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전, 노래를 향한 끊임없는 시도들2
대학생이 되었을 때의 기분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시 생각해도 참 기쁘다. 세상을 다 가진 듯했고, 이십여 년의 인생을 살며 그렇게 기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기뻐했다. 그렇게 부픈 가슴을 안고 대학에 들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면 내가 무언가 준비가 많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은데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려고 죽자 사자 공부한 것 말고는 악기를 배워 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노래를 배워본 적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노래하는 것만 좋아서 늘 흥얼거리고 혼자서 노래 부르는 게 전부였다. 노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높았을까?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항상 하늘만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나와 같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고 그들과 모여서 함께 노래하고 싶었다. 그리고는 강변가요제나 대학 가요제에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대학생이 된 그때의 나의 꿈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대학에 들어갔던 그즈음 부산 지역은 대학가요제의 열풍이 불어 있던 때였다. 왜냐하면 그도 그럴 것이 많은 대학가요제의 대상 수상자들이 부산지역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1978년 대학가요제 제2회 대상 수상은 부산대학교가, 1985년 대상 수상 부산 동의대, 87년 대상 부산외국어대, 89년 대상 부산 경성대, 91년 대상 부산 동의대!
부산에 있는 웬만한 대학들은 모조리 대학가요제에 출전해서 대상을 받아온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대학에 들어간다면 대학가요제에는 나가는 것은 어쩌면 대학생이 된 자의 특권이요 당연한 수순처럼 여겼던 것 같다. 너무나 좋아 보이고 멋져 보이고 더군다나 나는 노래하는 걸 많이 좋아하니까 당연히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을 것을 향해 불도저처럼 질주하는, 어쩌면 무모하고 어쩌면 열정적인 성정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화창한 봄날, 떨리는 마음으로 대학가요제 금상 수상의 영예로운 서클이라는 엄청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던 그 동아리에 오디션을 보러 갔다. 먼저 도착해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저만치서 웬 남자와 여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앗! 그런데 그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데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심사를 보러 온 남자의 여자 친구라는 사람이 나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을 했던 친구가 아닌가!
공교롭게도 친하지도 않았던 사이인 데다 나를 심사할 사람의 팔짱을 끼고 오빠 오빠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데... 노래가 너무너무 부르기 싫어졌다. 부끄러움인지 뭐닞 모를 이상한 감정이 솟구쳤다. '아, 이거 참.. 저 애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해, 말아야 해?' 괜스레 나를 심사할 선배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 그 친구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감정이 다 드러나는 얼굴과 숨기지 못한 뻘쭘한 목소리로 나는 보란 듯이 씩씩한 척 성의 없이 노래를 불렀다. 심사온 선배는 잘 들었다는 형식적인 인사와 나중에 연락드리겠다는 더더욱 형식적인 멘트를 날리고 뒤돌아서 갔다. 당연히 합격에 대한 기대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떨어졌다. 그 뒤론 두 번 다시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