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가모모씨 Dec 22. 2021

[릴레이]|오늘, 세상이 망했다_2

릴레이 소설을 쓰기로 했다.

이전 편 먼저 보기


18살,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 학생이었다. 등교 전 강변 공원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새벽 5시부터 3시간 아르바이트를 한 후 학교에 가는 것이 이 친구의 평소 일과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친 후 다음 타임 아르바이트생과 교대를 하고 편의점을 막 나선 참이었다. 그리고는 나와 똑같았다. 번쩍. 일순간 섬광이 쳤다. 이후의 기억은 없다. 눈을 떠보니 건물 잔해며 쓰러진 나뭇더미로 난장판이 된 바닥 위에 누워있었다고 한다.


“저랑 교대하고 막 편의점에 들어선 그 누나는 죽었어요... 제가 봤어요. 우리 가족들도 다 죽었겠죠? 저랑 아저씨만 이렇게 살아남은 거예요? 여기까지 오면서 누구 본 사람은 없었어요?”


학생과 나는 왜 우리 둘만 살아남은 건지, 우리 둘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는지 짜 맞춰 보려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렇다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나마 확실한 건 나는 북쪽을 향해 제대로 온 게 맞았고 건물이 적은 이곳은 그나마 피해가 덜했다. 조금씩 이전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만한 곳도 있었고 지형이 통째로 바뀐 것은 아니라 강 역시 그대로였다. 세상이 붕괴된 후 바람을 타고 날아온 각종 먼지와 쓰레기 더미에 마실 수 있는 물 상태는 아니었지만. 학생은 무너진 편의점 주변을 파헤치며 먹을만한 것들이나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을 찾아보던 중이었다. 2L 생수 3병, 500mL 생수 8병, 음료수 5병, 봉지가 조금씩 터진 과자들과 냉동식품, 기타 자질구레한 편의점용 물건들. 학생은 선뜻 열심히 모아둔 것들을 나와 나누고자 했다. 나는 가방 속에 꼭 쥐고 있던 먹다 남은 생수를 슬쩍 꺼내놓았다.


날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기에 학생이 찾은 음식들로 허기를 채운 후 자리에 눕고 내일 다시 함께 쓸 만한 물건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도시의 조명이 없는 밤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해가 지고 다시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지만 옆에 나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조금은 덜 춥고 덜 무서운 밤이었다. 그건 학생도 마찬가지였는지 이런저런 개인사도 늘어놓았다.


가족은 부모님과 초등학생 남동생 하나. 원래도 넉넉하지 않던 집안 형편에 날 때부터 몸이 불편한 동생의 병원비 때문에 더욱이 기울어진 가세. 본인에게 필요한 돈은 스스로 벌자는 생각으로 새벽과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조금이나마 수익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 지방에 내려가 친척 집에 살고 있고 어머니는 동생을 병간호하며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으로 생활비를 벌고 계신다고. 그 외에도 우리는 서로의 학창 시절 이야기, 직장 이야기, 가족 이야기,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 내가 들었던 웃긴 이야기나 놀라운 이야기. 어제까지 일상이었던 얘기들을 아주 먼 과거라도 되는 듯 추억하며 말했다.


“나는 그냥 뭐 지긋지긋한 직장인이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상사한테 욕먹은 날, 일에 너무 지친 날에 세상이 한 번에 망해서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정도로 구시렁거리고 살던 정말 평범한 직장인. 근데 진짜 이렇게 됐네. 무슨 일이냐 이게.”


조금은 편해진 분위기에 가볍게 한 말에 학생은 갑자기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맞장구치며 웃던 웃음소리도 사라졌다. 한참을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학생은 갑자기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며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잘 안 풀려서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고요? 아저씨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데요? 좋은 집에서 부모님이 주는 학비에 대학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 들어가서 우리 엄마 아빠 나 셋이 버는 것보다 더 많은 월급 받고 살면서 왜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나는요, 그래도 2년만 더 버티고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지니까, 나는 우리 가족만 있으면 되니까 그 생각으로 진짜 다 참으면서 살았는데. 진짜 매일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아저씨 같은 사람 때문에...”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진짜 세상이 망할 리도 없으니까... 그리고 나도... 내 삶도 나름의 고충이 있는 거니까...”


