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가모모씨 Nov 29. 2021

[학관] | 묘한 대학생활

57년 된 학관을 허물고 새로 짓는다고 한다.

오늘은 하늘이 맑습니다. 날도  따듯해졌지요. 아직 잔디가 돋기엔 날이 차지만, 볕이 나지막이 내려앉아 낮에는 기분이 나름 좋아지는 날씨입니다. 저는 넓게 드리워진 잔디밭에서 추위가  가셨을 때의 따뜻함을 만끽하며 한동안 보이지 않던 인간들이 붐비는 공간을 바라봅니다. 저렇게 바글대는  보니 오늘은  특별한 날인  같아요.


" 도대체 2층이 어디야? "

" 몰라. 대체 1층에서 계단을 올라갔는데 3층이 나오는 이유는 뭔데?"

" 아니, 첫 수업부터 지각하겠어."


처음 건물에 발을 디딘 인간은 특이한 건물 구조 때문에 당황하기 십상이죠. 분명 1층에서 계단을 올라갔는데 2층이 나오기도 하고, 또 분명 높이상 같은 층인데 어떤 문을 통과하면 1층에서 3층이 이어지기도 하거든요. 근데 또 어떤 구간에서는 2층이 나오고요. 무슨 판타지 소설이냐고요? 해리포터 같은 거냐고요? 놀랍게도 이곳은 현실에 있는 곳이랍니다. 빗자루를 타고 다니거나 지팡이를 들고 다니거나 주문을 외우고 다니지는 않지만요.


" 근데 요즘 이런 건물이 있구나. 너무 낡지 않았어? "


어떤 이는 오래된 건물이 주는 눅눅한 느낌에 첫인상이 흐려지는 사람도 보입니다. 여길 4년이나 다녀야 한다고? 하는 표정이지만 저들도 곧 이곳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겠죠.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눈치 빠른 분들은 벌써 이곳이 어딘지 알 것 같다고요?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알겠다고요? 네, 맞아요. 여긴 대학교라는 곳입니다. 인간들이 엄청 바글바글 많아요. 여긴 특히 인간 암컷들의 비율이 과하게 넘쳐난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인간 암컷들은 유독 저를 좋아하니까 저도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어떤 이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건물을 둘러보고, 어떤 이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통로로 활용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길을 못 찾아서 울상입니다. 물론 길을 못 찾는 초보자들을 보면서 슬며시 웃음 짓는 레벨 높은 인간들의 모습도 볼 수 있어요.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오늘뿐이랍니다. 올해 첫 수업인지 뭔지가 있는 날이니까요.


저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의 느낌이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날씨가 풀릴 듯 말 듯 봄을 기다리는 이맘때였던 것 같아요. 저도 처음부터 여기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여기에서 훨씬 훨씬 멀리 떨어진 주택가에 살고 있었어요. 언덕이 많고 길이 좁아서 저 같은 유목민 생활을 하는 고양이에겐 안성맞춤인 곳이었죠. 매일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하는 것을 빼고는요.


그곳은 정말 치열한 곳이었습니다. 매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도 못 찾는 일이 다반사고, 길에 나동그라진 날카로운 쓰레기들에 몸이 베이기도 하고, 인간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라는 괴물이 급습할 때도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또 얼마나 성미가 고약한지요. 더럽고 싫다고 외면해버리는 인간은 양반입니다. 눈이 너무 기분 나쁘다며 돌멩이나 유리병을 던지며 쫓아내는 인간들도 득실거렸으니까요. 게다가 경쟁자는 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굶주린 고양이 수십 마리가 서열싸움을 하는, 말 그대로 전쟁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다른 고양이에 비해 몸집이 작았지만 성질 머리 하나는 고약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저는 그 지역 서열 1위에게 이미 눈 밖에 난 상황이었어요. 먹을만한 음식을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나마 먹을 것을 찾더라도 금세 몸집이 큰 고양이들에게 빼앗기고 괴롭힘을 당하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날도 겨우겨우 먹을 만한 것을 찾아 입을 데려는 순간 그놈이 나타났어요.


< 야, 그거 작은 너한테는 좀 크지 않냐? >

< 아 왜 또 시비야. 꺼져. >

< 너는 맞는 게 취미냐? 좀 고분고분하게 주면 안 맞아도 될 걸 꼭 맞고 주더라. >

< 넌 안 그래도 많이 먹잖아. 그 뱃살 봐라. 하도 많이 먹어서 땅에 닿겠다. >


이 동네에서 서열 1위라는 그는 뱃살만 많은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덩치가 크고 딱 봐도 못되게 생긴 고양이였습니다.


< 아오, 이게. 진짜 죽을래? >


그의 앞 발이 확 제 머리를 갈겼지요. 몸집이 작은 저는 살짝 맞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핑 돌았습니다.


