나가거나 분가를 해서 나가니 물리적 환경마저 나의 홀로됨과 고독감을 확연히 부각해주는 나날들이다.


자식들보다 외려 모든 것들로부터 온전히 독립한 건 바로 나구나 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주어진 모든 시간을 나만을 위해서 충실하게 잘 쓰고 꾹꾹 눌러 담아 잘 채워나가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날은 문득문득 고독이 흘러넘쳐나기도 한다. 하루 종일 이러다 사람과 대화가 한 마디도 없는 날이 오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아치기도 한다. 이것은 자발적 고독을 넘어 고립감이 아닐까 의문해 보기도 한다. 고독은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고립은 안 되는 것이니 이 고독과 교류를 적절히 잘 섞어 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특히 더 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만족하게 잘 살아왔으니 다음 그 언제까지도 또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좀 계획을 세워 평생 음악을 함께하는 친구들을 만나고도 싶고 또 세상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 나의 것을 펼쳐서 나누고도 싶다.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세상에 나아가야 할지 고민의 밤들이 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성악교실을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