학생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 반대쪽으로 뒤돌아 누웠다. 훌쩍거리는 소리, 눈물을 훔치는 듯한 인기척이 났지만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조용히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다시 밤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밤공기 속에서 누워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자니 매캐하면서 칼칼한 냄새가 후각을 파고드는 사이로 어디선가 향긋한 풀 향기가 섞여 들어오는 것 같았다. 풀 향기라니.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듯 사라진 가운데도 잡초는 살아남는구나. 그래서 나도 살아남은 것인가. 나는 어쩐지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살아있는 것의 향을 맡으니 안도감이 들었다. 어디선가 주어 온 넝마 조각을 몸 위에 덮고, 혹시라도 오늘 처음 만난 생존 동지가 춥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힐끗 쳐다보았다. 학생이 모로 누운 채로 숨을 마시고 내쉬면서 규칙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 느껴졌다. 얘는 벌써 자나. 의도치 않게 울려버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 친구를 만나서 너무 다행이었다. 온 세상이 증발해버린 믿기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여 극한의 긴장 속에서 하루를 보냈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사람을 만나고 나니 한결 안심되는 느낌이다. 알싸한 밤공기와 규칙적인 숨소리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문득 들짐승이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찬 데서 자다가 이슬을 맞아서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는 이 사태에 비해서 보잘것없는 걱정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날이 밝으면 편의점에서 감기약이라도 찾아봐야겠다... 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천천히 잠의 세계로 빠졌다. 




문득 덥다는 느낌이 들어 나는 넝마를 확 걷어찼고, 스스로의 몸짓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분명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데,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꿈속의 풍경이 의식 저 깊은 곳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주변이 환한 것을 보니 분명 해가 떠 있는 듯 하지만 구름이 사방에 낮게 깔려 있어 어제보다 더 우중충한 느낌이 든다. 옆을 보니 어제의 학생은 벌써 자리를 비우고 없다. 아마도 볼 일이라도 보러 갔나 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주변을 두리번 살폈지만,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의 식량을 걱정하며 물을 두어 모금 마셨고, 어제 덮고 잔 천 쪼가리를 개어 가방 안에 넣었다. 머리를 가볍게 빗어넘기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면서 오늘은 지붕이 있는 곳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슬슬 학생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주변에서 갈 곳이 어디에 있지? 나는 편의점이었던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한 시멘트와 철골 잔해 주변을 한 바퀴 휘- 돌아보았다. 학생은 없었다. 우리의 잠자리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살피고 왔어도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불길한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나에게 화를 내던 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에게 화가 나 떠나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야. 그 친구도 동행이 필요할 텐데. 아니면 강변에 있지 않을까. 그래. 볼 일을 보려고 했다면 물이 있는 곳으로 갔을 거야. 


강을 향하는 길목도 난장판이 되어 접근이 쉽지 않았지만 나는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대충 헤치면서 강가를 향해 걸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강을 따라 걸었지만 학생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가방 속에는 어제의 학생이 나눠주고 간 몇 통의 물과 과자가 있었다. 이를 선뜻 내어주던 학생의 모습도 떠올랐다. 가만. 그러고 보니 학생이 어떻게 생겼었더라. 학생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학생의 제스처, 날 만나 안도하는 표정, 분노를 쏟아내던 몸의 작은 떨림, 훌쩍이던 울음소리와 규칙적이던 숨소리 전부가 기억나지만 학생이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학생의 이름을 외치며 부르고 싶어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이름이 있긴 했었던 걸까. 도통 모르겠다. 나는 다시 우리가 휴식을 청했던 위치로 돌아왔다. 미칠 노릇이었다.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세상을 둘러보았다. 강인지, 땅인지도 모를 곳에서 모든 세상이 무너져 울퉁불퉁한 평행이 되었지만 평행선 그 어디에서도 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또다시 나를 제외한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학생이 나를 버리고 갔는지, 아니면 어디론가 잠시 길을 나섰다가 길을 잃게 된 건지 아니면 그도 거대한 섬광 속에 집어삼켜져 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안도 후에 다시 찾아온 상실감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어이없게도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작은 웃음이 비어져 나오다가 이내 모든 것을 쏟아내듯 큰 소리로 웃었다. 배를 부여잡고 웃다가 바닥을 치면서 웃었다. 내 웃음소리가 세상의 잔해에 부딪혀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웃겨서 또 웃었다. 바닥을 내리치는 손바닥에 뾰족한 무언가가 박혀 피가 나기 시작했다.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난 김에 더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구기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 순간.


“거기 괜찮으세요?”


