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대학가에서 벌어진 두 여자의 싸움을 목격했다.
“헉”
지금 내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어떤 여자 둘이 싸우고 있다. 아니 어느 한 쪽이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다. 아주 사람이 많은 번화가. 어떤 사람은 그들의 싸움이 마치 보이지 않는 듯 그냥 지나가고, 또 어떤 사람은 그들 주변에서 수군거린다.
“어머, 딸이 많이 잘못했나 보네.”
“하여튼 요즘 애들이란, 말세야 말세.”
“아니, 딸이 뭘 잘못할 것 같지가 않구만 뭘. 딱 봐도 저 아줌마가 보통 드센 엄마가 아닌가 보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직접 나서기도 한다.
“아니, 아무리 딸이 잘못했어도 엄마가 그래 딸을 때리면 씁니까.”
그러자 나이 많은 아줌마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뭐? 당신이 뭘 알아?”
그러고는 엉엉 울면서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그녀의 폭력은 더 심해졌다. 맞던 여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그 매와 시선을 다 맞고 있다. 둘 다 참 물기 어린 눈을 하고 있다. 나는 관찰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았다.
보고 있자면 감정이란 것은 참 신기한 것이다. 인간은 타인의 상황이나 생각을 알 수 없지만, 그저 상대의 상황, 옷차림, 표정만으로 짐작해서 타인의 감정을 재단한다. 우선 저 둘의 외모만으로 엄마와 딸이라고 단정하고, 왜 때리는지도 모른 채 어떤 사람은 젊은 사람이 어지간히 잘못했겠거니 짐작하고, 또 어떤 사람은 중년의 여자가 옷차림처럼 드센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 감정을 상상하고, 이입하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짐작과 평가를 쉽게 입밖으로 낸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통해 자신이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았음에 안심한다. 저런 딸이 없어서 다행이라든가, 우리 엄만 저렇지 않아서 다행이라든가, 저런 상황에 놓이지 않아서 다행이라든가, 뭐 그런 것들. 그러면서 우위를 점한 것마냥 가슴 한편에서 뿌듯해한다. 웃긴 것은 다 그들의 상상이란 것이다.
인간은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능력을 가졌다. 우리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의 상황과 감정을 모두 이해한다. 우리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저 상황과 감정을 신호로 전달하여 커뮤니케이션한다. 우리에게 오해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저 언어적, 비언어적 증거들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그들은 상상력이라는 것을 발달시켰다. 다만 그들은 그들의 평가가 진실인지 상상인지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들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대단하다.
내가 지구에 온 지도 이제 3년 남짓, 우리 별에서의 시간으로 치면 찰나의 시간이지만 그래도 인간에 대해 파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오늘 내가 본 싸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그들의 실제 관계는 모녀 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실제 그들은 인간이 얘기하는 공통된 신을 믿는 관계다. 지구의 말을 빌리면 같은 종교를 가지고 같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를 사이비라고 부르는 듯하다. 중년의 여성은 교회의 관리자이고, 젊은 여자는 그 교회의 신도다. 중년의 여성은 신실하게 교회와 신을 믿으며 교회의 규모를 넓히는 데 힘쓴다. 그녀는 교회를 위해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애쓴다. 젊은 여자는 소위 말하는 사기꾼이다. 최근 이 교회의 세력이 넓혀지는 것을 듣고, 중년 여자와 친분을 쌓아 교회 돈을 갈취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겼다. 둘이 속고 속인 관계인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사이비 종교의 실체가 드러나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고, 젊은 여자는 숨어 다니다 이제야 저 중년의 여성이 그녀를 찾아낸 참이다.
중년의 여자는 외로운 여자였다. 그래서 신을 믿고, 그래서 신도들을 좋아하고, 그래서 젊은 여자를 믿었다고 한다. 그 중년의 외로운 여자는 자신과 비슷한 외로운 사람들을 꾀어내 많은 상처를 준 듯하지만 정작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젊은 여자는 이성적인 여자였다. 그래서 신을 믿지 않고, 그래서 외로운 사람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돈을 뜯어냈다.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항상 자신이 가장 불쌍했기 때문에 그런 미안함은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이런 뒷얘기를 알면 아까 지나가던 사람들은 뭐라고 얘기할까. 그들의 짐작과 평가는 또 어떻게 뻗어 나갈까. 인간이란 존재는 참 재미있기 그지없다.
툭 -
“어? 아저씨. 죄송합니다.”
방금 8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지나가다 나를 쳤나 보다. 그녀의 머릿속엔 죄송함만 있을 뿐이다. 지난 3년간 지켜본 결과 인간 중 자신의 감정에 가장 솔직한것은 어린아이다. 그걸 다 표현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 오진 않는다. 인간은 상상과 짐작의 생명체니까.
앞으로는 인간의 상상과 관련하여 그들이 스토리를 펼치는 프로세스에 대해 심도 있는 조사를 하려고 한다. 오늘의 기록 및 보고는 이것으로 마친다.
- #1100 지구에서의 보고 리포트
“김지곤 씨는 차도가 좀 있나?”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묻는다. 수간호사가 대답한다.
“아니요. 여전히 자신이 외계에서 온 생명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K대에서 발견되다니. 환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겠습니다.
“아니야. 다들 잘 해주고 있어. 하여튼 김지곤 씨는 좀 유난스럽긴 하지. 벌써 몇 번째 탈출인지.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고 이거 원.”
“이건 오늘 김지곤 씨가 쓴 글의 내용입니다.”
“지구에서의 보고 리포트. 인간은 상상의 생명체라. 그렇다면 김지곤 씨가 가장 뛰어난 상상력을 가졌겠군.”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음 병실을 향한다.
- 현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