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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번여사 Mar 08. 2022

임계치, 어느 날 갑자기가 주는 짜릿한 즐거움

죽도록 안되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될 때



악기를 배운다는 것, 이것 참... 나로서는 할 말이 많은 스토리 중 하나다.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했지만 피아노를 비롯한 그 어떤 악기도 학원을 다니며 배울 수가 없었다. 대신 덕분에 유년 시절을 밖에서 뛰어논 시간으로 친다면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뒤질 리 만무하고 아마도 올림픽 출전 감일 것이다. 그만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행운은 부여받았다. 이 점이 살아보니 또 한편으론 큰 이득이었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


그러다 대학 들어가서 아동음악 교육이라는 전공과목에서 피아노 실기 시험이 들어 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피아노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 운 좋게 다가와 주었다. 참으로 늦은 출발인 듯했어도 그래도 기분이 참 좋았다. 학교 뒷문에서 가까운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하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원을 오래 다니지는 못했다. 늘 하루 천 원, 이천 원 용돈 받아 생활하던, 여전히 가난한 집의 대학생 시절이었기 때문에 바이엘을 두 달 만에 완성하고 그 뒤로 그만뒀다. 그것이 내가 배운 악기 수업의 전부였다. 그런 사람이 나이 오십이 넘어 악기를 다루려니 안 봐도 비디오다.


하와이 노래 수업에서 한 곡 한 곡 노래를 배워 나가며 나는 매번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얄궂은 갱년기의 터널에 들어서면서 함께 시작했던 터라 정말이지 나는 남들보다 아주 어려운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주장을 마치 어린아이들이 틈만 나면 옳다고나 하면서 어린양 부리듯 나도 한 번씩 해보고 싶어 진다. 그런 어려움과 난관들 또는 고난 따위들이 내 눈앞에 장대히 펼쳐질 줄은 그전에 악기를 오랫동안 배워 본 적도 없고, 물론 갱년기도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몰랐었다.


이 우쿨렐레라는 악기는 참으로 배신감스러운 악기 중 일등을 뽑으라면 당당히 후보에 오를 것이다. 처음 접하는 악기로는 너무 쉬어서 진입 장벽이 정말 낮다. 코드 몇 개만 짚으면 아름다운 소리가 그것도 사람을 사르르 녹이는,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아주 잘하는 것 같고, 금방 모든 걸 다 해낼 것 같고, 다분히 소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드디어 정말 쉽고, 가볍고, 좋은 악기를 만났구나. 이제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르며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겠구나'와 같은, 엄청난 희망을 싹트게 해 준다.


더군다나 퇴직하고 시작한 만큼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는 악기를 아주 좋은 악기로 시작했다. 그러니 엉성한 손으로 대충 코드만 잡아도 끝내주게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니 그냥 황홀하고 자신감 뿜 뿜 일 수밖에. 또한 생계를 위해 많은 시간을 내주어야 하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시간 부자니 오로지 연습을 위해 많은 시간을 쓸 수가 있는,  이렇게 처음엔 나이가 들어 악기를 시작한 유리한 점도 많았다. 그래 연습하면 되지 않겠어!라는 일념으로 연습하고 또 하고 죽자 사자 하는 거지 뭐.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다른 모든 악기도 그런 지 잘 모르겠으나 이 우쿨렐레는 가면 갈수록, 실력이 늘면 늘수록 곡을 풍부하게 표현해 내기가 아주 어려운 악기였다. 단순한 악기인 만큼 처음은 쉬웠으나 갈수록 어려울 수밖에 없는 태생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만큼 화려한 악기 연주가 들어가 줘야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면할 텐데 나이 오십이 넘어 시작한 몸, 굳을 대로 굳어 있고... 불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고단한 우쿨렐레와의 삶. 이 우쿨렐레를 연습하다 신기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지독히도 안 되고 안되던 것이 하고 또 하고를 수십 번 아니 수천번은 글쎄 수만 번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게 치고 또 치고를 우직하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어! 이거 분명 어제는 못하던 건데 이게 되네' 하는 그런 순간을 여러 차례 만났다.


그리도 빨리 안 짚어지던 왼 손이 저절로 움직이며 일찌감치 가서 짚고 있고, 분명 굳어 있기가 통나무 장작 같은 손이었는데 말이다. 어느 날부턴가 흐물흐물 엿가락처럼 유순해지기 시작하더니 힘을 그리 많이 주지 않아도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오른쪽 상황도 마찬가지다. 몇 번 휘두르지 않아 금세 팔 아파, 어깨 아파하던 팔도 어느 날부턴가 미동도 없이 자리를 잡고 나비가 날갯짓하듯 가볍게 팔랑거리며 연주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온몸에 힘이 들어갈 대로 들어가 매일 피로에 찌들어 잠들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피로도가 확연히 줄어드는 마법 같은 때가 온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오면서 나는 임계치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죽도록 안 되는 것 같아 정말 좌절스럽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러든지 말든지 하면서 악기를 들고 연습을 하고 또 하고, 계속하다 보면 진짜 신기하게 어느 날 갑자기 될 때가 있다. 그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짜릿한 쾌감. 이것을 맛볼 때마다 정말 뿌듯해서 나 자신이 그렇게 기특하고 예쁠 수가 없다.  


임계치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포기해버렸을 경우들이 살면서 얼마나 많았을까?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그래도 괜찮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인생 뭐 있나? 놀면서 쉽게 가자"라고 생각하며 살던 때도 있었다. 무용함을 시처럼 읊조리며 살겠다면서 쉽게 편하게를 모토로 살던 그때도 물론 좋았다. 의미도 있었지만, 자신이 행복해하는 무언가를 위해서라면 참으로 기나긴 어려움의 길이라 해도 도전하자, 도전해서 임계치의 그 순간을 맛보자라고 이제는 말하고 싶다. 어렵고 힘든 만큼 그럼 그만큼 시간을 더 갖다 바치지 뭐 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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