< 아, 그만하라고 좀! >


등을 최대한 위로 끌어올려 하악 거리며 노려봤는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다시 다른 발로 저를 쳐내었죠. 그날은 하루를 쫄쫄 굶은 데다가 저녁에 비도 부슬부슬 내려서 컨디션도 참 좋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결국 유명한 제 성질머리가 이성을 앞질렀습니다. 발톱을 세워서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휘갈겼지요. 지금까지는 장난 어리 눈빛이었던 그가 그 이후로는 눈빛이 돌변했습니다.


< 이게 진짜 내가 너랑 말 좀 섞는다고 같은 급으로 보이냐? >


그가 앞발을 휘둘러 저를 쳐내는 순간, 제 몸이 둥실 떠올라서 바닥에 처박혔어요.


< 악! >


그는 쉬지 않고 발톱을 내세우고 이빨을 드러내며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지요. 무차별적인 공격이었습니다.


< 내가 너랑 입씨름하는 건 그냥 심심해서야. 니 년이랑 동급이라서 이렇게 말 섞어주는 게 아니라고 이 미친 고양이야. 어딜 감히 발톱을 세워 세우길! >


그날은 그도 기분이 유난히 좋지 않았나 봐요. 평소보다 그의 분노는 거세고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귀와 옆구리가 긁히고 물려 피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저기 저 큰 고양이가 작은 고양이 괴롭혀.”

“아휴, 고양이 울음소리 시끄러워. 여기는 뭔 길고양이가 이렇게 많은지 쯧쯧. 보지 말고 빨리 가. 재수 없어, 정말.”


하는 인간들의 목소리도 스쳐 지나갔어요. 그와 이런 마찰은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건 그날이 처음이었죠. 그날은 그도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온 몸이 젖기도 했지만, 어두컴컴한 날씨가 기분마저 물들였으니까요.


정신이 혼미해지려고 하자 저는 그를 피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어요. 그도 미친 듯이 저를 쫓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을 따라 잡혀 다시 맞다가 또 도망치기를 여러 번. 어느 높고 붉은 담벼락 밑에 제 몸이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의 구멍을 통과하고 나서야 그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저는 그제야 살았다는 생각에 크게 숨을 내쉴 수 있었지요.


< 너 하여간 내 눈에 한 번만 더 띄어. >


그 작은 구멍에 자신의 몸이 통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분에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숨을 채 다듬지 못하고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계속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또 시멘트 길을 내려가기도 하고, 나무 밑에 깔린 잔디밭을 지나온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저는 낯선 이곳에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이 대학교라고 불리는 곳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희한하게도 인간 암컷들만 이 대학교라는 곳을 쓴대요. 제가 있는 곳은 대학교 안에서도 가장 낡은 학관이란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그 당시의 저에겐 그저 낯설고 무서운 곳이었어요. 그나마 좋은 점이라면 숨을 나무가 많다는 것이랄까요?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너무나 지쳐 있던 저는 다른 고양이나 다른 동물들의 눈을 피해 잎이 풍성한 나무의 밑에서 몸을 뉘었습니다. 그렇게 제 대학생활의 첫날밤이 지나갔어요.




다음날 해가 밝자 저는 그제야 학관을 처음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첫인상은 음산하달까요? 건물 겉은 특징이 없고 여기저기 헤져서 상처 투성이었어요. 봄이라 밖은 찬란한 녹색 빛이 가득한데도 건물 안은 찬 기운이 돌았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어요. 보잘것없는 당시의 제 모습과 같아 보였거든요. 그 낡은 건물은 마치 저에게 그렇게 보잘것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죠. 그렇게 저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습니다.


제가 사는 사회에서 인간이란 쓸모없고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화가 나면 발길질을 하거나 살묘(殺猫)도 서슴지 않죠. 그들이 사는 동네는 더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이 버린 음식을 먹고 탈이 나거나 죽는 경우는 흔하디 흔한 일이죠. 그들의 손에 길러지다가 길에 버려지는 고아 냥이들은 쉽게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어쩌다 만난 좋은 인간들은 밥을 주거나 치료를 해주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가 흔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학관에 처음 당도했을 때 저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암컷 인간들이 득실대는 이곳에서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으니까요. 한 며칠은 그늘 속을 숨어 다녔어요. 문제는 이곳은 길거리에 버려진 음식량이 너무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자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봄이라고 제가 얘길 했던가요? 여기 인간 암컷들은 신기하게 다른 동물들처럼 잔디밭에 철퍽철퍽 앉아서 봄기운을 느끼곤 합니다. 한 손에는 먹을 것을 들고요. 밖의 다른 인간들이랑은 좀 느낌이 다르죠. 그날도 그랬습니다. 숨어있던 제가 밖으로 나가자 잔디밭이며 의자에는 인간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오른 앞발로 음식을 먹으며 재잘재잘 거리고 있었어요. 그때 저는 생각했죠.


‘여기서 굶어 죽느니 맞아 죽는 게 낫겠다.’


