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 2달러가 나를 뮤지션의 세계로 이끌었을지도

어쩌다 버스킹

by 멜레하니


때는 바야흐로 2017년. 나이가 오십이 넘어 난생처음 새로운 언어를 내 것으로 단 기간에 만들어 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부픈 꿈과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일 년간 세부와 밴쿠버 그리고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떠났었다. 이때의 고생들은 정말이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지경이라 아, 다시 생각하니 입에 단내 날려한다. 때마침 그 시절이 나의 피지컬 바디께선 갱년기의 터널로 질주하듯 이미 진입해 있는 상태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지라! 하아. 여러분은 다 큰 어른이 내 입 가지고 하고 싶은 말도 잘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속 시원히 말을 못 하는 그 심정을 아시는가? 이거 쌓이고 쌓이다 보면 은근히 미칠 지경이 된다.


멀쩡한 사람이 되어가지고 더군다나 나는 말 잘하고 스마트한 인간이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던 사람이 마치 바보가 된 것처럼 말을 잘 못하고 늘 어버버 하는 답답함을 거의 일 년간 남의 나라에서 겪어본 사람은 정말 징글징글 몸서리가 쳐질 것이다. 약간은 아니 상당히 많이 영어에 있어서 강박과 같은 경향을 가지고 있던 내 성향상 또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내 성향상 유독 영어울렁증이 심했다. 그래서 더욱 몸살을 많이 앓았던 것 같다. 그냥 틀리든지 말든지, 웃기든지 말든지, 그러든지 말든지 내뱉어버리면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폭발하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어쩌자고 문법에 그리 연연하며 문장 하나 단어 하나 틀릴까 봐 전전긍긍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 가련할 지경이다.


하여간 늘 어학연수 시절 이야기를 할라치면 이리 흥분 모드로 곧장 진입이다. 그 어학 연수중 밴쿠버에서 지낼 적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밴쿠버의 다운타운의 한 아파트에서 룸 하나를 렌트해서 살고 있었다. 그날도 저녁을 먹고 나서 괜스레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어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주로 공원을 산책하거나 거리를 걷곤 했는데 그날은 노래가 너무 부르고 싶어서 우쿨렐레를 메고 나갔다. 공원 같은 적당한 곳에 가서 슬슬 뚱땅거려볼 참이었다.


그러다 멀리 공원으로 가기 전에 눈에 띄는 장소를 발견했다. 내가 지내던 아파트 건너편에 YMCA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 담벼락에 걸쳐 앉아 연주하면 딱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거기에 자리를 잡고 우쿨렐레를 꺼내 들었다. 당연히 나는 그때 당시 나의 실력에 대해 미흡하다 못해 아주 미천한 실력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버스커로써 버스킹 한다는 개념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우쿨렐레를 꺼낸 뒤 가방은 YMCA 건물 담 벽에 세워두고 드르르르 우쿨렐레의 네 줄을 한번 훑어 내렸다.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지 기분이 금세 사르르 녹아내린다.


이 어학연수 기간에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하는 괴로움과 스트레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갱년기 시즌과 겹치면서 급기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공황장애 같은 증상까지 겪었던 그 일 년간의 기간 동안 아마도 우쿨렐레가 내 곁에 없었다면 나는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쿨렐레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참 좋다.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의 많은 악기 중 우쿨렐레가 내는 소리의 파동이나 파장이 사람의 심장을 가장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 중 으뜸이라고. 나도 내가 겪어본 걸 말한다면 우쿨렐레는 분명 치유의 파동을 일으키는 훌륭한 악기다. 이 악기는 정말 힘들거나 병든 사람을 위한 가장 좋은 치유의 악기가 될 것이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 맑고 청아한 소리, 때론 경쾌하고 쾌활하고 활발하고 상큼한 소리, 어떻게 이렇게 영롱한 소리가 날 수 있는 걸까 싶을 만큼 좋은 우쿨렐레의 소리는 아름답다. 여기서 분명 좋은 악기여야 한다. 싸구려 장난감 같은 거 말고.