저 멀리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소리의 근원지를 살펴보았다. 지저분한 둔턱 너머로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형체가 살짝 보이는 듯했다. 


“누... 누구세요?” 


누구세요 라니. 이게 적절한 질문이자 답변일까. 내 바보 같은 말에도 상대도 흔쾌히 몸을 드러냈다. 순간적으로, 어제 만나 오늘 사라져 버린 학생인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화도 조금 날려던 찰나에 상대가 더 가까이 오기에 살펴보니 확실히 어제 그 학생은 아니었다. 학생보다는 조금 더 큰 청년의 느낌. 한 22살? 23살쯤 되어 보이나? 군대를 막 갔다 왔거나 아니면 가기 직전일 것 같다. 청년은 거리낌도 없이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아.. 네.. 뭐”


조금까지 울며불며 난리를 쳤던 나는 또 다른 생존자를 발견하였다는 기쁨보다는 머쓱함에 코를 한 번 쓱 닦았다. 그리고 민망함과 어색함에 떠오르는 말을 마구잡이로 떠들었다. 


“사실 어제 다른 친구도 있었는데, 오늘 일어나서 보니 그 친구가 사라져 있더라구요. 혹시 못 보셨나요?”

“아뇨. 다른 생존자는 그쪽이 처음이에요.” 

“어디로 갔을까요. 고등학교 2학년이고 여기 편의점에서 일을 했다고 하던데. 맞아. 그쪽도 갑자기 섬광을 보고 정신을 잃고 정신 차려보니 세상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건가요? 어제 그 학생도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세상 한 번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세상이 진짜로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아니 그렇다고 이게 저 때문은 당연히 아니고 저한테 그럴 힘도 없고 하하...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


청년은 대답을 바로 하지 않은 채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다가온 것에 비해 그는 반가운 기색도, 그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노려보거나 불쾌하게 살펴보거나 경계하는 느낌은 아니다. 대신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그 학생도 여기서 일했다고 하던가요? 신기하네.”

“네.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일어나 보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쪽은 어디에서 오셨어요?”

“저는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서 오긴 했는데...” 

청년이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만난 생존자를 어떻게든 붙잡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인데, 그의 속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조금 걸을까요? 다른 생존자를 같이 찾아보도록 하죠. 이 근처에 대학가와 번화가가 있어서 아마도 사람이 많이 있었을 거예요. 뭐라도 흔적을 찾아보죠.”


나의 제안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행에 나섰다. 우리 둘 다 핸드폰이 완전히 방전 상태가 되었기에 해가 있는 위치로 방향을 가늠하여 걷기 시작했다. 풍경이 조금 황폐해졌다가 시멘을 비롯한 각종 건축자재들이 나뒹구는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그러면서 점차 시내에 가까워짐을 알 수 있었다. 청년은 여전히 말이 별로 없었다. 그에 대해서 아는 정보가 별로 없기도 하고 그의 침묵에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그에게 막연한 친근감이 들었다. 우리가 말없이 걷는 동안 해가 머리 위로 점차 올라왔다. 나는 그와 친해져 볼 심상으로 이런저런 말을 건넸지만 그는 대체로 단답으로 말하거나 대답을 아예 하지 않기도 하였다. 어떻게든 그와 친해져서 귀한 생존자와 헤어지는 불상사를 다시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결심했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냥 기대를 하지 말아야겠다. 그저 또 다른 생존자를 찾으러 가는 오늘의 길에 동행자가 있음에 감사해야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면서 어제의 학생이 다시 생각났는데, 아주 어쩌면 학생이 그 자리에 계속 있었는데 내가 발견하지 못하고 섣불리 그곳에서 떠났을 가능성이 떠올라 우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우려를 그에게도 공유하자 그는 ‘아마도 아닐 거예요’라면서 아주 뜻밖의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동생이 많이 아팠어요. 터울이 꽤 지는 동생이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죠. 아버지는 건축 일을 하셨는데, 뭐 말이 좋아 건축 일이지. 노가다에요. 그래도 지방 현장을 돌면 수입이 꽤 괜찮아서 집에서 지내기보다는 1년 내내 지방으로만 돌아다니셨죠. 그렇게 번 돈은 모두 동생의 치료비로 들어가서 생활비는 항상 쪼들렸어요. 동생이 병원을 계속 드나들어야 해서 엄마는 아르바이트 일을 하다가 관두고를 반복하고. 저는 집에 보탬이 되려고 고등학생 때부터 편의점 알바를 했었던 것 같아요. 심야 알바 벌이를 더 쳐주니까, 밤에 밤새 일을 하고 학교에 가서 졸음을 참고 공부했어요. 그래야 대학을 가고 뭐라도 되어서 이 지긋지긋한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잠자코 청년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이야기 속에서 기시감을 발견하였고, 이내 청년의 이야기가 어제 만난 학생의 이야기와 겹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년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잠깐 눈을 붙이러 집에 들어왔는데, 엄마와 동생이 나란히 손을 잡고 누워있었어요. 어딘가 쎄한 느낌에 다가가 보니 둘 다 숨을 쉬지 않더라구요. 엄마가 동생한테 약을 먹이고 자기도 약을 먹었죠. 남편도, 큰 아들도 집에 없는 사이에 엄마 혼자서 나날이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자식의 생명을 붙들고 있으면서 자기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나 봐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있던, 그렇지만 어쩐지 이질감이 느껴지던 그 창백한 얼굴들과 소름 끼치는 냄새가 잊혀지지 않아요.”