저는 개중에 가장 착해 보이는 인간한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 야 맛있냐? 나 그거 한 입만 주라. >

“꺄아아 얘 뭐야? 너무 귀엽잖아.”


대뜸 높은 목소리에 흠칫 놀라 공격하는 줄 알고 몸을 힘껏 부풀리고 털을 세웠어요.


< 에이씨, 너 나 공격하면, 나도 가만 안 있어. >


그러자 갑자기 암컷 여자가 목소리 톤을 낮추었습니다.


“미안, 소리 질러서 놀랐지? 왜 이렇게 말랐어~ 먹을 것 좀 줄까?”

“그거 고양이 줘도 돼?”

“보니까 며칠 굶은 거 같은데 차라리 좀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양념된 데 말고 빵만 좀 떼어 주지 뭐.”


여자는 자기가 먹던 것을 조금 떼어서 저한테 던져주었어요. 협박이 통했나 봅니다. 착한 인간 암컷은 제가 먹는 걸 기다렸다가 다 먹고 나면 다시 먹을 걸 나눠 주고, 또 나눠주고 했어요.


“와, 귀엽다.”

“어디서 왔지? 못 보던 앤데.”


배가 고파 인간이 던져준 것을 허겁지겁 먹고는 정신을 차리자 제 주변에 인간들이 모여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뭐지? 쫓아내려는 건가?


- 찰칵찰칵


몇몇 인간들 손에는 왠 정체 모를 판때기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죠. 제가 긴장하며 몸을 말자 몇몇 인간들은 또 저에게 자신이 먹던 걸 나눠주었습니다. 제가 그걸 또 조심스레 먹고 있을 때였어요.


“쟤 많이 다친 것 같은데?”

“어떻게 데려가서 치료받게 할 수 없나?”


어떤 인간이 저한테 손을 뻗어왔어요. 저는 긴장해서 다시 하악 거리며 몸을 둥글게 말았지요.


“아서라, 더러워.”


여자가 손을 거두자마자 저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을 뒤로하고 저는 뛰어나갔지요.


“어? 간다.”

“잘 가~ 다치지 말고.”


인간은 앞발을 흔들어 보였는데 그것은 참 기괴한 몸짓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학관에 당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암컷들의 눈에 띄었어요. 그러곤 유명묘가 되어 있었어요. 어디에서든 인간들은 제 얘기를 한대요. 제가 인간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묘상(猫相)을 가졌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굶지 않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몇몇 인간 암컷들은 저에게 무슨 상자와 천 쪼가리, 그 외 푹신한 것들을 가져다주었는데 썩 마음에 들어 저도 그곳을 제 터로 삼았지요.

처음에 두려움에 떨던 저도 학관의 삶에 익숙해지면서 몇 가지 생활 수칙을 정할 수 있었어요.


1. 인간 암컷은 먹을 걸 주기 전에 높은 음으로 소리를 지른다. 그들이 소리를 지른다면 기다려라.

2. 먼 거리에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웃는 인간은 나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중 무언갈 먹는 인간이 있다면 먼저 가서 몸을 비벼라. 먹을 걸 나눠 주는 경우가 많다.

3. 인간이 이상한 소리가 나는 판때기를 들고 오면 나에게 호의적인 것이다. (그런다고 매번 먹을 걸 주진 않는다)

4. 나와 눈을 마주치고 찌푸리는 인간에겐 다가가지 않는다.

5. 자주 오는 인간이 주는 건 먹어도 배가 안 아프다. 그들이 주는 건 심지어 맛있다.


얼마 전에 수칙이 두 개 더 생겼는데 그것은 제가 인간이 소리를 지르며 준 음식을 먹고 탈이 났기 때문입니다.


6. 빨간색은 먹지 말아라. 배가 아프다.

7. 하얀 액체는 먹지 말아라. 배가 아프다.


빨간 건 먹을 때 혀가 아파서 많이 먹지 않았지만 하얀 액체를 먹은 날은 정말 힘들었지요.


“어머, 너 배고파? 우유 좀 줄까?”


하며 다가온 그녀는 작은 컵에 하얀 액체를 부어주었지요. 맛있어서 할짝할짝 먹고 있는데 뒤에서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가끔 저한테 맛있는 걸 주는 인간이었지요.


“어머, 고양이 우유 주시면 안 되는데.. 그거 락토프리 우유 아니죠?”

“그래요? 어머 몰랐어요.”

“야옹아, 그거 그만 먹고 요거 먹자.”


그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캔음식이었죠. 제가 먹는 틈을 타 그녀는 그 하얀 액체를 버려버렸어요.


“아, 배탈 나면 어쩌지?”

“아, 고양이는 다 우유 먹는 거 아녜요?”

“그렇게 알고 계시는 분 많은데 락토프리 우유 아니면 장이 약해서 배탈 날 수 있거든요.”

“어머, 죄송해요.”

