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에서 돌아온 날이었다.
“엄마, 간 이식 수술해야 된대.”
결국은 오고야 말았구나, 그날이.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기도,
그냥 평소와 같은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취해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했다. 그리고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나와 내 동생은 엄마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엄마와 함께 살았던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때로 남아있다. 아름다운 추억 따위는 단 한 가지도 없을 만큼.
아직 나이가 두 자릿 수도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매일 밤 술집을 돌아다녔다. 밤마다 집전화가 울렸다. 엄마가 취했으니 데려가라는 전화였다. 전화 벨소리는 나에게 출동 신호와 같았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작은 소녀는 술에 취해 남의 식당에서 잠을 자는 엄마를 매일 같이 들쳐 업고 돌아와야 했다. 때로는 식당 한편을 흥건히 적신 취한 엄마의 소변을 작은 손으로 연신 닦아내기도 했다. 어른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온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와 함께 살게 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에게서의 해방이었다. 혼자 남겨진 엄마는 여전히 매일 밤 술을 마셨고, 어느 순간부터 정해진 거처도 없이 길거리를 헤매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버린 나는 결국 엄마의 입원을 결정했고, 엄마의 격리 치료가 시작됐다.
그러나 치료에 차도는 없었다. 몇 년 간 엄마의 입원과 퇴원이 계속 반복됐고, 엄마가 마지막으로 병원을 나온 날 나는 엄마와의 인연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엄마와 단절한 채 살아간 지 몇 해가 지났고 엄마의 투병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