나는 감히 청년의 말에 뭐라 반응하지  못하고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도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청년의 머리 뒤로 무너진 건물들과 부서진 전광판들이 보였다. 언뜻 보면 흔적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지만 흐릿하게 남아있는 지형을 가늠하였을 때 이곳이 번화가이자 대학가, 그리고 내가 다녔던 학교의 주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곳에 도착하여 생존자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앞의 청년과 어제 학생과의 관계에 대해서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청년은 나에게 그에 대해서는 답해주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어요. 그리고 훈련이 끝나면 남는 시간에 미친 듯이 공부를 했죠. 모든 슬픔에게서 도망가고 싶었고,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공부에 매진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제대 후에 바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여기는 제가 다니는 학교예요. 사실 저는 여기에서 세상의 멸망을 맞이했었거든요.”


나는 이상하게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았네요- 라고 하기엔 너무 섣부른 위로 같았고 무엇보다 고통스러웠을 과거사를 덤덤한 표정으로 말하는 청년의 얼굴에 가늠할 수 없는 외로움이 서려 있는 것 같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이 엿보여서 내가 건네는 말들이 튕겨져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겨우 입을 떼 바보 같은 한 마디를 건넸다. 


“여기 이 학교를 다니셨다구요? 저랑 동문이네요.” 


청년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더니 다시 무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동행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저희는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죠. 저는 그쪽 말고는 생존자를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시 찾아본다면 다른 생존자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


말을 마친 청년은 몸을 돌려 빠르게 걷기 시작했고, 처음 언덕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것과 반대로 자욱한 먼지와 건물 잔해들 사이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벙 찐 표정으로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곧 그를 뒤쫓았지만 마치 이 도시처럼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모든 게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그 고등학생은 누구이고, 아까 그 청년은 누구란 말인가? 내가 정말 미쳐버린 것일까?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무작정 앞으로 걸었다. 먹을 것을 찾아야 한다든가, 살아있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한다든가 그런 마음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찾아오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빨랐다. 나는 방향을 틀지도 않고 그저 앞으로만 나아갔다. 


고등학생과 청년의 상관관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 나는 그것을 계속 곱씹었다. 탁- 하고 발에 무엇인가 걸쳐서 넘어지려고 할 때였다. 뒤에서 누가 나를 확 잡아챘다. 


“악-”

“아니, 젊은 사람이 뭐 그렇게 앞만 보고 가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사람이 반갑지 않았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아저씨라니, 별로 나이 차이도 안 나겠구만. 형이라 불러.”


혀를 쯧 차 보인 그는 잡아챘던 팔에서 손을 풀고는 탁탁 털었다. 특색 없는 스프라이트 셔츠를 받쳐 입은 양복 차림에 까만 구두, 밋밋한 까만 백팩, 중간중간 보이는 희끗희끗한 새치 때문일까. 형이라 부르기엔 나이가 꽤 많아 보였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형이 아닌 사람도 형이 되기 마련이었다. 나는 별다른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담배 피나? 내가 남은 게 담배 두 대 밖에 없어서 말이야.”

“아, 아닙니다. 담배 끊었어요. 귀하게 남은 건데 형님 피십시오.” 


그는 피식 웃더니 바닥에 털석 앉아 입에 담배를 쓱 물고는 불을 붙이지도 않은 채 깊이 담배를 빨아들인다. 