“저한테 죄송할 건 아니고요. 모르고 그러신 거니까.”


그날 저는 화장실을 여러 번 갔습니다. 그 뒤로 하얀 액체는 먹지 않지요.




“너 이 고양이 알아?”

“이 고양이 뭔데?”

“요즘 학교 커뮤니티에서 난리야. 학관에 사는 고양이래.”

“이런 고양이가 있었어?”

“포관 고양이보다 요즘은 학관 고양이가 떠오른다고.”

“귀엽게 생겼다~”


인간들 말을 좀 알아듣게 되면서 저는 제 칭찬은 아주 잘 캐치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들 사이에선 딱히 눈에 띄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인간들 사이에 오니 마치 제가 특별해진 느낌이었지요. 저런 얘길 들을 때마다 애꿎은 궁둥이를 더 추켜올리며 예쁘게 걷게 된답니다. 저를 좋아하는 인간과 싫어하는 인간, 심지어 무서워하는 인간을 구분할 줄도 알게 되었지요. 아니, 싫은 것까지는 그럴 수 있는데 무서워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아요. 덩치가 빌딩만큼 큰 데도 멀리서 저를 보며 바들바들 떠는 게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거든요.


“야~ 만지지 마~ 더럽잖아~”

“아오, 재수 없어. 저리 가!”

“악~~~ 오지 마, 오지 마!!!!”


한동안 저를 좋아하는 인간도 소리를 지르고 싫어하는 인간도 소리를 지르고 무서워하는 인간도 소리를 질러서 참 분간이 안되어 힘들었는데, 이제는 제법 인간들과 친밀해진 것 같아요. 대학교 생활에 익숙해진 만큼 몸도 회복하다 못해 튼튼해졌지요. 저의 인기 덕에 제 묘생(猫生)에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윤기 나는 털을 가질 수 있었답니다.


그날은 유독 인간들은 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그즈음에는 뭔가 인간 냄새가 더 심해진 것 같았습니다. 인간들은 저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다가오지 않고 앉았습니다. 대신에 한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를 들지 않았어요. 무언가를 계속 쳐다보고 손만 바삐 움직였지요. 길을 걷는 인간들도 바쁘게 앞만 보고 걸어갔습니다. 내 인기가 식은 건가? 싶은 생각에 좀 서운하기도 했지요. 그날따라 모험심이 동한 건 그래서였을 거예요. 챙겨주는 인간이 없으니 배도 고프고 심심했지요. 학관은 높지 않은 언덕 비탈길에 세워졌어요. 저는 그때까지는 한 번도 그 언덕 너머를 가본 적은 없었죠. 갈 필요도 없이 즐거운 나날이었으니까요. 평소에 많은 인간들 사이에서 배부르게 지내다가 아무도 나를 찾지 않게 되자 문득 심심했고, 문득 외로워졌어요. 그때 제 눈에 바로 그 언덕이 보였던 거죠.


‘저 너머엔 뭐가 있는 거지?’


사실 길에서 생활하던 시절에 비하면 모험이라 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거리였지만, 제 구역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는 저에겐 큰 도전 같은 거였어요. 저는 잽싸게 달려 학관의 언덕에 올라가 봤습니다. 그곳은 별세계 같은 곳이었어요. 같은 동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으리으리한 통유리의 건물이 나를 맞아주었지요. 뭔가 걸어 다니는 인간들도 좀 더 여유로워 보였던 건 제 착각이었을까요?


< 너 뭐야? 여긴 내 구역인데. >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오랜만에 선명히 듣는 고양이 말이었거든요. 그렇지만 낯선 수컷 고양이의 등장에 저도 살짝 긴장했지요. 고양이는 본래가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존재지만, 남자 고양이는 힘까지 세어서 작은 몸집의 저로서는 살짝 긴장이 돌 수밖에 없었지요.


< 미안, 어쩌다 보니 지나가게 되어서. 여기가 네 구역인지는 몰랐어. >


예의를 갖춰 말하자 그는 으쓱해 보였습니다.


< 너도 이 대학교에 살아? >

< 응 이 언덕 밑이야. >

< 아~ 학관에 왔다는 새로운 고양이가 너구나. 생각보다 어리네? >

< 이봐, 어린 게 아니라 작은 거야. >


발끈하자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어 보였습니다.