하와이 음악을 시작해서 한국을 떠나오기 전 배웠던 노래는 채 열곡이 안되었다. 그래서 늘 부르고 또 불러 아주 익숙해진 멜레들이 몇 곡 있었다. 그중 조지 크루니가 나오는 영화 디센던트에 나왔던 히일라베라는 곡을 펼쳐 놓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주 쉬운 코드들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부르기 쉬워 내가 자주 부르는 곡이었기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불렀는데 몇몇의 지나가는 사람들이 좋은 소리다, 아름답다며 칭찬의 말들을 해주며 지나갔다.


그래서 기분이 아주 좋아진 나는 이젠 미소까지 지으며 노래를 계속 불렀다. 그때 저만치서 부부로 보이는 어떤 남녀가 내 앞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뒤 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내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손에 동전을 하나 쥐고서. 나는 계속해서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살짝 당황하는 듯 보였다. 버스킹 하는 사람들 앞에 당연히 펼쳐져 있어야 할 가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야 당연히 버스킹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방을 앞에 펼쳐 놓지 않았는데 나도 '내가 지금 버스킹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당황스러운 감정이 일었다. 그러자 그 부부는 내 뒤로 가더니 벽에 세워둔 나의 가방의 벌어진 틈새에다 동전을 쏙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활짝 미소 지으며 나에게 인사한 뒤 사라졌다.


이게 무슨 기분이지? 나는 얼떨떨해서 그때는 이게 무슨 일인지 감도 오지 않았었다.

그렇게 노래를 마치고 몇 곡 더 부른 뒤 기분이 맑고 상쾌해져 자리를 떴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열어 보니 2달러짜리 동전이 하나 들어있다. 하하하. 세상에나! 나, 오늘 버스킹을 한 거야? 내가 버스킹으로 돈을 번 거야?


캐나다 사람들이 길가의 버스커들에게나 또는 홈리스들에게 무척 친절한 행동을 하는 장면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어떤 일인지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세상에나 음악가라고도 할 수 없는 천상 애송이 음악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그때의 얼떨떨하면서도 상당히 기분이 좋았던 느낌은 지금도 전혀 퇴색되거나 바래지지 않는다. 하여간 예술가들에게나 음악가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그들의 모습, 감동적이었다.


그때 받은 2달러는 기념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기분 좋은 추억의 한 페이지로 두고두고 꺼내보게 되는 좋은 추억과 경험이 되었다. 어쩌면 전혀 의도치 않았던 그 우연한 버스킹의 경험으로 많이 힘들어서 헉헉거리던 그 시절에도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었지만 그 뒤 내 음악인생에는 더 커다란 시발점이 되어 준 계기가 되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 이런 삶도 재미있겠다. 계속하고 싶다라고.


그 열망이 자연스럽게 내 몸 어디에선가부터 샘솟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나는 어차피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세계 곳곳을 여행할 텐데 이 우쿨렐레와 함께 각 나라마다 버스킹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칠 때마다 기뻐서 날뛰고 싶을 지경이었다. 가슴이 설레고 흥분이 되고 너무 신이 나서 밤에 잠을 자려면 그런 모습들이 상상이 되면서 잠을 자기 싫어질 정도였다. 그러니 그때의 경험이 얼마나 나를 크게 자극했는지 알만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래하고 노래해야지라고 다짐하며 잠이 들곤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만 3년이 지나가며 나는 이제 남은 인생은 무조건 뮤지션으로 살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때때로 나는 왜 이렇게 돌고 돌아 이제야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을 찾은 것일까라고 생각을 하곤 한다. 많은 공연 무대들과 버스킹 무대 그리고 요즘은 곡을 만드는 작업까지 하고 있는 나는 어쩌다 벌어진 밴쿠버에서의 그 경험이 얼마나 지금의 나의 인생에 큰 거름이 되어주었는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이러니 아주 작은 선행이라도 베풀고 또 베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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