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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번여사 Feb 15. 2022

성악교실을 가다

오래된 도전, 노래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시도들 4

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 노래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성악을 전공하려고 준비를 하였던 건지 아니면 원래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스스로 연습해 온 결과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 잘은 모르겠다. 그 친구는 가곡을 자주 불렀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노래하다 보니 서서히 친구들 사이에서도,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노래 잘하는 친구로 알려지게 되었다.


어떤 선생님들은 그 친구의 노래를 종종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가끔 수업 시간에 불려 나와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친구의 노래보다도 나에게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친구는 노래를 부르기 전 항상 성악 발성으로 아아 소리를 내면서 목을 풀고 시작하는 것이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자기만을 집중하여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더라도, 자신의 노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묵직한 고요함 앞에서도 전혀 서두르는 기색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아아아 하면서 목을 푸는 모습이 나로서는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나같으면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카리스마 때문에 그 친구가 더 대단해 보였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목이 풀렸다 싶으면 다리를 살짝 벌리고 두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는 가슴과 배 사이 높이에서 맞잡은 손을 앞 뒤로 원을 그리듯 슬슬 리듬을 타면서 노래를 부른다. 눈을 지그시 감거나 살짝 뜨기를 반복하면서. 그 친구는 주로 비목이나 바위고개라든지 사랑 같은 우리나라의 가곡들을 불렀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눈과 귀가 그 친구를 향해 감동과 감탄으로 집중해서 감상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노래는 끝을 향해 가고 노래가 끝나면 모두들 힘껏 박수를 쳐주곤 했다. 그 분위기의 여운이 오랫동안 내게 남았다.


그 친구가 너무 부러워서 친구의 노래를 들은 날은 여지없이 하루 종일 그 가곡을 따라서 흥얼거리고 다녔다. 지금도 가끔씩 고속도로위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곡, 이은상 시에 홍난파 곡인 사랑을 그때의 기억과 함께 힘껏 부르곤 한다.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대 마소

타고 다시 타서

재될법은 하거니와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쓰일 곳이 없느니라


이런 가곡에 대한 로망과 사랑 때문에 나는 서울로 이사오자마자 제일 먼저 문화센터 성악교실의 문을 두드렸다. 성악은 쉽게 배울 수 있는 강좌가 아닌데도 운이 좋게 가까운 곳의 문화센터에 성악교실이 개설되어 있었다. 너무나 반가워 망설임 없이 바로 등록을 해서 한동안 성악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거기서도 나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치 자전거 수준이라면 잘 부르는 사람들의 소리는 기차나 탱크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이 떨어지며 의기소침해졌다. 애꿎은 타고난 나의 목 상태를 탓하면서 일 년을 못 채우고 그만두고 말았다.


그렇게 노래하는 인생은 나의 이번 생에는 없는 것인가 보다며 수십 년간 갈망해오던 꿈을 포기하고 다른 것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러다 나이 오십이 되던 해 하와이 음악을 알게 되고 우쿨렐레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지금까지 매일매일 하와이 노래를 부르는 삶을 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지역 예술가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이벤트가 있다 하여 참여를 하게 되었다.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짧은 뮤지컬 프로그램이었다. 한 여름밤의 꿈을 각색해서 무대에 올려 보는 걸로 되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서 노래하고 춤추자는 취지로 진행되었는데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하와이 노래 한 곡과 여행자 콘셉트의 성악 한 곡을 불러야 했다. 성악 발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렇지만 노래를 지도해 주러 온 성악가 선생님에게 좋은 조언을 들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노래하는 나의 삶에 커다란 도움이 되는 조언들이었다.


공연은 잘 진행되었고 나의 노래 인생에 뮤지컬이라는 또 다른 경험 하나를 더 쌓아 올렸다.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며 스스로에게 놀랐다. 판소리에, 남도 민요에, 성악까지 참으로 끊임없이 노래를 향한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었구나 싶고, 오랜 세월, 노래를 향한 식지 않는 열정을 보면서 내가 정말 노래를 많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고 지금의 내 노래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혀 보던 지난날들이 감사했고 끝까지 가지 못해 은근히 좌절하던 그때의 나에게도 괜찮다며 토닥여줄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이러니 인생에는 모든 것이 헛됨이 없다 하는 건 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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