< 쪼끄만 게 자존심은 있네. 어쨌든 이 동네에 살면 남의 구역에 들어올 땐 조심하는 게 여러모로 좋아. 인간들이 몰리면 먹이 컨트롤도 인간 컨트롤도 어려우니까. 뭐 저들이 우리 둘이 같이 있는데 먹을 걸 덜 주지는 않지만. >

< 그치만 오늘은 인간들도 조용한 걸. >

< 시험기간이라 그래. >

< 그게 뭔데? >

< 인간들이 책에 코 박고 다른 건 쳐다도 안 보는 때가 있어. 밥도 안 먹고 심지어 잠도 안 자. >

< 왜 그러는데? 아픈 건가? >

< 아픈 건 아니고 그래야 교수가 잘 봐준대. >

< 왜 잘 보여야 하는데? >

< 나도 몰라. >

< 교수가 누군데? >

< 나도 모른다니까, 아 쪼끄만 게 궁금한 건 되게 많네. >


말은 툴툴거려도 나를 무시하거나 협박하지는 않는 걸 보니 나쁜 고양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 너는 여기 언제 왔어? >

< 야, 너라니. 나보다 몇 개월은 고사하고 몇 년은 어릴 것 같구만. >

< 뭐? 개월? 년? 고양이가 뭘 그런 걸 따져. 힘만 세면 장땡이지. >

< 그래서 힘은 세고? >


치사스럽지만 아무리 봐도 저쪽이 힘은 나보다 월등히 셀 것 같네요.


< 에씨, 되게 치사스럽네. 어쨌든 여기 건물은 되게 좋다~ 어떻게 생겼는지 봤으니까 됐어. 난 돌아간다. >

< 야, 그러지 말고 어제 인간이 준 엄청난 간식 있는데 너도 좀 먹고 가. 그래야 빨리 크지. >

< 엄청난 간식? >

< 어, 이리 따라와. 우리 집도 보여줄 테니까. >


그는 나보다 두 계절 일찍 이곳에 왔다고 했습니다. 그도 여기서는 인간들에게 인기가 많은 고양이어서 여기서는 먹고 살 걱정은 안 하고 산다고 합니다. 제가 새로 들어온 것도 인간들한테 들어서 알았다고 했어요. 이 근처에 오래 산 만큼 인간어에 익숙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 여기가 우리 집이야. >


그건 상자를 개조해서 만든 것으로 절대 고양이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어요. 인간 손에서 자란다는 고양이들의 상징인 쇠밥그릇과 가득 찬 사료. 게다가 푹신하고 따뜻한 걸로 가득 찬 튼튼한 상자가 제 눈을 사로잡았어요. 저보다 훨씬 오래 있었다는 게 그의 집에서 느껴졌죠.


< 집 진짜 좋다. >

< 그치? 이 정도면 인간 손에 길러지는 거나 다름이 없는 삶이지. 기다려봐 간식 줄테니까. >


그는 이상하게 길쭉한 막대기를 가져왔어요. 누군가 끝을 살짝 뜯고 갔는데 거기서는 이미 미친 듯이 맛있는 생선 냄새가 흘러나왔죠. 제가 맡아본 어떤 음식에서보다 강하고 맛있는 냄새였어요.


< 이 뜯어놓은 끝에 주둥이 대고 있어봐. >


내가 주둥이를 가져다 대자, 그는 앞발로 그 막대기를 밟았습니다. 그 덕에 뭔가 알 수 없는 음식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고 저는 본능적으로 혀를 할짝였죠. 그 맛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강하고 신선하고 촉촉한 그 생선의 향. 지금까지 이런 걸 모르고 산 제 삶이 우울하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 이거 뭐야? >

< 너 진짜 새로 왔다고 해서 주는 거야. 이거 진짜 남한텐 절대 안주는 거라고. 너도 나중에 인간들이 이런 거 주면 배가 터질 것 같아도 받아먹어야 돼. >

< 이거 뭐냐니까? >

< 몰라~ 인간들이 가져오는 거니까. 어쨌든 진짜 귀한 거야. 길에서는 절대 못 먹는다. >

< 와, 진짜. 천상의 맛이다. >

< 그치? >


처음으로 그가 멋있어 보이는 순간이었죠. ‘그래, 네가 이 구역 대빵 하세요, 저는 무조건 지지합니다’ 소리가 목구멍을 뚫고 나올뻔한 맛이었습니다.


< 너 앞으로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다 알려줄 테니까. >


엣헴, 하고 폼을 잡는 게 무척이나 우스웠지만, 굳이 입밖에 내어 말하진 않았습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는 나보다 이곳에 먼저 온 고양이인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곧 그가 사는 그 으리으리한 건물은 포스코관이고 그 고양이는 “포관 고양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어차피 우리들이야 굳이 이름을 붙여 말하진 않으니 인간들이 지은 이름이 전부긴 하지요. 포관 고양이는 정말 이 학교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의 집을 자주 들락거렸고, 그도 때때로 학관의 우리 집에 오기도 했지요.


“꺄악-“

“학관 고양이랑 포관 고양이랑 인사했어.”

“뭐야? 둘이 언제 친구 됐어?”