“사실 태우기 너무 아까워서 이렇게 물고만 있거든. 언제 또 발견하게 될지 몰라서 말이야.” 


세상이 멸망한 다음에도 사람은 담배를 찾는다. 희한한 일이다. 


“그래, 자네는 어디에서 왔나?”

“어제부터 꽤 걸어왔어요. 삼성역 근처에 회사가 있었습니다. 사실 이 쪽에 오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함께 왔는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요. 형님은 오시면서 다른 사람은 못 만나셨어요?”

“나도 사람을 좀 만났지. 고등학생도 한 명 있었고, 대학생도 한 명, 20대 후반에 취업을 준비한다는 사람도 한 명 만났어. 노인도 한 명 있었다네.”

“고등학생이요?”


나는 그가 만났다던 고등학생이 내가 만났던 그 학생임을 직감했다.


“혹시 삼성역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지 않던가요?”

“응, 맞아. 자네도 만났나?”

“네, 사라져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살아 있다니 잘 되었네요.”

“자네도 섬광을 보았나?”

“네, 보았습니다.”

“언제?”

“언제라뇨? 세상이 망한 건 3일 전이죠.”


그는 탁- 하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니, 형님. 아껴 두셨다면서요.”

“이 순간을 위해서 아껴둔 것이지.”

“이 순간이요? 이 순간이 어떤 순간인데요?”


그는 담배를 입에서 빼고 후- 하고 연기를 길게 내뿜고는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 한동안 웃지 않은 양 그 웃음은 꽤 어색했다. 그는 조용히 앞을 바라보며 소중한 담배를 조심히 피웠다. 세상이 망한 지 세 번째 날의 노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담배는 되었다 치고. 이건 어떤가?”


그는 들고 있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빵 몇 개와 물 한 병을 꺼내 넘긴다. 


“이걸 저 주셔도 괜찮습니까?”

“며칠 굶은 거 아닌가? 먹을 게 생겼을 때 먹어둬.”


이미 며칠을 굶은 상태였다. 음식을 눈앞에 두고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급히 빵과 물을 받아 들었다. 


“너무 급하게 먹지 말아. 며칠 굶어서 체할 수 있어.”

“아, 네네.”

“자네는 그 섬광이 비칠 때 말이야.”

“네.”

“무슨 생각을 했어?”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구요.”

“자네는 나랑 참 비슷한 면이 많아.”

“무엇이 말입니까?”

“생각하는 방식도 그렇고, 눈치가 없는 것도 그렇고. 상상력이 부족한 건가? 아니면 기억력인가?”

“제가요?”

“느낌이 그래. 자네는 나이가 몇이야?”

“올해 서른일곱입니다.”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은?”

“결혼은 아직 안 했고, 양친 다 살아 계셨어요. 누나도 있었는데 다들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꽤 평범했구먼. 세상은 왜 망했으면 했어?”

“그냥, 그런 날 있지 않으세요? 다 망했으면 좋겠다 싶은 날이요.”

“사실 그런 날이 대부분이지.”

“근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런 생각을 한 게 좀 찝찝하더라구요.”

“나도 조금은 그랬는데, 얼마 전에 만난 노인네 하나가 그러더라고. 벌어질 일은 어차피 벌어진다고 말이야. 그 말을 들으니까 조금 안심이 되더란 말이야.”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가 준 빵과 물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그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입이 멈춰지지 않았다. 배를 채우고 나니 나도 그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형님은 부모님은 안 계십니까? 아내분이나 자식들은요? 걱정 안 되세요?”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어. 아내랑 자식도 있었지. 지금은 이렇게 돼서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

“이렇게 여기서 먹을 것을 찾으러 헤매다가 결국 다 죽게 되는 걸까요?”


순간 그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타인이 내 눈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것은 낯선 일이어서 정작 내 눈을 어찌할 줄 몰라 이리저리 굴렸다. 그는 잠깐의 퓨즈를 깨고 입을 열었다.


“글쎄. 자네는 섬광을 본 게 3일 전이라고 하지 않았나.”

“네.”

“내가 섬광을 본 건 몇 달 전이네.”

“네?”

“그 고등학생은 섬광을 본 지 일주일이 되었다고 했어. 내가 만났던 노인네는 섬광을 본 지 수년이 흘렀다고 했지”

“...... 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다음 편 이어 보기



현-희-효로부터


매거진의 이전글 [릴레이]|오늘, 세상이 망했다_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