한 번은 제가 낮에 포관에 놀러 갔다가 정말 낭패를 보았습니다. 인간들의 높은 고함소리하며, 둘이 먹어도 배가 아플 만큼 많은 음식들 하며,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간의 수까지. 포관 고양이의 말대로 아주 낭패였지요. 그 뒤로 우리는 인간들이 잘 다니지 않는 밤에만 만나곤 했습니다. 그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나 꼭 먹어야 할 음식, 인간의 언어나 몸짓, 계절별 인간의 기분 같은, 지금까지의 수많은 연구 결과를 들려주었고 그것은 아주 유용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서로 먹을 것을 나눠 먹고는 했지요. 그렇게 우리는 친한 친구와 가족, 그 사이의 어떤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즈음입니다. 나에게는 일 년에 세 번 정도  찾아오는 고통의 시간이 있습니다. 배가 뒤집어 질듯 아프고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울게 되는 계절이죠. 기분도 매우 날카로워지고, 무척이나 다른 고양이가 그리워지는 시기입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암컷 고양이들이 그렇다는 것은 길 생활만 해도 너무 잘 알 수 있지요. 그리고 우리는 수컷 고양이를 만나 새끼를 가집니다. 수컷 고양이를 만나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우리의 고통은 그만큼 길어지지요. 사실 저는 그렇게 몇 번은 새끼를 낳아 길러 온 엄마 고양이였습니다.


저는 이미 알고 있었지요. 올해는 포관 고양이가 새끼들의 아빠가 될 거라는 것을요. 고통의 시간이 찾아오기 전부터 이미 그를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올해는 고통의 시간이 매우 짧았답니다. 만약 길고양이였다면 저처럼 작은 고양이가 이리 크고 잘생긴 고양이를 만나긴 어려웠을 거예요. 사실 포관만 벗어나면 그는 얼마든지 다른 고양이를 만날 수 있었을 거예요. 그치만 나의 예상대로 우리에게는 새로운 자식 무리가 찾아왔습니다. 배가 불러오자 포관 고양이는 아주 난리가 났었답니다. 내가 어쩌다 저런 조그마한 못난이한테 눈이 멀어서 구시렁거리면서도 여기저기서 먹을 것을 모아 오고, 저를 그루밍을 시키고, 지극 정성이었지요. 그는 내 작은 몸에서 새끼들이 나온다는 게 걱정인 것 같았습니다. 내가 몇 번이고 새끼를 잘 낳아왔노라고 얘기를 해도 들어먹지를 않고는 나를 닮아 몸집이 크면 어쩌냐는 걱정을 늘어놓아서 결국 몇 번은 제가 짜증을 냈지요. 계절이 바뀌고 날씨에 더운 기운이 가시기 시작하자, 나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세 마리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포관 고양이요? 아휴, 무슨 지가 새끼를 낳는 마냥 왜 그렇게 시끄러운지 알 수가 없어요.


나의 출산소식은 인간들에게도 퍼져나갔습니다. 그들은 어찌 알았는지 포관 고양이가 아빠인 것도 아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들은 더 자주 우리를 보러 왔고 더 크게 소리를 질러서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많은 음식을 건네주고 가고는 해서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아기들은 참 빨리 자라요. 겨울이 성큼 다가오면서 아이들은 이제 혼자서도 여기저기 잘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와 포관 고양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여념이 없었지요. 포관 고양이는 이 대학 생활에는 익숙했지만 아이 기르는 데는 좀 서툴렀습니다.


“인간은 화가 날 때나 좋을 때나 소리를 지른단다. 그걸 잘 구분할 줄 알아야 돼.”

“어떻게요?”

“좋으면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고 화가 나면 눈썹 끝이 위로 올라간단다.”

“오, 맞아요, 맞아. 얼마 전에 놀러 온 인간도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더니 긴 막대에 든 먹을 걸 줬어요”


똘똘한 둘째는 신이 나서 대답합니다. 사실 태어날 때부터 인간들의 사랑을 받아온 아이들이라 인간의 습성을 본능적으로 아는 아이들이지요. 포관 고양이는 학교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친다며 인간의 습성을 아이들한테 알려주고는 하는데 저는 사실 그게 마뜩잖습니다. 학교 안에서 계속 살 수 있다면 유용한 정보겠지만, 학교 밖에서 살아본 저는 알지요. 인간은 언제든지 마음을 바꿔먹기도 하고 우리를 안 좋아하는 인간은 지천에 널렸다는 것을요.


“얘들아, 스스로 먹을 걸 구하는 법을 알아야지.”

“에이, 뭣하러. 먹을 걸 얻는 법을 알면 되지”

“그러다가 저들이 먹을 걸 안주는 날이 오면 어떡하려고.”

“먹을 걸 왜 안 주겠어? 새끼 낳고 나서 그들은 더 행복해하고 더 후해졌는데.”

“저들이 마음이라도 바꿔먹으면 어쩌려고 그래?”

“너도 참, 별 걱정을 다한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마요.”


첫째가 와서 몸을 부비며 우리의 언쟁을 말려봅니다.


“얘들아, 해도 좋은데 나가서 먹을 거 찾는 법 알려줄게. 나가자.”

“와~”


아이들은 그렇게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겨울이 지나가면서 아이들은 부쩍 커졌습니다. 그만큼 자기주장도 강해졌지요. 이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기보다는 친구나 동료 같은 개념이 되어가고 있었지요. 포관 고양이는 아이들이 다 커가면서 그만큼 방문이 뜸해졌습니다. 저희도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 것이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사이가 나빠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출산 전의 생활로 돌아간 것이지요. 바뀐 것이 있다면 그 전에는 제가 그를 찾아갔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그가 나를 찾아오는 빈도가 많아졌다는 것뿐이지요.


포관 고양이도 나도 아이들의 교육에 욕심이 많았던 덕분에 아이들은 인간을 대하는 법에나 먹이를 구하는 법이나 부족함이 없게 자라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뭐 밖에 나갔다 들어와도 어디서 뭐하는지 몰라요. 그저 잘하고 있겠거니 생각하는 것뿐이죠. 다행인 것은 학관에 있는 암컷 인간들과 아이들의 사이가 무척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공간에서, 우리는 우리의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이 힘들어하는 얼굴로 나타나면 몸을 내어주고, 그들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었지요. 그렇게 우리는 공생의 관계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학관의 겨울은 매우 춥습니다. 하긴 여름에도 서늘해서 더위로 고생하진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겨울의 학관은 상황이 다릅니다. 안 그래도 추운 계절인 데다가 오르막길을 파서 지은 건물은 땅의 기운을 받아 더욱 추웠지요. 포관은 꽤 따뜻하던데 학관은 왜 추운이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겨울에는 올라오라니까.”


포관 고양이가 어려 번 말했지만, 그렇다고 올라갈 수는 없었어요.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학관이라는 장소는 추웠지만, 그래도 우리는 춥지 않았으니까요. 아이들이 커지면서 아이들에게는 하나 둘 제 집이 생겼습니다. 그래 봤자 집 옆에 새로운 박스 집이 생겨난 것이지만, 아이들의 몸집이 커지면서 집이 너무 좁아졌고, 고양이라는 특성상 서로에게 꽤 스트레스가 있었기 때문에 박스집이 늘어난 것만으로 삶의 질이 높아졌어요. 다정한 인간들은 어찌 그리 똑똑한지 아이들의 독립할 시기를 어떻게 알고는 새로운 집도 마련해주고 담요도 새로 갖다 주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있었던 제 집에 더러워진 것들도 새 것으로 교체해주곤 했어요. 내가 여길 떠날 수 없었던 건 건물이 차가운 만큼 담요에서 느껴지는 그 따뜻한 기운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날이 따뜻해졌고 새로운 암컷 인간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지요. 초반에 모르겠는 얼굴과 냄새가 많아 아이들도 나도 꽤 날카로워졌지만, 곧 그들이 다른 암컷 인간들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우리도 긴장을 많이 내려놨습니다.


첫째는 집을 포관으로 옮겼습니다. 여기는 구식이라 촌스럽다나요. 그냥 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활발한 둘째는 어디 저 멀리 있는 도서관이란 곳도 갔다 오고 하더라고요. 어디서 몸이나 다쳐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지만 가끔 인간이 주는 음식을 잘못 먹고 배탈이 날 뿐 다행히도 큰 사고는 없었습니다. 어쩌다 집 밖에서 자고 오기도 하고요. 얌전한 셋째만이 여전히 학관에서 지낼 따름이지만, 아빠가 서운해할 정도로 포관도 잘 가지 않는 게으름뱅이입니다.


우습게도 아이들이 다 크자마자 나는 다시 임신을 했습니다. 신경이 날카로울 때마다 포관 고양이에게 화풀이를 할 때도 있지만 두 번째로 겪는 포관 고양이는 대응책을 다 마련해두었지요.


< 너, 그 얘기 들었어? >

< 어떤 얘기? >

< 학관을 뭐 리모델링인지 뭐시긴지 한다던데? >

< 그게 뭔데? >

< 나도 모르지. 공사를 한다 어쩐다 하던데 >

< 공사? 그거 위험한 거 아니야? >


길거리 생활을 할 때 공사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어본 적이 있어요. 인간들은 큰 괴물 같은 것들을 끌고 와 쿵쾅쿵쾅 소리를 내면 고양이들이 혼비백산하여 여기저기로 도망가지요. 그러다가 다치는 고양이도 있고 죽는 고양이도 있고 그렇습니다.


< 위험해봤자 얼마나 위험하겠어? 대학교잖아. >

< 맞아. 돌봐주는 인간도 많은데 학관이면 안전할 거야. >


그런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는 날이었어요. 어느 날 수컷 인간들이 저희 집을 떼로 찾아왔습니다. 마침 포관 고양이도 없을 때였고, 아이들도 먹이를 구한다 어쩐다 하며 집을 다 떠나 있을 때였어요.


“이게 뭐야, 뭔 고양이 새끼가 여기 있어?”

“아이고, 보니까 학생들이 기르는 고양이 아니야?”

“재수 없게. 공사에 방해가 될 것 같은데 그냥 저기 어디 치워두지 그래?”


인간이 집에 손을 대려 하자,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가 났던 나는 꼬리를 세우고 앙칼지게 울었습니다. 몸을 크게 부풀려서 하악거려 보았지요.


“아이고, 성질머리도 드러운 고양이네.”

“아니, 여길 부숴야 되는데 어떡하지?”

“뭘 어떻게 해, 고양이 때문에 공사 안 할 거야? 치우든지 뭐 하다 보면 치워지든지 하겠지.”


그들은 내 집을 발로 밀어 댔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할퀴어 보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나를 다리로 차며 떨어트렸습니다. 큰 진동이 배에 울리자 나는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무엇보다 뱃속에 있을 아가들이 걱정이었어요.  


“야옹-”

“아유, 적당히 하게.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알아서 도망가겠지. 보니까 홀몸이 아니야.”

“아니, 무슨 새끼도 낳아. 아주 오늘은 재수가 옴 붙은 날이구먼. 바지가 두껍지 않았으면 상처 났겠어.”


수컷 남자는 내가 붙들었던 바지를 탈탈 털어내고는 어디선가 나무에 달린 큰 돌덩이들을 들고 와 건물을 내려치기 시작했어요. 큰 소리가 내 고막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흙더미가 우리 집으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혼비백산 집에서 쫓겨 나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아이들이 달려왔어요.


< 얘들아, 어쩌니. 우리 집을 잃었어. >


나는 원통하고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났습니다.


< 엄마, 뱃속에 애도 있는데, 별일 없으셨어요? >

< 아주 우리 집을 없애겠다고 나를 발로 차고 난리도 아니었다. >

< 아니, 엄마 빨리 피하시지. 몸은 괜찮으세요? >

<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아주 가슴이 쿵쾅거려 죽겠다. >

< 우선 우리 아빠한테 가요. 여기는 너무 위험할 것 같아요. >


우리는 그렇게 인간이 만들어 준 집을 인간의 손에 잃었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포관 고양이는 분노하며 학관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우리가 머물던 학관의 벽은 허물어져 있었고, 따뜻한 손길로 완성되었던 박스집은 어디론가 치워졌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답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의 묘생이 걸린 기나긴 논의의 시작이었죠. 그리고 우리는 고양이에 걸맞게 각자의 묘생을 결정하고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최후의 논의에서 대놓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각자가 내린 최후의 결정이 우리의 묘생을 뿌리째 흔들어 놓을 거란 사실은 다섯 마리 모두가 알고 있었죠. 그렇지만 서로의 결정에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은 채 각자의 결정을 존중했답니다. 우리는 고양이니까요.

그래서 각자 어떤 결정을 내렸냐구요?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시작만큼이나 끝내는 때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어떤 암컷 인간이 말하더군요. 이제 저도 그 뜻을 알 것만 같으니, 학관에 사는 고양이답지요? 그래서 우리도 이제 안녕이랍니다. 그저 여러분께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이 학관에서 보냈던 묘생은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또 나쁘지만은 않은 기묘한 경험이었다는 것이에요. 나는 고양이었지만 인간과 함께 했고, 집고양이는 아니지만 인간의 손에 길러졌고, 못생겼지만 인기를 누려봤고, 모두에게 예쁨을 받았지만 또 모두에게 미움도 받았지요. 여기는 바깥세상에 비하면 매우 좁을지 모르는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어떤 영역이 있다기엔 모든 게 구분 없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었어요. 마치 계절과 상관없이 공기는 언제나 차갑지만 분위기는 언제나 따뜻했던 내 집, 학관처럼 말이지요.




“요즘 학관 고양이가 안보이지 않아?”

“아, 너 휴학해서 모르는구나. 지난 학기에 학관 리모델링하면서 우측 벽을 부쉈잖아.”

“어머, 그럼 학관 고양이는 어디 갔어? 임신 중이었잖아?”

“포관 쪽에서 새끼를 낳긴 낳았는데, 그 이후에는 포관 고양이는 보여도 학관 고양이는 안 보이더라고. 자기 사는 구역이 정해진 고양이가 이렇게 안 보이는 걸 보면 죽었을 것 같다는 사람도 있더라.”

“엄마가 새끼들을 버리고 간 건가?”

“모르지 뭐. 새끼들 낳기 전에 포관 고양이랑 같이 잘 보이더니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새끼 낳고 얼마 안되서부터 안 보이더라구. 그 뒤로는 포관 고양이가 돌본다고 돌보는데 애들이 자꾸 말라가는 것 같다면서 벗들이 새끼 고양이들은 나눠서 데려갔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학관 고양이.”

“어디서든 잘 살아있길 바라야지 뭐.”





- 현으로부터

매거진의 이전글 [목격자] | 관찰 리포트.tx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